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해서 동네 어려운 사람들한테 도움 주지. 면도기도 사주고 차비도 주고. 동네 행사 할 때 찬조금도 내지. 하루 1만원 정도 버는 것 같아. 어떨 땐 1만5000원도 벌고. 생활비는 따로 있어. 이걸로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도울 때 쓰는 거야. 젊은 사람들도 놀지 말고 일해야 돼. 노인병원 같은 데 가서 봉사활동도 좀 해보고 노인들 존중도 좀 해주고. 나는 이 일이 부끄럽지 않아. 좋은 일 하려고 하는 일이야.”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김기립(80) 할아버지의 말이다.


서울의 여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비가 많이 와 동네를 다니며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비에 젖은 폐지를 수거하는 모습이 자꾸만 맘에 쓰였다.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1㎏에 90원 줍니다. 책은 좀 더 비싸고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1만원에서 3만원 정도 번다고 봐요. 우리는 추석 하루 쉬고 문을 열어요. 연휴 끝나면 폐지들이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예전 같진 않아요.” 한 고물상 주인의 말이다.


고물상에서 폐지를 팔고 나온 할머니 한 분께 벌이는 괜찮은지 묻자 “얼마 전에 산 리어카를 잃어버렸어요. 21만원이나 주고 산 건데 누군가 훔쳐 갔어. 아니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까지 채워놓았는데 그걸 끊고 훔쳐 갔어. 억장이 무너지지. 하루 1만원 정도 버는데…. 한 달 일해 겨우 장만했는데 도둑맞았어. 또 이걸(접이식 카트)로 일을 해야지”라며 한숨을 쉰다.

종로구의 한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는 “80을 훌쩍 넘겼지. 여긴 100㎏ 하면 7000원 정도 벌어. 1㎏에 70원이야. 젖은 종이박스가 섞여 있으면 2㎏을 1㎏으로 쳐. 이 동네에서 폐지 줍는 일 하는 이들 몇몇 있어. 다른 동네서 원정 오는 사람들도 있고. 나 쉬는 날엔 그 사람들이 와 싹 쓸어 가. 좋은 종이박스만 가져가고 안 좋은 건 막 흩트려 놓고. 나쁜 사람들이야. 싹수가 없어. 자식들은 이런 일 하지 말라고 해. 하지만 하다 보니…. 그냥 움직이다 보니 아픈 몸도 좀 괜찮아지는 것도 같고. 요즘은 폐지 가져가라고 연락이 와. 돈복은 없어도 일복은 있는 것 같아. 네 복이면 가져가고 내 복이면 받으면 돼. 이러다 힘이 없어지면 나도 없어지는 거지. 추석에는 일 안 해, 내가 사장인데”라고 얘기를 늘어놓다 고장 난 수도를 고치러 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뛰어간다.



길에서 만난 또 다른 70대 할머니는 “예전에는 보건소에서 일했어. 청소도 하고 거기서 나오는 폐지도 팔고 해서 애들 공부 다 시켰어. 이 일만 30년이야. 요즘은 하루 5000원 정도 벌어. 반찬값 정도. 어저께는 2200원 벌었어. 평생 일했기 때문에 하는 거야. 그냥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2017년 기준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이 약 6만6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조사 자료를 발표했다. 또 자원재활용연대라는 단체는 2012년 기준으로 폐지수집 인구가 175만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간극의 어디쯤 위치해 있지 않을까. 2021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857만여명이다. 물난리로 유난히 힘들었던 2022년 여름이 지나고 있다. 곧 추석이다. 여름휴가 때도 찾아뵀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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