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운창이 딸 아니냐” 묻던 고향 사람들
그들에게 아버지는 옆집 청년이자 동창
‘이데올로기는 작은 일부’라는 걸 깨달아
“아버지의 죽음 후 가려져있던 모습 봐
빨치산 틀에 갇혀살게 만들었던 사회와
지난 세월에 대한 자식들 반성서와 같아”
2011년 5월, 소설가 정지아는 삼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구례로 내려왔다. 각종 질환을 앓는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2주마다 구례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예 백운산 자락에 정착한 것이다.
한동안 구례 밖은 물론 읍내에도 자주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의 필요 때문에 가끔이라도 구례 읍내나 장을 찾지 않을 순 없었다. 읍내에 나가면 아버지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아니 아버지를 알던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너, 운창이 딸내미 아니냐. 심지어 이름을 잊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너, 지아 아니냐, 느그 아부지랑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겼구먼. 아버지 친구들은 굳이 그녀의 손을 끌고 허름한 밥집이나 선술집에 데려가 밥이나 술을 사주곤 했다. 전어회를 주문해준 아버지 친구도 있었다. 느그 아부지가 이거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냐, 긍께 한번 묵어봐라.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왜 구례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구례에는 아빠를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자신이 적으로 알았던 사람도, 함께 산에 올랐다가 죽은 동지의 가족도 모두 살고 있는데. 나 같으면 구례에 살기 힘들 텐데. 자신을 모르는 곳에 가서 살 텐데….
구례에서 사람들, 특히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빨치산이 아닌 한 아버지이자 인간 정운창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는 구례를 떠날 수 없었구나. 구례는 아버지가 초등학교를 다닌 곳이었고, 철도원을 했던 직장이었으며, 가족과 친구, 이웃이 사는 생활 공간이었다. 구례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빨치산이기 전에 한 명의 자식 운창이였고, 초등학교 동창 운창이였고, 멋진 옆집 청년 운창군이었으며, 멋쟁이 남자 운창씨였다.
서서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단지 이데올로기로만 보지 않는다는 걸, 이데올로기란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자신이야말로 아버지를 잘못 생각해 왔다는 걸. 나만 아버지를 빨치산에 혁명가로만 가둬뒀구나. 아버지로, 남편으로, 남자로, 그리하여 온전한 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이나 깨달음은 삼년 전인 2008년 5월, 기묘하게 각인됐던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옛 빨치산 동료들이 숭고한 민족 통일을 얘기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우파 성향의 고향 친구가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듯 조문객을 데려오고, 빨갱이 새끼 잘 죽었다! 베트남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나이 지긋한 남성은 식장 입구에서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고….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같았던 장례식 풍경.
“기묘했던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과 아버지가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살아왔던 기억이 포개지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빨치산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한국적 유머 감각, 남도의 구수한 입말을 구사해 ‘여자 이문구’라는 평을 받는 소설가 정지아가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비록 1990년 ‘빨치산의 딸’이 장편소설로 분류돼 왔지만 소설보다는 ‘실록’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번이 사실상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숨지자 딸인 아리가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엮인 고향 구례에 내려와 상주로서 수많은 사연을 가진 조문객을 맞게 되면서 시작된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며 평생을 반목해온 작은아버지, 평생을 군인과 교련 선생으로 일해 온 우파 성향의 동창 박한우, 전혀 아버지와 연결이 되지 않는 담배 친구인 노랑머리 소녀, 경로당에 가서 아버지 ‘가오’를 세워준 학수…. 아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간 자신이 보지 못한 아버지의 다채로운 삶을 대면하게 된다. 빨치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속 깊은 친구, 친근한 아저씨, 다정한 남편, 멋진 남자, 그리하여 한 명의 인간을….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249쪽)
소설가 정지아는 왜 아버지의 죽음을 모티브로 장편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정 작가를 만나기 위해 지난 2일 구례 백운산 자락 무수내에 위치한 작가 자택을 찾았다.
―소설은 3일간의 아버지 장례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버지 장례식이 어땠는지.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저도 사십대였고 아버지 역시 여든 둘이어서 거리감이 좀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빨치산의 딸’을 쓰기 위해 두 분의 삶을 통째로 들었던 데다가 실제 책으로 펴내면서 보통 부모 자식과 달리 긴밀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기저에 있어서 장례식장의 아버지 사람들을 조금 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인물들이 풍성하고 너무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탄생했나.
“이번 소설에서 실제 인물은 아버지와 엄마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바꾸거나 가공한 인물이다. 여주인공 아리 역시 반 이상은 만들어낸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이 풍성한 것은 먼저 아버지 옆의 인물들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작은아버지 캐릭터 같은 경우는 실제가 아니지만, 지리산 자락에 그런 정도의 사연을 가지지 않은 집이 없다. 언젠가 어느 집에서 들었던 얘기 등을 합쳐서 나온 얘기다. 두 번째 제가 구례에 내려와서 만난 사람들이 소설 속 어떤 인물로 모이기도 했다.”
―이번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그것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 생각이었다. 제 아버지는 산에서 4, 5년 보냈던 사람이었는데, 산에서의 삶이 아버지 전체의 삶을 짓눌러 버렸다. 그 그림자만 걷어내고 나면 아버지 역시 자식이 예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빨치산을 과거의 붙박이로 살게 만든 건 그들에게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 세상, 사회일 수 있다.”
요컨대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자, 뒤늦게 아버지의 굽은 등과, 그 등에 새겨진 수많은 슬픔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자식들의 애절한 전상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1965년 구례에서 태어난 정지아는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행복’(2004), ‘봄빛’(2008), ‘숲의 대화’(2013) 등을 펴냈다.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 소설상, 노근리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적당히 덥고 신선해 사람을 만나기 좋았던 그날, 백운산 자락의 무수내 구릉마다 배롱나무나 밤나무, 칡넝쿨, 강아지풀까지 온갖 생명들이 가지나 잎을 뻗거나 흔들며 노래하고 있었다. 생명을, 우주를.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그 구릉과 시내 사이를 절묘하게 이어나간 산책로에는 풀들이 손을 뻗어 인사하고 가끔은 칡넝쿨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산책로는 이내 끊겼지만 구릉은 끝없이 이어졌다. 무수내를 넘어, 백운산 자락 이곳저곳으로, 멀리 지리산으로, 그리하여 저 우주까지….
따뜻한 시래기국 한 그릇과 소주를 앞에 두고, 현대사의 수레에 깔린 빨치산 아버지와 어머니, 그 수레를 되돌리려다 함께 치여 버린 작가, 그럼에도 우주 같은 소설과 문학 이야기도 끝없이…. 기자는 무심하게 묻고 또 묻는다. Well,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이때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