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트르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 참여
문체부 "고인, 빛을 통해 평화의 가치 추구"
국내 첫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왕성히 활동한 ‘빛의 화가’ 방혜자 화백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1937년 태어난 고인은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을 스승으로 모시고 훗날 한국 화단의 거장이 된 이우환(86), 우현 송영방(1936∼2021) 등과 함께 그림을 익혔다. 1961년에는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벽화와 색유리학 등을 공부한 고인은 작가 생활 내내 빛과 생명, 우주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재료도 한지와 부직포, 흙과 광물성 안료, 식물성 염료 등으로 다양했다. ‘빛의 화가’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해 고인은 생전 어느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개울가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보고 ‘이 빛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프랑스와 한국은 물론 독일, 미국, 캐나다,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90회 이상의 개인전을 비롯해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우주의 노래’(1976)는 한지와 황토를 섞어 빛의 번짐을 자연스럽게 살린 걸작이다. 1993년 프랑스에서 ‘파리 길상사’가 개원할 당시 인연이 깊은 법정스님 제안으로 사찰에 내걸 후불탱화를 추상화로 그렸다. 올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하늘과 땅’(2010)도 미술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2018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할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을 위한 작품으로 고인의 그림이 선정됐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 그 장식에 해외 작가가 참여한 것은 고인이 처음이다. 자랑스러운 경기인상(2008), ‘미술인의 날’ 해외작가상(2008), 대한민국 문화훈장(2010), 한불문화상(2012) 등을 수상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7일 유족에게 보낸 조전에서 “고인께서 보여준 열정, 예술혼과 탁월한 성취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며 “고인께서 생전에 빛을 통해 추구했던 평화, 사랑, 생명과 존귀함의 가치가 앞으로도 세상을 더욱 밝게 비춰주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주(駐)프랑스한국문화원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물론 현지 예술인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20∼21일(현지시간) 문화원에 분향소를 운영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