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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살리려 도입한 치료법… 이젠 두 팔 걷고 환아 치유 앞장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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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8 15:00:00 수정 : 2022-09-18 19: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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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엄마의 힘

ABA캥거루 권현정 대표

7년 전에 자녀가 자폐 진단 받자
책 디자이너 꿈 접고 자폐아 공부
美 ‘응용행동분석’ 영상 희망 키워
ABA베어스 후원 받고 극적 호전
받은 만큼 같은 처지 아이 돕기로
“제 아이로 모든 가정에 희망되길”

1형당뇨병 환우회 김미영 대표

채혈 대신 ‘연속혈당측정기’ 수입
‘관세법 위반’ 고발까지 당했지만
사회 환기시켜 환자 ‘삶의질’ 바꿔
혈당 데이터 공유 중개기 제작 등
환우회 대표로 회원 버팀목 자처
“사회 인식 바꾸려면 목소리 내야”
“제 일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아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뭐든 하게 되더라고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았죠. 지금은 편안하게 얘기하지만, 그땐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을 얘기할 때면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세상에 보냈다’는 탈무드 격언이 자주 인용된다. 권현정 ABA캥거루 대표와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삶은 이 격언의 ‘실사판’이다. 두 사람 자녀는 몇 년 전 각각 자폐스펙트럼장애와 1형 당뇨를 진단받았다. 그러나 ‘두 엄마’의 삶은 ‘고생했다’로 끝나지만은 않았다. 오랜 노력 끝에 ‘엄마표 응용행동분석(ABA)’과 연속혈당측정기를 국내로 도입·전파하며 자신의 아이는 물론, 같은 처지의 아이와 가정의 삶도 뒤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엄마 헌신 덕에 ‘평범’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 아이가 건강해졌으면’이라는 작은 소망은 “모든 아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커졌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어느새 이들의 ‘사명’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엄마에서, 모든 아이의 엄마가 된, 두 엄마를 만나봤다.
경제력과 정보 부족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 센터를 가지 못하는 가정을 위해 ‘엄마표’ 응용행동분석(ABA) 학습을 할 수 있는 ‘ABA캥거루’를 운영하는 권현정 대표는 “제가 받은 만큼 다른 아이들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허정호 선임기자

◆“조기 개입 중요한 자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권현정 대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죠.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와 달라요. 자폐아를 둔 가족 삶은 정말 처참합니다.”

권현정 ABA캥거루 대표 아이는 2015년 자폐 진단을 받았다. 자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때였다. 아이는 엄마와 눈맞춤도 하지 않고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예민해져서 소리를 지르고 울어서 어린이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권 대표는 아이 장애 등록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눈맞춤이 어렵던 아이였는데, 장애등록 카드에 찍힌 사진에서는 너무 눈맞춤을 잘하고 있는 거예요. 하필 장애등록을 하는 날인데…. 너무 괜찮아 보이는 아이 모습에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이후 그는 책 디자이너로서 꿈을 내려놓았다. 대신 도서관에서 살며 공부했다. 자폐와 관련된 세미나와 설명회가 있으면 왕복 6시간 거리를 오갔고,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미술치료 등 자폐에 좋다고 하는 곳은 다 가봤다.

 

그러다 권 대표가 가입한 커뮤니티에 한 회원이 미국에서 아이가 받는 ABA 영상을 올리면서 변화를 맞았다. “국내는 당시 ABA 센터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폐가 공간 변화에 예민한 것을 고려해 집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모든 엄마에게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후 영상에 담긴 미국 ABA베어스에 우리나라 엄마 문의가 빗발쳤다. 이들이 보낸 메일은 4000통이 넘었다. 한국말이 적힌, ‘절박한’ 호소였다. 열악한 한국 상황을 알게 된 ABA베어스 대표는 한국 가정을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권 대표도 포함됐다.

