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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설 『재수사』 장강명 “한국 사회에 공허와 불안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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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24 07:30:00 수정 : 2022-08-25 1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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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신인 작가가 아니니까, 중량감 있는 소설을 써야할 텐데.... 소설가 장강명은 2018년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을 발표한 뒤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였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한국형 형사소설을 써보자.

 

제대로 된 범죄소설을 쓰기 위해 경찰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제법 많은 형사들을 만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듬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예상과 달리 자주 막혔고, 스토리 역시 잘 수습되지 않았다. 취재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은 그는, 다시 형사들을 인터뷰한 뒤 썼던 소설을 뒤집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특정한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이 아니어서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1700~1800매쯤 썼을 때, 어떤 ‘위기’가 닥쳐왔다. 등단한 이래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슬럼프가 찾아 왔다고,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털어놨다.

 

“소설의 한 60% 지점을 온 것 같은데,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1000매 이상은 써야 할 것 같은데. 소설이 한 권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죠. 요즘 두 권짜리 소설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런 생각이 들자, 힘이 쭉 빠졌어요. 소설을 빨리 쓰는 편이라 슬럼프를 겪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술도 입에 댔다. 그 사이, 연작 소설집 『산 자들』(2019)이나 에세이 『책 한번 써봅시다』(2021)를 펴냈다. 그래도 어떻게든 써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버텼다. 마음을 다 잡은 게 아니라 그냥 밀고 써내려갔다. 소처럼. 우직하게. 엉덩이로.

 

소설가 장강명이 22년 전 서울 신촌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의 범인과,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재수사』(은행나무)를 들고 돌아왔다. 원고 매수 3000매가 넘는 이 소설에 대해, 그는 “제 소설 가운데 가장 야심이 크고, 시간도 가장 오래 들였으며, 제 기를 가장 많이 빨아먹은 작품”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소설은 전체 100개 장 가운데 홀수 장에는 살인 범죄자가 오랫동안 메모한 기록이, 짝수 장에는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형사 연지혜와 그 동료들의 끈질긴 수사 과정이 각각 담겼다. 이를 통해 형사들이 22년 전 대학생 민소림 살인사건 수사 기록을 재검토하고 누락된 사실을 채워 나가면서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는 한편, 살인범의 기묘하고 광적인 심리와 의식 역시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화두를 던진다. 단순한 형사소설을 넘어 철학적 사유까지 풍성하게 담은 묵직한 소설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살인자인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삶의 의미와 윤리적 지침이 필요하다. 아니, 살인자이기에 더욱더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줄, 강하고 남다른 도덕적 중심을 원한다.”(86쪽)

 

『표백』,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 시대적 이슈를 순발력 있고 날카롭게 포착해왔던 소설가 장강명은 왜 슬럼프까지 겪어가면서 이번 장편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그의 작품 여정은 어디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장 작가를 지난 19일 전화로 만났다. 당초 합정동 출판사 사무실에서 인터뷰할 예정이었지만, 당일 장 작가가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급히 전화 인터뷰로 바꿔야 했다.

 

―지금 건강은 어떤가.

 

“괜찮다. 아침에 목이 따끔따끔해 자가 진단키트로 확인했더니, 확진이더라. (팬데믹 기간 어떻게 보냈는지) 특별한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집에서 글 쓰고, 칼럼 쓰고, 소설 쓰고 지냈다.”

 

―소설 주인공인 형사 연지혜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저는 인물을 먼저 만들어 놓고 소설을 쓰진 않는다. 다만, 연지혜 형사를 쓸 때, 범인이 한국의 경찰시스템이나 형사사법시스템과 맞서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시스템에 녹아든 사람이 아닌 발을 막 들인 신참 형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열정을 바쳐야 하는 처지이면서, 어설픈 20대는 아닌 1990년대생 30대 초반이고, 특히 강력범죄 수사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참 소리를 듣는 형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범인이 사유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이기에 터프 가이나 우락부락한 힘을 쓰는 타입 보다는 똑똑하고 현명한 형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사회적 피부랄까 표정은 이곳저곳에서 차용했던 것 같다.”

