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어요. 신문사 기자들이 수습 시절 경찰서를 돌면서 고생하듯이, 잡지사 기자들 역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특유의 도제식 학습 같은 문화가 있었죠.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결코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요. 사회 초년생들에게 학습 차원에서 강요됐던 그런 것들을 좀 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간관계나 감정의 문제를 주로 다뤄온 젊은 소설가 박상영은 작가 초년생 때부터 직업인 이야기와 그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전인 2019년, 오래 전 다녔던 잡지사 시절 경험과 당시의 감정―주로 억울했던 감정―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와 조사를 거쳐서 단편소설 「요즘 애들」을 썼다. 비록 발표는 2021년 봄에 이뤄졌지만.
「요즘 애들」은 서른한 살이 된 남준이 몰이해와 멸시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보겠다며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20대 직장 초년생 시절을 회고한 작품이다. 스물여섯에 잡지 인턴으로 일하게 된 남준이 네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수 배서정에게 틈만 나면 혼이 난다. 그는 배서정이 수습기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모욕적 언사를 하자 결국 복도로 불러내는데.

“선배 있잖아요, 저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인간 취급을 받고 싶었어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리고 싶어 하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방사능을 맞고 조증에 걸린 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요.”(49쪽)
2020년,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했다. 확진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됐다. 자주 다녔던 카페와 헬스장도 갈 수 없었다. 전업 작가이던 그의 사회적 접촉은 제로에 가까웠다. 힘들고 괴로운 시절이었다. 이때 문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을까. 그들의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보름 이후의 사랑」과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의 얼개가 떠올랐고, 2021년 가을부터 하나씩 문예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올해 유명한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박상영이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문예지에 발표한 중단편 4편을 엮은 것으로, 주인공들의 이름을 부제로 단 작품들이 서로 얽히고 엮여서 직장 젊은이들의 삶과 연애, 그들의 내밀한 고민과 통증을 펼쳐 보인다.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가 가슴 저릿한 첫사랑의 동요와 말 못할 비밀로 인한 상처를 회복해가는 십대를,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에 몸을 던지는 이십대를 각각 그렸다면, 이번 『믿음에 대하여』는 어느새 사회 초년생이 돼 직장에서 분투하고 안정된 가족을 꿈꾸는 삼십대의 모습을 담았다.
박상영는 왜 이번 연작소설을 써야 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전도유망한 이 작가는 앞으로 어떤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일까. 박 작가를 지난달 26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운동선수처럼 가슴이 딱 벌어진 그는, 인터뷰 내내 자주 웃었다. 그의 젊음과 열정이 부럽다는 생각이 조금.
―첫 작품 「요즘 애들」에는 남준을 비롯해 소위 ‘MZ세대’(1981년 이후 태어난 밀레니엄 및 제트세대)의 직장 생활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제가 MZ세대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도 7년 정도 했다. 저랑 같이 회사에 들어갔던 친구 가운데 팀장이 된 이도 있고 소위 말하는 제트세대와 생활하고 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기성제도에 대한 반감이랄까, 불합리를 계속 견뎌야 되는 게 괴롭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저와 친구들 역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러 양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개인적 감정도 있겠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도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얘기해 보고 싶었다. 단편이 아니라 한 권을 써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선배처럼 안 되려고 했던 이들이 결국엔 세상에 의해서 조금씩 닳고 변해가면서 새 세대들에게 ‘요즘 애들’라고 부르는 모습까지 그려보고 싶었다. 요즘 애들은 뭐라고 하면 바로 소송건대. 제 세대 친구들도 후배 사원을 보고 이런 얘기를 하고 요즘 애들이라고 호명하는 세대가 됐구나는 생각도 든다.”
―작품 속에선 남준, 은채는 선배인 배서정과 다양한 지점에서 충돌하는데(예를 들면 배서정의 일관성 없는 지시, 참신하지 않는 세대분석, 페이스북 친구 신청의 강요, 오와 열에 집착, 과도한 복장 간섭, 집단문화의 추구, 성의와 태도의 강조 등등).
“(경험도 있겠지만) 많은 부문을 취재했다. 친구 가운데 스타트업에서 팀장을 하거나, 대기업에 다니거나, 기성 언론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알아보고 조사해보니 일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 갈등이 이런 것들이더라. 예를 들면, 연차를 금요일만 쓰는 얌체 같은 후배가 있거나, 일을 시켰는데 다음 날 아프다고 병원에 간다든가, 2주짜리 급한 프로젝트가 떨어져서 야근하고 있는데 예약해 놨다며 어디 가버린다든가. 이런 갈등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계속 일어나는데, 세대 갈등으로 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고민도 하고 발상을 해봤다.”

