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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하얼빈』 김훈 “청춘은 기다림 아닌 순간에 완성된 에너지...동양평화 지금 더 위기”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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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4 07:30:00 수정 : 2022-08-03 21: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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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간담회하는 김훈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훈 작가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8.3 mjkang@yna.co.kr/2022-08-03 11:39:04/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소설가 김훈은 지난해 몸이 아팠고, 올해 초에야 건강을 회복했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 이때 더 이상 미루어 둘 수가 없다는 어떤 절박함이 벼락처럼 “그를 때렸다”. 청년 안중근 이야기였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쓰는 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일본인들이 작성한 안중근 신문 조서를 우연히 읽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안중근과 우덕순과의 만남이 아름답게 생각됐습니다. 두 사람은 이때 열흘 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며 함께 죽이러 가자고 뜻을 모으면서도, 대의명분이나 준비 정도 등은 한마디도 토론하지 않았어요. 인간 사상의 밑바닥은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것들을 포용하고 있겠지만, 그 사상을 배경으로 혁명에 나서는 자들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이런 것들이 혁명의 추동력이고 삶의 열정, 삶의 격정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는 이때부터 청년 안중근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 ‘밥벌이’를 하는 동안 틈틈이 자료와 기록을 찾아보았다. 특히 요시다 쇼인의 스쿨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萩)시를 찾아가는 등 이토의 족적을 찾아서 일본 여러 곳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안중근 소설을 쓰지 못했다(그는 이를 “방치”라고 표현했다). 그건 밥벌이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청년 안중근의 에너지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변명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작가의 말」)

 

현장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덜 만족스럽더라도 빨리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얼빈은 물론 하바로프스키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가보고 싶었지만 건강에 자신이 없는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바람에 가지 못한 그였다. 대신 안중근과 이토의 전 생애가 아닌 저격 직후의 시기로 압축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올해 1월1일부터 서둘러 쓰기 시작했다. 서른 한 살의 빛나는 청춘 안중근을 그린 소설은 그리하여 6월에 “놀랍도록 빨리” 쓰여졌다.

 

“...포수, 무직(이상 안중근의 법적인 직업), 담배팔이(우덕순의 직업)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깨어난 말들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것의 힘으로 일어서서 말들끼리 끌고 당기며 흘러가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저 남루한 세 단어가 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304쪽)

 

소설가 김훈이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을 내고 3일 서울 합정역 한 커피숍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소설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가면서 안중근과 이토 간의 갈등과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의 갈등, 천주교 사제들과 안중근의 갈등이라는 3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소설 속 안중근은 영웅적 풍모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난세 속에 놓인 운명 앞에선 내면적으로 고민하고 주저하는 한 명의 청년이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89쪽)

 

고뇌하는 청년의 내면에 집중된 감각은 그리하여 이토를 저격하던 순간마저도 다음과 같이 무심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 역은 적막했다.”(166쪽)

 

그는 「작가의 말」에서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년이었다”(305쪽)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토를,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물이 아니라 문명개화라는 대의와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을 동시에 내면에 지닌 인물로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부터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요.

 

“사실 제 필생의 과업은 아닙니다. 필생의 과업은 평생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 것인데, 젊은 시절 쓰기로 하고 방치한 것이니까요. 우선 밥벌이를 하느라 바쁜 시간이었고, 이 일을 감당해내는 것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기로 결정한 올해 초에는 극도로 압축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젊을 때 생각했지만 필생 동안 방치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시작은 우연히 일본에서 작성한 안중근의 신문조서를 읽은 것부터입니다. 말도 못 하는 충격을 줬어요. 저에게 안중근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큰 충격을 줬는데, 결국 그 글이 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죠. 책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취재, 집필하는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처음 구상한 것은 굉장히 방대했습니다. 요시다 쇼인의 스쿨이 있던 (야마구치현) 하기시를 찾는 등 이토 히로부미의 소년기, 형성기, 전성기까지 족적을 다 취재했어요. 그 과정이 저의 소설에는 전혀 반영이 안 됐죠. 그래도 그 시대 분위기를 아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안중근에 대해선 취재를 많이는 못 했습니다. 안중근이 지나온 경로를 가보려고 연초에 준비해 놨는데, 제 건강에 자신이 없고 그 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미 창궐해 여행이 불편하다고 해서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부분이 아쉽고 유감스럽습니다. (취재가) 소설을 쓰는데 표현이나 묘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손바닥에 장악하는 느낌이 들면 자신 있게 글을 써낼 수 있는데, 이번엔 그런 장악력이 전혀 없었어요. 소설을 다 썼지만, 다음에 개인적 여행으로라도 다녀올 생각입니다.”

 

장편소설 '하얼빈' 소개하는 김훈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훈 작가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8.3 mjkang@yna.co.kr/2022-08-03 11:38:59/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안중근이 의병투쟁하며 왼손 약지를 자른 내용은 담기지 않았는데요.

