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뉴욕 '그라운드제로' 찾아 꽃 바친 여왕
"내 인생 가장 슬픈 일… 이런 비극 다신 없어야"
“슬픔은 우리가 사랑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Grief is the price we pay for love).”

2001년 9·11테러 21주년을 맞은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말을 인용하며 미국인들을 위로했다. 여왕은 여객기 납치 및 고의 충돌로 3000명 가까운 이가 목숨을 잃은 9·11테러를 “내 인생 가장 슬픈 일”이라며 비통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수도 워싱턴 부근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열린 9·11 기념행사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과 함께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지난 8일 엘리자베스 2세 서거 후 여러 차례 애도의 뜻을 밝힌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에도 여왕에 관한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테러 직후 엘리자베스 2세가 미국인들한테 보낸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9월11일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주미 영국대사가 뉴욕의 세인트 토머스 교회에서 여왕의 기도문을 대독했습니다. 거기서 그분은 가슴 사무치게 우리를 일깨웠습니다. 인용하자면 ‘슬픔은 우리가 사랑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했습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다수는 그 슬픔을 경험했고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도 모두 마찬가지”라며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숭고한 대가를 치렀는가 생각해보니 질(영부인)과 저는 여러분을 꼭 끌어안게 된다”고 말했다. 9·11로 엄청난 슬픔을 겪었으나 미국인들은 사랑의 힘으로 이 시련을 마침내 극복해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왕은 9·11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미국인들의 상처를 다독이고자 노력했다. 테러 1주년인 2002년 9월11일에는 잭 스트로 당시 영국 외교장관이 뉴욕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여왕은 “9·11테러로 자유가 위협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용기도 촉발시켰다”며 당시 피해자 구조에 헌신한 경찰관·소방관 등 구조대와 자신보다 공동체를 우선한 뉴욕 시민들한테 찬사를 바쳤다.
2010년 엘리자베스 2세는 남편 필립 공(2021년 별세)과 함께 뉴욕을 찾아 처음으로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했다. 9·11테러 당시 알카에다 일당에 납치된 여객기와 충돌해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자리다. 여왕은 헌화로 그날 숨진 3000명 가까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또 “내 인생에 이렇게 슬픈 일을 본 적이 없다”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고 말했다.

9·11테러 20주년이던 2021년에 엘리자베스 2세는 다른 서방 주요국 정상들과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을 규탄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메시지를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 여왕은 “2010년 방문한 뉴욕 옛 WTC 자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20년 전 끔찍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뉴욕 시민 공동체가 보여준 회복력과 결단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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