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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6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 경기장에 들어서니 한 직원이 길을 막고 용건을 묻는다. 내 얼굴이 담긴 미디어 카드를 보여주자 이 직원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열어줬다. 복도 중간에 ‘기자실’이라고 적힌 문이 보였다. ‘야구 기자들만 들어갈수 있는 문’이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자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더니 지난 시간이 떠올라 이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야구를 보는 게 쉽지 않았다. TV 중계는 언감생심이고, 라디오 중계도 감지덕지했던 때였다. 전화예매는 원활하지 않아 무조건 현장에서 표를 사야 했고, 특석 외 좌석제 운영도 안 돼 기다리지 않으면 원하는 곳에 앉을 수도 없었다. 경기 결과를 다음 날 신문이나 ‘700 전화 서비스’로 확인하던 시절엔 그랬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92년 5월 어느 주말 아버지께 야구장에 가자고 졸랐다. ‘어린이회원 무료입장’이라고 적힌 빙그레이글스 팬북 일정표를 들고서다. 아버지는 못 이긴 척 내 손을 잡고 한밭구장으로 향했다. 야구장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부자는 티켓을 사기 위해 인파와 섞였다. 긴 기다림 끝에 표를 받고, 입구 앞 대열에 합류해 입장을 기다렸다. 지루함이 이어지던 순간, 기다림 없이 야구장에 들어가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 저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디? 우리도 절로 가자” 보채니 아버지가 답한다. “저건 기자들만 들어가는 문이여.” 내가 다시 물었다. “표는? 기자들은 야구 공짜로 보는 겨?” 아버지는 “그려, 기자들은 맨날 안 기다리고 야구도 공짜로 봐”라고 대답했다.

 

난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비꼬듯 물었다. “뭐여, 그럼 기자들은 장종훈이랑 정민철도 만나겄네?”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려, 기자는 걔네 만나는 게 일이여.” 이 말은 내 인생을 이끌었다. “그려? 아빠, 그럼 나 기자 될껴.”

 

2009년 9월 한 언론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는 행운을 누렸지만 스포츠부까지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희망부서를 내라는 사회부 사건팀장 지시에 ‘체육·체육·체육’을 적었고, ‘부서 민원을 받는다’는 편집국장에게 손편지까지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사이 스포츠와 멀어졌다. 세월호와 탄핵 정국, 조국 사태 등 숱한 이슈에 치이다 보니 야구 볼 여유조차 잃어갔다. 지난 3월, 다시 돌아온 인사 민원 시즌. 새 사회부장에게 문화체육부를 희망한다고 습관처럼 말씀드렸다. 이번엔 달랐다. 은인이 나타난 것이다. 새 사회부장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새 문화체육부장은 “환영한다”고 했다.

 

다시 한번 야구장을 바라본다. 그땐 1992년 5월이었는데 이젠 2022년 5월이다. 30년 만이다. 피천득 소설 속 늙은 거지가 여섯 달 만에 은전 한 닢을 갖게 된 것에 비하면 꽤 오래 걸렸다. 1992년, 2위 해태를 10.5게임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던 독수리 군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좀 더 감상에 젖고 싶었지만 분위기는 금세 깨졌다. 이날 한화는 KIA에 2-13으로 졌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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