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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부터 9일 새벽까지 서울에는 115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쏟아져 한강 이남이 물바다로 변했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저녁 시간에 물폭탄이 집중되면서 도로가 침수되고 지하철이 멈춰서는 바람에 퇴근길 직장인들이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난리를 치렀다. 비가 멈춘 뒤에는 서울 주요 도로 일부 구간이 전면 통제돼 출근길 교통대란이 빚어졌다. 어제 오전 자가운전 출근길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평소 1시간 남짓인 회사까지 무려 5시간이 걸렸다. 질겁했다.

정부는 그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을 오전 11시 이후로 미룬다는 공지를 냈다. 전날도 아니고 당일 아침 지시를 받은 공무원들은 우왕좌왕했다. 상당수 공무원들이 출근길에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아쉬움은 또 있다. 공무원 출근시간은 조정하면서 민간은 기업체 자율에 맡긴다고 한 것이다. 재난 상황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공무원은 출근하고, 민간은 출근시간을 늦추거나 재택근무를 권장하도록 유도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직장인들은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말로 들려 씁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밤 역대급 물난리 와중에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찾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면 보고나 의전에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집에서 전화로 실시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재택근무가 괜찮다는데 직장인들은 왜 이 난리통에 출근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재난급 상황에서도 정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난의 행군처럼 여겨지다 보니 과거 뉴스거리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1990년 9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을 때도 많은 직장인들이 넥타이 차림의 정장을 입고 가슴까지 차오른 흙탕물을 헤치며 회사를 향했다. 당시 뉴스 영상을 보면 기자가 “어딜 가느냐”고 묻는데 무슨 질문이 그러냐는 듯 뜨악하게 바라보는 장면도 있다. 그런 직장인들을 보며 장하다고 여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효율적인 매뉴얼을 만들 때가 됐다. 기상재앙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듯해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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