―특히 배서정이 후배들에게 ‘성의’라는 말을 강조한 반면, MZ세대인 남준은 ‘인간’을 강조한 대목은 인상적이더라.
“보통 윗세대 사람들은 아래 세대에게 태도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 태도라는 게 되게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악용되기도 한다. 소위 다른 사람을 ‘갈굴’ 때도 지적하기 좋은 부분이다. 자세가 안 좋다, 태도가 안 좋다고.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개개인 가치를 중시하고 인격적 대우 같은 것이 주요한 사회적 가치로 대두하면서, 어느 순간 회사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뀐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회사나 조직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회사 속 개인의 삶이 먼저라는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서 세대 갈등이 온 것 같다.”
「요즘 애들」의 마지막에선 서른한 살이 된 남준이 자신의 이십대와 선배 배서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서른한 살, 벌써 네 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새 삶에 옮겨 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62쪽)
―마지막 부문은 남준이 선배 배서정과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인지.
“그것까진 아니고, 별로인 사람이지만 그래도 왜 그랬는지는 알겠다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그때는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면, 지금은 왜 그랬는지 정도는 알겠다, 너도 힘들었겠구나 하는 정도. 인물들은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배서정은 선배였기에 더 잘 했어야 했다.”
두 번째 소설 「보름 이후의 사랑」은 대기업 회사원 찬호가 동료 한영의 안정적 연애에 자극받아 데이트 앱을 통해 남준을 만나게 되고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완전한 연애와 그 제도를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름 이후의 사랑」은 첫 소설 주인공 남준이 성공한 기자이자 앵커가 된 뒤 찬호의 연애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남준이 첫 소설에서 화자였지만, 두 번째 소설에선 찬호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첫 소설에선 정체성이나 사생활 얘기가 없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까 동성 파트너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반전이랄까 아니면 새로운 독서의 재미로 주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확진자의 동선을 시간대 별로 낱낱이 공개한 적이 있었다.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된다는 사실에 모든 구성원들이 공포스러웠다. 이 시국에 술집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놀이공원에 가느냐는 비판도 받았고. 사회적 위치가 생기면서 세간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이 된 남준은 이런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상황에 밀어 넣었던 것 같다.”
―특히 코로나 시기 부동산 거래는 물론 가족 방문, 집들이 등 소수자들이 겪어야 하는 생활적 고통이 리얼하게 담겨 소수자야말로 더 고통스럽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 학습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소수자들이 조명받고 있지만, 다수의 시선에서 볼 때 삐쭉 튀어나온 사람들이 코로나 같은 어려운 시기엔 더욱 천대받는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가 누구인지, 어려운 시기에 누가 가장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 같아서 소설을 꼭 쓰고 싶었다.”
세 번째 「우리가 되는 순간」은 대기업의 신생 디지털마케팅팀으로 전출된 한영이 새로 합류한 여성 팀장 은채와 직장 생활의 고투는 물론 사적 영역의 비밀까지 공유하면서 함께 시대에 맞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은채는 들고 있던 고장 난 우산을 바닥에 버렸다. 한영은 은채의 팔을 잡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은채도 한영을 따라 발을 떼었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컴컴해지고 비가 더욱 맹렬히 내렸다. 발등까지 고였던 물이 발목을 넘어섰다. 마치 세찬 폭포를 거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은채와 한영은 우산 하나를 나란히 받쳐 쓴 채 나아갔다. 언덕 위에 어렴풋이 불빛이 보였다. 둘은 계속해서 그 빛을 향해 걸었다.”(174쪽)

―이 소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기존 대기업 구조 속에 신생 회사가 결합됐을 때 시스템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차이를 그리고 싶었고, 직장에서 마이너리티로 분류되는 여성의 삶도 추적해보고 싶었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신입 단계에선 반 정도 차지하지만, 2, 30년쯤 지나보면 임원 구성에선 한두 명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이 어려웠고, 연애와 결혼 등도 승진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데, 그런 것을 다뤄보면서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영역도 타진해보고 싶었다.”
―소설 안에선 대기업과 스타트업간 시스템과 문화 등에서 차이도 엿보이더라.
“저는 물론 오래된 회사를 주로 다녔는데, IT회사나 스타트업 등은 호칭은 물론 자리도 대표와 같이 쓰는 등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에서 기존 기업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올드한 회사도 새 시스템이나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새 제도를 채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일부는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IT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를 짰던 것 같다.”