 

―작품에 무게감을 주는 범인이야말로 진정 주인공 같다.

 

“범인의 캐릭터는 연지혜 형사보다 더 뒤에 나왔다. 중간에 한번 글을 갈아엎고 다시 썼는데, 처음에는 범인의 목소리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지 않았다. 중간에 한 번 갈아엎을 때 범인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빼자고 생각해 홀수 장에 배치했고, 그러면서 범인의 캐릭터도 모양을 갖춰갔다.”

 

―특히 홀수 장에 범인의 사유가 계속 이어지는데, 어떤 의도였는지.

 

“제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목표(현실적 경찰소설과 2022년 한국사회 풍경과 그 기원의 탐구)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웰 메이드 범죄소설도 만들고 깊이 있는 사변소설도 쓰고 싶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홀수 장 짝수 장 구별 없이 범인의 목소리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쓰다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더라. 제 이야기를 범인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홀수 장을 시도한 것이다. 쓰면서는 아무래도 걱정이 좀 됐다. 호흡을 방해하지 않을까, 너무 장광설처럼 보이지 않을까, 너무 긴 게 아닐까.(개인적으론, 범인의 사유가 기괴하고 궤변 같지만, 그럼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묵직한 소설이 되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소설의 홀수 장에서 범인은 자신을 로쟈(죄와 벌)나 지하인(지하로부터의 수기), 스타브로긴(악령) 등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인물로 대입시키면서 독특한 심리나 사유 체계를 전개해 나간다. 아울러 근대를 열었던 계몽주의는 실패했다며 신계몽주의라는 독자적 사상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작가를 대신해 한국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공허와 불안이라는 화두를.

 

―살인 사건은 의외로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이 어떤 모멸감 같은 감정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명예의 반대인 모멸감은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갑질 같은 것도 단순히 돈을 깎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멸감이 더해질 때 문제가 되지 않는가. 그래서 모멸감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떤 콤플렉스를 건드릴 경우 살인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정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인정이나 긍정을 의미하는) 플라톤의 ‘티모스’ 개념과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범인은 “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며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려 시도한다. “내가 휘두른 칼은 민소림의 몸에 영원한 흔적을 남겼다. 민소림이 나를 공격한 말도 내게 상흔을 남겼다. 현대사회는 전자는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후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자를 경시한다. 하지만 신계몽주의는 두 공격과 상처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인지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도 물리 폭력에서 벌어지는 사건만큼이나 중대하게 다뤄져야 한다. 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2권 59쪽)

―작품 전반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 장 작가에게 도스토옙스키는 어떤 작가인지.

 

“도스토옙스키는 조지 오웰과 함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준 책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다. 20대 초반 『악령』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나도 이런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데뷔작 『표백』은 『악령』을 의식하면서 썼지만, 이번 『재수사』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합리화하려 했던 『죄와 벌』을 의식하면서 썼다. 소설 속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는 것은 『백치』이지만. 아울러 일찍 데뷔해 나름 유명한 작가였던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쓴 다음 한 체급 올라갔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작품 속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건가) 이번 작품 속에선 살인 현장이 『백치』의 어떤 장면과 비슷하기도 하고 소설 전개의 중심을 잡아주기도 한다. 민소림과 친구 등은 어떻게 보면 도스토옙스키가 예언한 인간형이다. 뭔가를 하려 하지만, 계속 공허에 휩싸이고 움켜쥐지 못하는 사람들, 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공허하지 않은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펼치는 사람들.... 소설을 읽다보면, 이미 200년 전에 문학이 한 번 공허와 맞서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고 이것이 인간한테 매우 중요한 문제구나, 하는 느낌을 줄 것 같았다.”

 

―‘현실적인 경찰소설’이란 목표는 어느 만큼 이뤄진 건가.

 

“일단 저는 만족한다. 묘사가 그렇게 리얼하지 않고,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고친 부문에서 형사들이 좀 웃기도 하겠지만. 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선 터프한 형사들이 나와서 막 액션을 하거나 또는 형편없이 묘사된다. 실제 형사를 만나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 다들 예의 바르고, 말로 수사하고, 되게 자부심도 있더라. 물리적인 폭력이나 액션 없이 거칠고 험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했다. 상당히 사실적으로 살아났다고, 저는 생각한다.”

