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1412∼1431).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1429년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며 샤를 황태자(훗날 샤를 7세)를 도와 위기에 빠졌던 프랑스를 구한 영웅이다. 하지만 이듬해 전투 중에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지고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화형을 당한다. 샤를 7세는 1456년 잔 다르크에 대한 유죄판결을 파기해서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에서는 500년 가까이 지난 1920년 잔 다르크를 성녀(聖女)로 시성했다. 잔 다르크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가톨릭의 성녀인 셈이다.

이런 잔 다르크를 다룬 연극 ‘세인트 조앤’은 정작 역사의 평가보다 역사의 풍파에 마모되가는 잔 다르크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세인트 조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겸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이다.
국립극단은 오는 10월5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세인트 조앤’을 공연한다. 1963년 국립극단에서 한국 초연을 올린 후 59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무대로,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 연출은 지난 20일 용산구 한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인트 조앤’은 영웅이나 성인이 아닌 잔 다르크의 인간적 모습에 치중하는 작품”이라며 “잔 다르크의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좌절되는가를 추적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버나드 쇼의 원작에 충실하려고 했다. 원본대로 하면 3시간40분인데, 2시간40분 정도로 압축했다”고 덧붙였다.
단장 부임 후 첫 연출이라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한 김 연출은 이 작품의 동시대성에 매력을 느껴 오래 전부터 꼭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잔 다르크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목표를 향한 신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잔 다르크의 신념이 지금 현재 이곳(사회)에서도 이해되고 형상화될 수 있겠다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며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신념과 가치관이 어떻게 무너지고 오도되는가를 얘기한다는 측면에서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은 정치, 종교가 타락한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여인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 시골마을의 평범한 소녀 조앤은 중세 시대 별난 여인 취급을 받지만 신의 목소리에 따라 용맹하게 싸워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교회와 영주들은 자신의 이권만을 내세우며 그녀를 모함한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판대에 선 조앤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택한다.
김 연출은 “잔 다르크의 신념이 사회 구조나 타인들에 의해 배제되고 짓밟히는 과정을 겪는다”며 “샤를 7세도 조앤을 필요할 땐 받아들이고, 또 배신하고 버리죠. 이런 인간사의 다양한 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요.”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백은혜가 조앤 역을, 이승주가 샤를 7세 역을 연기한다. 두 배우와 다른 작품에서 이미 호흡을 맞춰본 김 연출은 “대본을 읽으면 떠오르는 배우가 있다. 이 작품은 두 배우와 작업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이승주 배우와는 꽤 많은 작품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어요. 자기 속에 형상화한 인물로 대본에 접근하는데, 해석을 잘해요. 백은혜 배우는 이전에 작품을 하나 했는데, 그때 저는 한 배우를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강인한 인물을 형상화하는데 소녀적인 느낌도 공존하기에 캐스팅에 주저함이 없었죠.”
백은혜는 “처음엔 대중들이 알고 있는 그런 상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고, 부담감도 있었다. 그런데 영웅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연출님이 말하더라. 잔 다르크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 신념에 중심을 두고 표현하려 했다”며 “제 신념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 이 작품이 더 특별하다. 기쁨과 무게감을 느끼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이승주는 “잔 다르크가 주변인을 탈바꿈 시키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며 “샤를 7세가 유약했던 모습에서 어떻게 왕이 되는지 설득력있게 연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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