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오석준 후보자 임명 난항
정부, 외교 협의 시간 벌었지만
결론 촉구 피해자들 반발 전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절차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금화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재형(57·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2일 퇴임하면서, 새로운 주심이 사건을 검토하고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내 결론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외교적 협의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으나 신속한 결론을 촉구했던 피해자들의 반발은 거셀 전망이다.

김 대법관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갖고 6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이날까지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특허권 특별현금화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 사건에 대한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후임 대법관에게로 넘어간다.
법조계에서는 “현금화 결론의 연내 처리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김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된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임명 동의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적격’ 기조를 고수하고 있어서다. 오 후보자가 대법관에 지명된 후에도 근시일 내 결론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관측이다. 한 부장판사는 “보통 새로운 대법관이 오시면 두어 달 적응 기간을 갖고, 처음 반년은 오래 묵은 사건부터 처리한다”며 “현금화 사건은 연내 처리 우선순위에서는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사건 장기화 배경에는 “대법관들 간 합의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교적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신중해야 한다는 기류가 지배적이었을 것이란 의미다. 김 대법관은 이날 ‘미쓰비시 결정을 못 하고 떠난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퇴임사를 통해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두어 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며, 그 중간도 아니다”라고 했다.
전북 임실 출신인 김 대법관은 2016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제청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됐다. 20년간 서울대에서 민법을 강의했던 학자 출신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첫 전원합의체 판결과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9호’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 등의 주심을 맡아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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