마지막 작품 「믿음에 대해서」는 애인의 거짓된 인생과 황망한 죽음을 경험한 철우가 한영을 만나서 동거를 하게 되고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시작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가계는 폐업으로 내몰리고 이모의 죽음으로 한영마저 겉돌면서 삶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는데. 전편의 남준과 찬호, 한영 등 주요 인물이 다시 등장해 커튼콜 같은 역할도 한다.
―「믿음에 대하여」를 통해 독자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자영업자의 흥망성쇠도 중요했지만, 문자 그대로 믿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 공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고 매우 연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믿음이라는 감정이나 어떤 신념 역시 매우 연약하다는 것을 갈음하듯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지만, 연약한 믿음의 길에서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존재론적 회의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이번 연작소설집은 코로나 팬데믹과 MZ세대의 일과 연애, 소수자 문제 등이 잘 버무려진 것 같다.
“이전에 썼던 작품 가운데 퀴어 소설이 아닌 것도 많았지만, 주목 받았던 『대도시의 사랑법』이나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이 주로 퀴어 소설이어서 그런 쪽으로 관심을 좀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처음 MZ세대 이야기를 세대론적 관점에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다만 제가 MZ세대에 속한 사람이고, 기성 제도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하는 캐릭터를 주로 다뤄왔는데, 이번 소설에서 사회적 맥락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장편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아파트 재개발과 학교폭력 문제 등을,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질병이나 종교적 문제 등 사회적 요소도 포함돼 있었지만, 인간의 감정과 사랑, 고독 등에 방점을 찍고 주로 개인의 감정에 천착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좀더 사회적 맥락과 요소를 넓게 받아들이려고 했고, 인물도 다양하게 하려고 했다. 주요한 변화 지점인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박상영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내내 더 이상은 누군가가 질병으로 인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니 이 책의 모든 문장에 그런 나의 염원이 아로새겨져 있다”며 “나는 희망에 취약한 사람이라, 아직도 연약한 믿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책 읽기를 좋아하던 학생 박상영은 우연히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게 됐다. 그가 접한 교과서 밖의 첫 한국 현대소설. 40대 의사 심영빈의 시선을 통해 생명과 감정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현대의 부조리를 파헤친 작품이었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밤새 읽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세계 명작 시리즈를 비롯해 책을 좋아하던 아이로 성장했던 그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비롯한 판타지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좋아했다. 박완서의 소설을 접하기 전까지, 그에게 소설이란 1900년대 전후의 외국 작가들의 이야기였다.
“씁쓸하고 어른의 맛 같은 어떤 독특한 정서가 표현돼 있었어요. 박완서 작가를 통해서 비로소 한국 현대소설이 인생의 씁쓸함이나 서글픔 같은 것을 잘 보여준다는 걸 깨닫게 됐죠.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제가 잘 아는 언어로, 우리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박완서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뒤, 그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신경숙, 은희경, 윤대녕, 김연수, 공지영.... 특히 황석영의 장편소설 『손님』을 읽고는 전율했다. 한국 현대소설로 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한국 현대소설에 빠진 그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6년 내내 생활기록부에 적은 꿈은 글쓰는 사람, ‘작가’였다. 소설가 박상영 문학의 원점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취미 정도에만 그쳤다. 왜냐하면 방송사나 신문사,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월간지에 취직해 수습기자로 일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고, 기사 쓰기도 쉽지 않았다. 수습기자를 떼고 정식 기자가 되기 직전, 그는 잡지사를 홀연 그만뒀다.
“기사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기사를 소설 같이 쓴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죠. 기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지우고, 남의 이야기를 정확히 제대로 전달해 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삑사리’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 작가였구나 하는.”
잡지사를 그만둔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문예창작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만약 대학원 재학 동안 등단에 실패하면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2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소설을 썼다. 대학원을 수료할 때까지 등단하진 못했지만, 포기할 수 없어 계속 투고하다가 마침내 등단할 수 있었다.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상영은 만으로 스물여덟이던 2016년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18),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2021) 등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잡지사를 비롯해 광고 대행사, 컨설팅 등에서 7년 동안 일해 온 그는 『대도시의 사랑법』 출간 이후 비로소 전업 작가로 생활했다.
―그동안 써온 작품을 조금 소개한다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감독이 자이툰 부대로 파병을 갔던 시절을 반추하면서 사랑의 감정이나 예술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표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마이너리티가 등장하는 소설집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젊은 작가 ‘영’이 4개의 연작 소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좌충우돌 만나면서 우정이나 가족애, 성애적 연애 등 사랑의 감정을 배워나가는 연작소설집이고, 『1차원이 되고 싶어』 역시 10대 소년이 학교 폭력과 범죄 사건에 연루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일과 첫사랑의 감정 등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아직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 초, 집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 중이던 박상영은 자신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선정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컨그래추레이션스(Congratulations)....” 부커재단은 작품에 대해 “무장해제될 정도로 고백적”이라고 호평했다.
