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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만든 인공위성… 역사를 쏘아올리다

입력 : 2022-08-20 01:00:00 수정 : 2022-08-19 19:40:50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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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불모지 韓, 발사체 잇단 성공
7대 우주강국으로 도약 새 이정표
‘우리별’ 개발진이 세운 쎄트렉아이
‘인공위성 수출’ 업적 쌓으며 성장
시행착오로 쌓은 경험담들 큰 울림

쎄트렉아이 러시/박성동·이강환/위즈덤하우스/1만6000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와 달 탐사선 ‘다누리’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7대 우주 강국이 됐다. 우주산업 불모지에서 우주 강국으로 나아가기까지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에는 수많은 연구·개발인력의 열정으로 여러 이정표가 세워졌다. 2002년 11월 국내 최초 액체추진과학로켓(KSR-Ⅲ) 발사, 2013년 1월 나로호 3차 발사 등 숱한 도전의 역사에서 극적인 첫 순간은 1992년 8월 11일 오전 8시 8분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위성궤도로 쏘아 올려진 날이다.

1992년 8월 11일 오전 8시 8분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쏘아올려져 대한민국 우주의 문을 처음 연 ‘우리별 1호’. 한국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하던 당시 KAIST 출신 한국 연구진이 영국에서 실험하는 모습. KAIST 제공

‘쎄트렉아이 러시’는 우리별 1호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 우주 기업 ‘쎄트렉아이’의 성장기를 담은 신간이다. 저자는 쎄트렉아이를 창업한 박성동과 과학저술·해설가 이강환. 박성동은 카이스트(KAIST) 학부 1기생으로 영국 서리대에서 인공위성을 공부한 후 우리별 1호에 이어 우리별 2호, 우리별 3호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만든 인공위성을 외국에 팔아보자’는 단순하지만 무모한 목표로 1999년 말 동료들과 함께 쎄트렉아이를 창업했다. 우리나라 첫 우주기업을 2008년 코스닥에 상장시키며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다 올해 은퇴했다.

 

이처럼 ‘인공위성 수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온 쎄트렉아이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1989년 여름, 과학기술대학(카이스트의 옛 학부과정) 교내 게시판에 붙은 작은 공고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개발할 유학생을 모집합니다.’

박성동·이강환/위즈덤하우스/1만6000원

“받은 혜택의 곱절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져라. 나는 우리나라의 위성개발 기술에 헌신할 친구들을 찾는다”며 이렇게 당시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 최순달(1931∼2014) 박사가 선발한 유학생은 전산과 김형신·최경일, 전자과 김성헌·박성동·장현석. 이들은 빠듯한 지원금 때문에 햄버거 가게나 중국집 등에서 일하면서도 모두 1년 만에 시험과 논문 발표를 통과해서 무사히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리대 위성 제작에 참여한다.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큰 우주개발사업 현장에 오랫동안 몸담은 박성동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우리별3호 발사를 앞두고 개발을 주도한 당시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박성동과 과학기술처 간부 간 대화도 그렇다. “그래도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제가 대청댐에 가서 빠져 죽지요.”

한국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하던 당시 KAIST 출신 한국 연구진 단체 기념사진. KAIST 제공

그렇게 1999년 발사된 100억원짜리 우리별 3호는 2000년 강릉 산불 때 피해지역 촬영 사진으로 제 몫을 했다. 비슷한 시기 발사된 항공우주연구원의 아리랑 1호는 2000억원 이상 투입됐지만 흑백 카메라가 탑재돼 산불 피해 사진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인공위성’이라는 국책과제를 둘러싼 국립연구기관 항우연과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줄다리기는 애초 오래 가기 힘든 대결이었다. 항우연이 센터를 일방 흡수하는 식으로 정리됐고 이 과정에서 독립 깃발을 세운 게 ‘쎄트렉아이’다. 센터 인력을 한꺼번에 데려가겠다는 외국 기업 제안도 마다하고 우리별 연구진이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별 1호가 촬영한 지구모습. KAIST 제공

이후 쎄트렉아이는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스페인 등에 인공위성을 수출하며 전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우리보다 먼저 인공위성 개발을 시작한 싱가포르에 교육 프로그램을 판매한 것이 세계 시장 진출의 시작이었다. 말레이시아에 회사 기술력을 집약한 위성을 처음으로 수출하며 우리나라 과학 역사에 신기록을 남겼다. 아랍에미리트가 2021년 화성 탐사선 아말을 성공시키며 우주 진출을 당차게 선언했던 배경에도 쎄트렉아이 협력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해상도와 기술력에서 여러 최초 기록을 단 쎄트렉아이의 특별한 위성들은 지구궤도를 촘촘히 수놓았다. 자국 인공위성이 없던 나라들에 기술이전을 하고, 인공위성 탑재체에서 파생된 기술을 활용해 환경방사선감시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우주 ‘연구’를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창업 멤버 25명으로 시작한 쎄트렉아이는 2022년 현재 400여명 규모가 되었으며, 2020년 매출 892억원, 영업이익 137억원을 기록하는 등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왔다. 벤처 창업기로서도 ‘쎄트렉아이 러시’는 시행착오로 쌓은 솔직한 경험담을 후발 주자에게 들려준다. 설립 과정 당시 아쉬웠던 부분, 상장을 하는 이유, 투자 유치의 바람직한 방향 등 선배 창업자의 실전 경험은 울림이 크다. 대학 내 연구소에서 연마한 ‘기술’을 가지고 회사를 설립한 사례로 박성동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당차게 표출하는 옵션”으로 이공계 인력에게 창업의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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