 

―2022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공허와 불안을 꼽았는데.

 

“무슨 리서치를 하거나 연구를 한 건 아니다. 최근 한국 현대사에 대해 느낀 감각을 표현할 단어를 찾다 보니까 공허와 불안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객관적으로 괜찮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지 않고, 뭔가 좀 허하게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 하는 방향이나 목적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도, 그 방향과 방법을 모르는 사회가 됐다. 이것은 상당히 심오한 욕구인데,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서 공허를 느끼는 것 같다. 공허의 기원은 물론 계몽주의가 될 것이다. 불안의 경우 모든 국민이 다 똑같이 느끼는 것 같다. 10년 뒤 20년 뒤에 무엇으로 먹고 살래, 하고 물어보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들 이러다가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산다. 일상적 불안의 상황이 됐다. 불안의 기원을 찾아보면, 아무래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국 사회는 그때 확 바뀌었고, 각자 도생하는 시대가 됐으니까. 소설이 2000년이 배경인 이유는 IMF 직후 학교에 입학한 젊은이들을 등장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는 불안해 일단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뛰었지만 40대 중반이 돼 돌아보니까 무엇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지금은 공허와 불안이 정점에 도달한 상황으로, 다음이 잘 안 보이는 시대다.”

 

―장편 『재수사』는 소설가 장강명의 전체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량감 있는 작가, 한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재수사』를 쓰고 나니까, 앞으로도 이런 정도의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저에겐 분수령이 된 것 같다. 스스로 장편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장편들도 사유가 많이 들어가고 깊이가 있고 무게감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 체급 커졌다고 생각한다.(작가 여정을 항해로 비유한다면) 이번에 『재수사』 덕분에 정리되는 것들이 있었다. 방송이나 영상 매체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들이 들어왔지만 거부하면서 소설에 집중해 왔다. 왜 소설을 쓰는가를 생각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근해의 방해물이나 암초 지대를 벗어나서 진짜 큰 바다, 수심이 깊은 대해의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 이제 쭉쭉 나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염천의 더위가 이어지던 2006년 8월 어느 날 자정 무렵, 동아일보 5년차 기자 장강명은 신촌의 원룸에 불콰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허탈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몇 차례 응모한 신춘문예에 떨어진 뒤 나중에 나이 들어서라도 꼭 소설가가 되리라고 생각해온 그였다.

 

“제가 그때 입사 5년차 정치부 정당팀 막내 기자였습니다. 정치인의 조찬이나 만찬 체크는 물론 뻗치기를 하느라고 거의 매일 자정 무렵에야 귀가했어요. 귀가하면 와이셔츠 목깃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양말에는 쿰쿰한 냄새가 났지요. 술도 잦았고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도통 없었어요.”

 

나, 정말 소설을 쓰고 싶다. 허탈한 생각과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기어이 노트북을 켜고 소설 몇 줄을 쓰기 시작했다. 탁탁 탁탁탁. 그날 이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 장강명’이 태어난 날이었다. 소설가 장강명의 원점이었다.

 

“이미 대학 시절 SF 동호회를 하면서 글쓰기의 기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밤에 틈틈이 쓰기 시작했어요. 몰래 쓰는 삶이 시작됐죠. 물론 그 중편소설은 출간하진 않았고요. 그 전까진 그냥 취미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때 소설가로의 삶이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1975년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SF를 좋아했던 그는 로봇공학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1994년 연세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PC통신 하이텔의 「과학소설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이때 SF단편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깨달아 갔다. 재학 중에 『월간 SF 웹진』을 창간해 운영하기도 했다.

