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아일랜드 의정서 둘러싼 英·美 의견차 안 좁혀진 듯
바이든도 버스 타고 이동하라고? '서투른 의전' 논란도
영국의 새 내각 출범, 그리고 새 국왕 즉위 후 ‘기존 영·미 특수관계를 계속 이어가자’는 다짐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삐끗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영국 신임 총리가 미국 정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란 점이 영·미 관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게 영국 언론의 시각이다.

◆북아일랜드 의정서 둘러싼 영·미 의견차 안 좁혀진 듯
17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19일로 예정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國葬) 하루 전인 18일로 예상됐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양자 정상회담이 연기됐다. 이날 런던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여왕의 관 참배, 장례식 참석 등의 일정만 소화하고 19일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러스 총리의 첫 정상회담에 관해 미 백악관은 “유엔총회가 열리는 21일 뉴욕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 총리실도 이를 확인했다. 다만 앞서 “트러스 총리가 18일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서둘러 언론에 밝힌 영국 정부로선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이 됐다.

회담 연기 배경으로 양국 모두 “국장 기간 각종 행사와 빽빽한 일정 때문에 정상적인 양자회담 진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두 나라 간 핵심 쟁점들을 둘러싼 이견이 아직 좁혀지지 않은 탓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dpa 통신은 “영국 총리실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연기 사유에 관한 세부 사항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눈치”라며 “북아일랜드 의정서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영·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고 보도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한 벨파스트 협정(1998)이 위협을 받게 됐다. 같은 섬에 있어도 아일랜드는 EU 회원국인 반면 북아일랜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 영국은 브렉시트를 단행하며 ‘북아일랜드에 한해서는 EU 역내에 계속 잔류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북아일랜드 의정서를 EU와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 보수당을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는 물론 현 트러스 총리도 “북아일랜드 의정서를 파기하겠다”고 다짐했다.

◆바이든도 버스 타고 이동하라고? '서투른 의전' 논란도
그러자 EU는 물론 미국도 ‘그런 일방적 처사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날선 경고를 보냈다. 여기엔 아일랜드계 이민의 후손인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연방의회 하원도 ‘북아일랜드 의정서 파기는 곧 벨파스트 협정 위반’이란 강경한 입장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얼마 전 “만약 영국이 벨파스트 협정을 흔든다면 미·영 FTA 역시 위태로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왕 국장 기간 런던을 찾는 각국 정상들에 대한 의전 문제도 미·영 관계를 꼬이게 만들었다. 영국이 외국 정상들한테 “모처에 모여 함께 버스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 발단이었다. 미국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최상급 방탄 기능을 갖춘 전용차 ‘비스트’ 이용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영국 총리실은 “이동 방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영국 일각에선 미·영이 ‘특수관계’라 하고 바이든 대통령도 최근 트러스 신임 총리, 그리고 찰스 3세 신임 국왕과의 통화에서 이 점을 재확인했지만 트러스 내각 임기 중 영·미 관계가 되레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BBC는 최근 “트러스는 미 정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여당인 민주당 인사들 중엔 그의 지나치게 강경한 극우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며 “북아일랜드 의정서, 영·미 FTA 협상 등이 향후 ‘암초’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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