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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비상식이 열등은 아니야"…‘자폐’ 딛고 나만의 홀로서기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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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6 10:00:00 수정 : 2022-08-06 09: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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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현실 속 ‘우영우’들

프로 골퍼 이승민 선수
美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올라
어릴적부터 애니보다 골프 방송 즐겨
2017 KPGA 투어 프로 선발전 합격
"골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법 배워"

‘라이브 드로잉 화가’ 한부열 작가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그림 완성시켜
30cm 길이 자·펜 이용 독특한 시각 표현
미술계도 인정…발달장애인 첫 정회원
2013년 전시회 호평 계기 전국 개인전

첫 박사학위 취득 윤은호 초빙교수
인하대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학위 취득
철도신문서 1년2개월간 기자로 근무도
학창시절 ‘서브 컬처’에 매력…책도 출간
"연구로 의미 있는 결과물 내놓고 싶어"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인 한스 아스페르거는 자폐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 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최근 작품성과 화제성 모두 인정을 받으며 인기리에 방영 중인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 우영우의 대사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1660점 만점인 변호사 시험에서 1500점 이상을 받아 합격했다. 대형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한 뒤에는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시각으로 법정에서 맹활약한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ENA

지난 6월29일 처음 방영된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발달장애의 일종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자폐(自廢)’라는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특징이다. 상당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은 주변에 큰 관심을 갖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한편,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증상과 성향은 각기 다르다. 드라마에서도 우영우와 달리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피고인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만 15세 이상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1만7797명(한국장애인고용공단 조사)에 달한다. 드라마와 달리 국내엔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없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이들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한 프로 골프 선수 이승민씨. 미국골프협회

프로 골프 선수 이승민(25)씨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미국골프협회가 처음으로 개최한 이번 대회에서 이씨는 세계 각국의 장애인 골퍼 77명과 경쟁했다.

 

이씨는 2세 무렵 선천적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머물렀던 이씨가 관심을 가진 것은 골프였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TV만 틀면 골프 경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만화영화에도 관심이 없었던 이씨는 골프만 나오면 눈을 떼지 못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골프채를 쥐게 된 시기는 중학생 때였다. 처음부터 프로 선수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다. 이씨의 어머니 박지애씨는 “승민이가 바깥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골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량을 드러내더니 2017년 4전 5기 끝에 KPGA 투어 프로 선발전에 합격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던 이씨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 3급으로 조정됐다. 사회적응지수가 높아진 것이다. 박씨는 “골프를 하면서 승민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씨는 “각자가 다른 상황에 부닥쳐 있기 때문에 다른 장애 가족들에게 ‘어떤 것이 길이다’라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오래 기다려준다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국내 최초 자폐성 장애 라이브 드로잉 화가’ 한부열 작가. 한부열 작가

한부열(38) 작가는 ‘국내 최초 자폐성 장애 라이브 드로잉 화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라이브 드로잉은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하는 장르다. 한 작가는 30㎝ 길이 자와 펜을 이용해 세상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표현한다. 미술계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발달장애인으로선 최초로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으로 등록했다.

 

한 작가는 한 번도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한 작가의 어머니 임경신씨는 “한 작가의 아버지 직업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잠시 거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아들이 미술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이 집이나 나무를 그리면 한 작가는 꽃에 앉아 있는 벌이나 꽃잎의 줄기를 그렸다. 이후 한 작가는 자신의 방에서 11년간 혼자 그림을 그렸다. 양손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닳을 정도로 몰입했다. 임씨는 “아들에게 갖다 준 스케치북이 적어도 수천권은 될 것”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는 절대 작업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이 있는데도 온 가족이 1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우연한 계기로 참가한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한 작가는 전국을 돌며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주요 전시회에 제안을 받으면서 대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임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오래 키워온 엄마로서, 다른 부모들에게 ‘단시간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장애인 자식은 성장하면 부모에게 휴식기가 생기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윤은호(35)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다. 인하대에서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딴 윤 교수는 철도신문에서 1년2개월간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2019년 2학기 모교에 임용된 그는 첫 수업 당시 “한국 대학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강의하는 첫 시간이 될 것”이라며 “지금이 아마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일반 학교 통합학급에 재학한 윤 교수는 학창 시절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그는 도서관에서 접한 서브 컬처에서 해방구를 찾았다. 이러한 관심사는 코스프레 문화의 정체성과 사회적 의미를 다룬 서적을 출간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윤 교수는 자폐 컨설팅 기관 AP코리아와의 과거 인터뷰에서 “연구공동체들과 협업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는 자폐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했을 때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장애 과장 없이 묘사…우영우 주변 따뜻한 사람들 부러워"

 

경기 시흥시에 거주하는 손성락(39)씨는 최근에서야 겨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9일 첫 방영 이후 한 달이 더 지나고 나서다. 손씨가 시청을 망설인 이유는 딸 때문이었다. 올해 8세인 손씨의 딸 수아양은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예전에 봤던 영화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범죄에 노출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쉽게 눈이 가지 않았다.  

 

억양이 없는 말투, 초점을 잃은 시선,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손씨는 드라마를 보다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주인공 우영우 모습이 수아양과 너무나 닮아서다. 극 중에서 어린 우영우가 처음으로 말문을 틔웠을 때, 우영우의 아버지가 딸을 번쩍 드는 장면을 보고서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라이브 드로잉 화가 한부열 작가의 어머니 임경신씨는 “우영우가 활약하는 모습이 통쾌하기도 했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부분도 보여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우영우가 고래 얘기가 나올 때 손을 휘저으며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임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 90% 이상이 자신이 몰입하는 대상이 나오면 흥분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드라마와 달리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모든 자폐성 장애인을 잠재적인 천재로 바라보는 시선도 가족들에게는 부담이다. 우영우처럼 천재성을 가진 장애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가족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다. 지난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개한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움 없이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고 응답한 자폐성 장애 가구는 전체의 54.5%였다. ‘세수나 양치, 머리 감기를 혼자 할 수 있다’고 응답한 가구 역시 48.9%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너희 자녀는 어떤 재능이 있느냐”는 주변의 무심한 질문이 가족들에겐 고통으로 다가온다. ‘우리 아이도 우영우 같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낙담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체로 “드라마에서 큰 위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장애를 묘사하면서도,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손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영우를 따뜻하게 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딸 곁에도 저런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아를 세상에 내놓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까에 대해 늘 걱정했는데, 드라마를 통해 미래를 미리 본 듯한 느낌이다.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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