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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삼아 ‘유교∼’를 접두어 삼은 유행어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가령 노출이 지나치거나 개방적인 생활 태도 같은 데에 일정 부분 거부감을 가진 젊은 여성을 가리킬 때 ‘유교걸’이라고 하는데, 전통문화의 중요한 축인 유교를 희화한 듯하여 언짢지만 당위성의 강조가 도드라진 유교적 특성을 감안하면 신세대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게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비라면 그렇게 꼭 막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조선조의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나라에 끌려갔던 부녀자들이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전쟁 포로가 생환하였으니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했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엄정한 유교 윤리를 내세우며, 이미 실절을 했으니 내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소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은 그 부당성을 논파하는 글을 썼다. “옛사람들은 아내에게 죄가 있으면 내쳤지만 삼년상을 함께 치렀거나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은 비록 죄가 있더라도 내치지 않았다”(‘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인용)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정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래서 “내치는 것도 의리이고, 내치지 않는 것 또한 의리”라고 하여 경직된 논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어서 김만중은 “우리나라 사족의 부녀자는 개가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아닌 경우가 없다”는 특수성을 논거로 삼았다. 그리하여 비록 절개를 잃었다 해도 여느 음란한 여성과는 차이가 있으니 별처에 머물게 하면서 사당 제사는 함께하지 않더라도 자식의 어머니로서의 지위는 유지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대의 선비들은 속환한 여성을 내치는 것이 마치 선비들의 공론인 것처럼 몰아붙임으로써 어진 사람들조차 시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금도’(襟度)란 단어를 넘지 말아야 할 선 정도의 의미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디 남들을 포용하는 아량을 뜻한다. 원칙을 지켜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데 탓할 사람이 없지만, 기껏 내세운 원리원칙이 의리를 저버리고 제 잇속만 챙기는 기만책일 때 그처럼 추하고 해로운 것도 없다. 딱한 사람은 저쪽에 있는데 이쪽 감싸기에 나서면서도 원칙 타령만 하려 든다면 옛 선비든 요즘 정치인이든 조롱을 벗어날 길이 없다. 원칙도 의리고, 금도도 의리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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