권 대표의 자녀는 치료를 통해 극적으로 호전됐다. 놀이터를 가도 먼저 자폐라고 말하기 전엔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교 ‘도움반’을 고민하던 권 대표에게 선생님이 오히려 ‘굳이 갈 필요 없다. 더 낮은 성취도 아이들도 많다’고 만류했을 정도다. ‘중증 자폐’ 진단 이후 찾아온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아이와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됐다.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자폐’에 더욱 골몰, 2018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지원을 받아 ‘ABA캥거루’를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부모가 직접 아이 문제 행동을 중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다. 사회적 행동을 어떻게 단계별로, 하루의 성취를 어떻게 이뤄가는지, 훈련 내용을 담은 영상들이 올라온다. 숟가락 쥐고 밥을 떠먹는 행위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자폐는 조기 집중 개입이 정말 중요한데 다들 정보가 없어서 헤매느라 중요한 시기를 많이 놓쳐요. 경제력도 그 이유 중 하나예요. 너무 비싼 곳은 다들 돈 때문에 못하고, 저렴하면 대기가 너무 길어서 못하고….”

권 대표는 “여행은커녕 집 앞 카페도 못 가는 자폐아 가정이 대부분이다.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빠진 분들도 많다”며 “제가 운이 좋아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ABA캥거루를 통해 모든 아이에게 다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미국에 절박한 메일을 보냈던 것처럼, ‘이렇게 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두 번째 단계에서 멈췄다’ 등 메일이 그의 메일함에 쌓이고 있다.

권 대표 목표는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길러낸 후, 다시 자격증을 따서 ‘선생님’으로 또다시 역할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권 대표는 “많이 호전된 제 아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모든 가정에 작은 희망이 되기 바란다”고 전했다.

연속혈당측정기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내 아이와 같은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더 나아가서는 모든 아픈 아이들이, 행복하고 잘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어느 순간 큰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1형 당뇨계 문익점’… ‘공대엄마’ 김미영 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어요. 오로지 취업을 위한 선택이었죠. 이후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업무를 했어요. 이때는 ‘취업을 위한 무기‘였던 선택이 ‘내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1형 당뇨계의 문익점’ 같은 존재다. 그가 1형 당뇨를 처음 접한 것은 아들이 진단을 받은 2012년. 인슐린 분비가 안 되는 아이는 혈당 측정을 위해 2시간마다 고사리 같은 손끝을 찔러 피를 내야 했고, 혈당 변동에 따라 인슐린 주사할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위해 김 대표는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해외 커뮤니티를 통해 ‘연속혈당측정기’ 존재를 알게 됐다. 피를 내지 않고도 몸에 붙인 패치로 혈당을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는 의료기기였다.

그는 지인을 통해 연속혈당측정기를 구입했다. 국내 커뮤니티에 사용 후기를 올리자 “우리 아이에게도 구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수소문 끝에 대량 구매에 성공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관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김 대표를 의료기기법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무허가 의료기기를 반입했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갇히는 꿈을 계속 꿔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행히 김 대표 사연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엄마가 고발을 당해야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의료기기를 사용 가능한 환경”이라는 현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들끓자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 연속혈당측정기가 정식으로 들어왔고, 최근엔 건강보험도 적용됐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김 대표에 대해 “의료진 중에 그분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당뇨 환자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은 분”이라고 격찬했다.

혈당 측정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김 대표 아이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를 사용하며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김 대표 역시 이전 직장과 의료업체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졌다. 아이가 아프기 전 시간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나 혼자 살자고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에너지가 넘치던 김 대표는 환우회원 얘기에 눈물을 보였다. 검찰 고발 당시 많은 환우회원은 책으로 묶어야 할 만큼 방대한 양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김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회원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는 것을 알기에, ‘공대엄마’는 환우회 대표로 또다시 전선(戰線)에 섰다. 연속혈당측정기의 효율을 위해 혈당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는 ‘중개기’도 스스로 만들고, 인슐린 수송 과정에서 온도 관리를 강화하는 ‘콜드체인’에 포함돼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구글맵에 실시간 현황을 공유하는 앱을 회원들과 만들기도 했다.

“1형 당뇨는 진단 후 집중 치료 1∼2년을 받고 낫는 게 아니라 평생 가는 질병이에요. 그중에 1∼2년 잠시 소홀해도 합병증으로 인생이 망가질 수 있어요. 아이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위한 모색도 그나마 경제적, 상황적 여유가 되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죠.”

그에게는 아직 ‘남은 숙제’가 많다. 중증난치질환 등록을 위한 걸음마도 시작했다.

“그동안 당뇨는 늘 환자들만의, 우리만의 문제였는데 환우회 활동을 하면서 달라졌어요.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알아주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목소리를 내고, 바꾸려 노력하면 또 바꿀 수 있단 걸 깨달았죠.”

김 대표가 무심한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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