 

졸업 이후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신춘문예에 몇 차례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아직 모자라구나. 글 쓰는 일과 관계가 깊은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봤지만, 역시 번번이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한 그는 회사를 그만둔 뒤 다시 언론사 시험을 본 끝에 2002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2006년 그날 밤 이후 틈틈이 글을 써온 장강명은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을,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산 자들』 등을,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 『팔과 다리의 가격』 등을 펴냈다. 한겨레문학상을 비롯해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2013년 이후 전업 작가가 됐고, 현재 수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파 소설가 같다. 화두는 어떤 사회 시스템이고, 그것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다. 이번에 『재수사』는 분량은 길었지만, 스케일이 큰 건 아니었다. 앞으론 스케일이 크고 대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쓰고 싶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조지 오웰, 도스토옙스키, 스타인벡 같은 잊혀 지지 않는 소설을 쓴 작가가 되고 싶다.(명작을 쓴 작가가 되고 싶다?) 네.”

 

―글쓰기 전략이나 원칙, 노하우가 있다면.

 

“『재수사』가 너무 오래 걸려서, 이젠 빨리 쓰는 작가라고 부르기엔 그럴 것 같다. 이전에는 어떤 사회적 이슈를 순발력 있게 소화해서 날렵한 대로 완성도 있게 빨리 썼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쓸 수 있겠지만, 예전처럼 관심은 없다. 저의 태도가 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변하고 있다는 것인가) 『재수사』는 차곡차곡 우직하게 나아가는 소설이다. 소설을 쓰면서 저도 우직한 작가가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별로 우직한 작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 쉽게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얼마나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느냐를 주로 고려하며 쓴다. 어떤 종류의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 될 때까지 우직하게 쓰려고 한다.”

 

―그렇다면 글쓰기 패턴이나 루틴도 바뀐 것인가.

 

“글쓰기 루틴은 그대로다. 매일 아침 6시 반쯤 일어나 점심 먹을 때까지 쓰고, 밥 먹고 나서 낮잠을 자거나 쉬다가 오후에 조금 쓴다. 다만 글을 쓸 때 마음가짐 하나가 바뀌었다. 예전엔 독자를 많이 생각하면서 작품을 썼다면, 요즘은 독자보다는 작품 자체를 더 생각하고 글을 쓴다. 제가 좋아하는 방식을 쓴다.(독자를 염두에 두는 글쓰기와 작품을 염두에 두는 글쓰기의 차이는) 독자들이 이런 전개와 결말, 인물을 좋아할까 싫어할까를 의식하면서 썼다면, 요즘은 그것보다는 좋은 작품만을 염두에 두고 쓴다는 얘기다.”

 

―최근 아내와 함께 독서 플랫폼 ‘그믐’을 만들었는데.

 

“아내의 일이라서 제가 설명하긴 조금 그렇다. 다만 평소에 저나 아내 모두 독서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독서 생태계 문제를 이야기해 왔다. 작년 회사를 그만둔 아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 독서 플랫폼을 만들었다. 9월 말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고려대와 MOU를 맺은 상태이고, 잡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 7호와도 함께 협업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지금 어쩌면 이전과 크게 달라진, 아니 전혀 새로운 소설가 장강명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장강명은 몇 년 전, 아니 최소한 2018년 문학담당 기자가 아닌 이슈팀장으로 만났던 그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나이와 위치, 처지를 훨씬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그러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고 말했던 그는, 지금 별도의 건강관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살도 제법 붙었고, 머리엔 흰머리도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더 이상 젊은 작가가 아니라 데뷔 10년을 넘긴 중견 작가라며,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었다.

 

아울러 더욱 비범한 작품 비전과 야망을 가진 작가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부끄럽지만, 이전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깊어졌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 이후 더 묵직한 소설들을 쓰게 됐던 것처럼, 자신 역시 『재수사』 이후 더욱 묵직하고 진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아니 벌써 난마처럼 얽힌 한국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로의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장편소설을, 문학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태도가 우직하고 원칙적으로 바뀐 것도 예사롭지 않다. 예전엔 우직한 작가가 아니었다고 스스로 반성했고,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론 작품만 보고 우직하게 써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목에선 언젠가 대표적 장편작가인 김탁환이 장편 쓰기를 ‘태평양 건너기’로 비유한 일이 서늘하게 떠올랐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아니 전혀 새로운 소설가 장강명을 이미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센 숨을 몰아쉬며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우직하게 진격 중인 장편소설가 장강명의 재탄생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은행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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