―청춘의 방황과 연애, 소수자 문제를 잘 그린 작가, 특히 대표적 퀴어 작가로 평가받는데.
“저는 스스로 전통적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화법이나 스타일이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하더라. 평론가들이 퀴어 문제를 이렇게 발랄하게 쓰다니, 라면서 처음 사건처럼 얘기해 주셨던 게 기억난다.(언제부터 퀴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처음 작품을 쓸 때부터 중요했던 키워드였고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다.”
―단편과 장편, 연작소설 등 다양한 길이와 형태의 소설을 쓰고 있는데, 왜 특히 연작소설인가.
“저에게는 단편과 장편 소설 사이에 연작 소설이 있다는 느낌이다. 원래 서사 중심의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 최소 중편 이상으로 조금 길게 나온다. 문예지 게재나 문학상 노미네이트 등을 비롯해 한국 문학계가 주로 단편 위주로 굴러가는 것 같고, 제가 잘 쓰는 분량이 200~300매 내외의 중편이어서 그 절충으로 연작소설을 쓰게 됐다. 장편의 경우, 비교적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단편과 달리, 처음부터 서사를 장악하고 있어야 하고, 연재할 수 있는 문예지도 많지 않다. 독자 역시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시간과 각오가 필요하다. 반면 연작은 단편과 장편 사이에 있어서 한 편씩 읽어도 부담이 없고 말도 될 뿐만 아니라, 전체를 읽었을 때에도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독자 역시 더 재밌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세계를 구상하되, 글을 쓸 때는 몇 달씩 계절마다 하나씩 쓰면 되니까 편한 것 같다.”
―주목 받는 소설가로서 글쓰기의 전략이 있다면.
“우선 무엇보다 재밌게 쓰려고 한다. 지금은 독자들이 책 말고도 방해받을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 그래서 한 번 책을 잡으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서사의 흐름이나 장면, 대사, 리듬을 생각해 쓴다. 또 하나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어떤 인물을 재현할 때에는 대상화하지 않고 온전히 보여주려고 한다. 작가로서 인물의 360도를 알고 있자, 이런 부문은 이것 때문에 이렇다, 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많이 고민하면서, 대상화하지 않고 객관적 시선으로 인물을 재현하려 노력한다.(전업 작가로서 글쓰기 루틴이 있다면) 일상에서 웃긴 일이 생긴다든지,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해놓는다. 그러다가 원고 청탁이 오거나 긴 분량의 글을 써야 할 때, 메모들을 보면서 구상을 한다. 어떤 인물이나 대사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써내려간다. 대단한 계기가 있거나 각 잡고 앉아서 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 스타일이다. 일상에서 계속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에는, 주로 오전 7, 8시쯤 일어나 몇 시간 집중해서 글을 쓴다. 시간이 지나면 놀고 싶어지고 피곤하고 졸리다. 오후에는 주로 메일에 답하고 방송 출연이나 사회 활동, 강연 등을 한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떤 장르나 한계가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를 비롯해 사회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스릴러나 추리소설도 구상 중이고, 에세이집도 계속 내고 싶다. 일부 작품의 영상화가 진행 중인데, 더 많은 독자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작품을 계속 쓰는 소설가로 남고 싶다.”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고, 많은 나라에서 가장 초대하고 싶은 한국의 젊은 작가 중 한 명이 된 소설가 박상영. 염천을 뚫고 온 그의 단단한 상체와 구릿빛 얼굴을 보면서, 뒤늦게 어떤 깨달음을 밀려왔다. 부커상이 이 젊은 작가를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결코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는.
해외에서 주로 찾는 장편과 국내에서 선호하는 단편소설 사이의 갭을 연작소설로 너끈하게 매워낸 현명한 전략, 좋은 작품을 위한 성실한 취재와 인터뷰, 엉덩이로 밀고 가는 끈기, 스스로 ‘레이더’라고 부르며 타자에 귀를 기울이는 공감의 태도와 호기심.... 여기에 하나 더 넣는다면, 힘든 삶 속에서도 소설에 대한 꿈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무명 시절의 삶과 눈물, 열정까지.
“죽을 뻔했죠.” 그래서였을까. 2019년 전업을 하기 전까지 직장인과 무명작가로서 분투했던 지난 시기를 회고하면서, 그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를 유독 잊을 수 없었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출근 전까지 글을 썼던, 듀얼 잡 생활을 버티기 위해 거의 모든 영양제를 섭취해야 했던 그의 간난을. “정말 죽을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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