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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로 인한 괴로움은 비단 사람만 겪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로 열두살(사람으로 치면 65세)인 반려묘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변비 때문에 동네 동물병원을 다녀온 적이 몇 번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언젠가 상태가 너무 심각해 입원까지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신용카드로 결제한 병원비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던 것은 올해 3월쯤이다. 수의사는 사료를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R사가 만든 고양이 변비 예방 사료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지금까지 몇 차례 사료를 바꾼 적이 있는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무슨 신통방통한 재료로 만들었기에 그런 건가 싶었는데,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변비 예방의 왕도는 식이섬유에 있었다. 역시 사람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었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2㎏짜리 사료는 정확히 한 달 만에 바닥이 났다. 병원에서 4만2000원을 주고 산 사료가 인터넷에서는 5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 5월 말에는 똑같은 사료 가격이 6만7300원으로 올라 있었다. 또 한 달 뒤에 8만9500원으로 오를 줄 알았더라면 그때 사재기를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가 그러하듯 나 또한 그것이 저점인 줄 몰랐다.

지난달 들어서는 도무지 사료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픈마켓의 한 상점은 이 사료를 16만원대에 판매 중이었다. ‘전국 마지막 1개 남음’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돈도 돈이지만 ‘배송이 안 된다’, ‘일방적으로 결제를 취소당했다’는 판매자 리뷰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고양이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특정 사료를 구하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경험담이 드문드문 올라왔다.

사료 포장 뒷면에 적힌 번호로 R사의 한국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프랑스에 있는 본사 생산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도 공급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두 번 들은 질문이 아닌 듯 용수철처럼 대답이 튀어나왔다. 다만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고양이 사료 공장도 공급망 대란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육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다 운송에도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자,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수요가 증가한 것 또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소비자 조사 기관인 아테스트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동안 반려동물을 입양했다고 한다.

지난 18일,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내가 찾던 사료가 병원에 입고됐다는 연락이었다. 마침 휴가 중이었던 터라 늦지 않게 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사료를 정가에 팔고 있었다. 병원 직원은 “한동안은 사료를 구하기가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뒤늦게 펼친 한 조간신문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활고 때문에 올해 영국 내 반려동물 유기 건수가 지난해보다 30% 늘어났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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