 

“저는 (책을 통해) 안중근의 생애를 다 쓰지 않았고, 안중근의 형성기는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그 당시에 대한 기록은 매우 설화적 기록, 영웅 같은 설화가 남아있죠. 단지 동맹 부분은 안중근이 의병 투쟁을 했던 시절인데, 저는 안중근이 의병투쟁에서 의열투쟁으로 전환하는 부문부터 다루기 시작한 겁니다.”

 

―작품을 쓰며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무엇이었는지요.

 

“안중근의 처자식에 관한 대목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가 이토를 총으로 쏘러 가면서 황해도의 처자식들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였어요. 안중근이 10월26일 이토를 암살했는데, 10월27일 그의 처자식이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전날 남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것인데, 나 같으면 참 괴롭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중근은 그런 고통도 대사 한 줄로 얼버무렸어요. 면회 온 동생에게 내가 내 처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사 한마디로 그런 끔찍하고 거대한 고통을 뭉개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둬놓을 수는 없다”고 쓰셨는데, 이를 조금 설명해 주시죠.

 

“저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었어요.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자신의 적으로 생각해 쏴 죽이고 그 시대의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동양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초야에서 뒹구는 한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안중근 시대의 동양과 비교하면 지금의 동양은 더욱 절망적이죠.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고, 북한은 핵으로 무장하고, 일본은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고 미국과의 동맹 때문에 동양평화가 정말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안중근 시대보다 더 어려운 동양의 평화가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며 안중근 의사를 그 시대에 가둬놓고 그 시대 문제로 국한된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썼습니다.”

 

―『칼의 노래』의 주인공 이순신과 『하얼빈』의 주인공 안중근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쓴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역사 속 인물과는 다릅니다. 역사 속 이순신은 왕조사상,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힘으로 전쟁을 수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소설에 나오는 이순신은 그런 게 없는 인물로 그렸어요.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세상을 한심하게 여기는 거에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희망의 허상을 제시하기 마련인데, 소설 속 이순신은 이를 제시하지 않고 현실을 들이받고 나가는 사람으로 그렸습니다. 안중근이라는 사람은 (이와 달리) 희망의 목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싸운 사람이에요. 그가 쓴 「동양평화론」에는 그런 희망의 목표가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쓰여 있죠. 모든 동양의 국가들이 독립된 게 동양의 평화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게 안중근의 평화이고 비극이죠.”

 

―보도 자료에는 이번 작품이 『칼의 노래』를 넘는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동의하는지요.

 

“저는 넘어선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넘어섰느냐 아니냐는 매우 과학적이지 못한 언사라고 생각합니다. 넘어섰는지 그 안에서 주저앉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을 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2017년 기자 간담회에선 앞으로 역사를 벗어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저는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썼지만, 그것이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소설 속 이순신은 역사 속 이순신이 아닙니다. 하등 관련이 없는 제가 만든 인물이죠. 『남한산성』도 역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고립무원에 빠진 성에서 인간이 그런 절대적인 고독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묘사를 한 거죠. 『하얼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배경 갖고 있지만,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청춘과 그 내면에 대해 쓴 글이죠. 인간 안중근이 옆에 와있는 것처럼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듣는 것처럼 그리려 했던 것이지, 영웅을 그리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는 수많은 책과 보고서에 이미 드러난 것이죠.”

 

―현재 동북아 정세, 특히 일본과의 관계도 복잡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대일 관계는 초야의 늙은이가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제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이해되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민족주의가 안중근 시대에 국권이 위태로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동력이 됐던 고귀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민족주의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서 매우 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 계층 간 먹이피라미드가 있고 이념과 갈등이 대립하는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이 사회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김훈의 이날 기자간담회는 묘하게 가볍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으레 두어 번쯤 나올 법한 웃음조차 한 번도 터지지 않았다. 안중근이 갖는 역사적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난마처럼 꼬여 있는 동아시아 및 세계정세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구겨진 회색 모자에도 다 감춰지지 못한 주름이 잡힌 그의 얼굴에서 환하게 펴지는 순간이 있긴 있었다. “식은땀이 줄줄 나온다”고 말한 작가의 어눌한 목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약동치는 그 순간이었다.

 

“총알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이 다였습니다. 둘은 이토를 죽이자며 이 일을 왜 해야 하느냐 대의명분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하얼빈에 가본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다음날 하바롭스크 역으로 가서 하얼빈으로 갑니다.” 그는 안중근이 블라디보스토크의 허름한 술집에서 동지 우덕순을 만나서 거사를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시대에 대한 고뇌는 무거웠지만, 그들의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어요. 이 대목이 가장 놀랍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죠. 청춘은 완성을 도모하는 어떤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그 순간에 완성된 폭발적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빛나는 청춘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역시 또한 명의 빛나는 청춘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이들 청춘들은 이야기를 이루고 상상력의 스크럼을 짠 뒤 시대와 역사를 종횡무진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안중근과 우덕순이 동아시아 평화라는 큰 꿈을 안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자, 통일 신라 시대의 청춘 의상과 원효는 무상대도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거나 걸어서 경주로 향했고, 이에 뒤질세라 인류 정신사의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발견을 하고 말리라는 비원을 안은 영국 청년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항을 출발해 포클랜드섬을 거쳐,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섬으로, 다시 대서양의 어센션섬으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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