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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 담아 … 나는 연약한 믿음을 믿는다”

입력 : 2022-08-02 23:00:00 수정 : 2022-08-02 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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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 낸 박상영

2022년 부커상 후보지명 후 첫 출간
코로나로 철저하게 고립 됐을 때
문득 ‘소설 속 인물들의 삶’ 궁금
잡지사 경험·취재 통해 연작 구성

사회 초년생의 직장생활 분투기
사랑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눈물
사회적 구조 맞물린 ‘인생’ 펼쳐
“장르·한계 없는 작가 되고 싶다”

“잡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어요. 신문사 기자들이 수습 시절 경찰서를 돌면서 고생하듯이, 잡지사 기자들 역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특유의 도제식 학습 같은 문화가 있었죠.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결코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요. 사회 초년생들에게 학습 차원에서 강요됐던 그런 것들을 좀 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상영 작가가 새 연작소설집 ‘믿음에 대하여’를 펴냈다. 이전 소설들이 인간의 감정과 사랑, 고독에 주로 천착했다면 이번 작품은 좀 더 사회적 맥락과 요소를 받아들이고 인물도 다양하게 그렸다는 평가다. 허정호 선임기자

인간관계나 감정의 문제를 주로 다뤄온 젊은 소설가 박상영은 작가 초년생 때부터 직업인 이야기와 그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전인 2019년, 오래전 다녔던 잡지사 경험과 당시의 감정―주로 억울했던 감정―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와 조사를 거쳐서 단편소설 ‘요즘 애들’을 썼다. 비록 발표는 2021년 봄에 이뤄졌지만.

 

‘요즘 애들’은 스물여섯 살에 잡지 인턴으로 일하게 된 남준이 네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수 배서정에게 틈만 나면 혼이 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남준은 배서정이 수습기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모욕적 언사를 하자 결국 복도로 불러내는데.

“선배 있잖아요, 저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인간 취급을 받고 싶었어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리고 싶어 하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방사능을 맞고 조증에 걸린 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요.”(49쪽)

 

2020년,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했다. 확진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됐다. 자주 다녔던 카페와 헬스장도 갈 수 없었다. 전업 작가이던 그의 사회적 접촉은 제로에 가까웠다. 힘들고 괴로웠다. 이때 문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을까. 그들의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연작 소설의 얼개가 떠올랐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돼 큰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박상영이 연작소설집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문예지에 발표한 중단편 4편을 엮은 것으로, 각 작품이 서로 얽히고 엮여서 젊은이들의 삶과 연애, 그들의 내밀한 고민과 통증을 펼쳐 보인다.

 

박상영는 왜 이번 연작소설을 써야 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전도유망한 이 작가는 앞으로 어떤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일까. 박 작가를 지난달 26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첫 작품 ‘요즘 애들’에는 남준을 비롯해 소위 ‘MZ세대’(1981년 이후 태어난 밀레니엄 및 제트세대)의 직장 생활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제가 MZ세대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도 7년 정도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기성제도에 대한 반감이랄까, 불합리를 계속 견뎌야 되는 게 괴롭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저와 친구들 역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러 양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회 구조적 문제도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얘기해 보고 싶었다.”

두번째 소설 ‘보름 이후의 사랑’은 대기업 회사원 찬호가 동료 한영의 안정적 연애에 자극받아 데이트 앱을 통해 남준을 만나게 되고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완전한 연애와 그 제도를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동산 거래는 물론 가족 방문, 집들이 등 소수자들이 겪어야 하는 생활적 고통이 리얼하게 담겨 소수자야말로 코로나 시기 더 고통스럽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


“코로나 팬데믹 초기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 학습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소수자들이 조명받고 있지만, 다수의 시선에서 볼 때 삐쭉 튀어나온 사람들이 코로나 같은 어려운 시기엔 더욱 천대받는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가 누구인지, 어려운 시기에 누가 가장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 같아서 소설을 꼭 쓰고 싶었다.”

세 번째 ‘우리가 되는 순간’은 대기업의 신생 디지털마케팅팀으로 전출된 한영이 새로 합류한 여성 팀장 은채와 직장 생활의 고투는 물론 사적 영역의 비밀까지 공유하면서 함께 시대에 맞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 소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기존 대기업 구조 속에 신생 회사가 결합됐을 때 시스템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차이를 그리고 싶었고, 직장에서 마이너리티로 분류되는 여성의 삶도 추적해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이 어려웠고, 연애와 결혼 등도 승진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데, 그런 것을 다뤄보면서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영역도 타진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작품 ‘믿음에 대해서’는 애인의 거짓된 인생과 황망한 죽음을 경험한 철우가 한영과 동거를 하게 되고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시작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가게는 폐업으로 내몰리고 이모의 죽음으로 한영마저 겉돌면서 삶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는데.

―마지막 작품 ‘믿음에 대하여’를 통해 독자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자영업자의 흥망성쇠도 중요했지만, 문자 그대로 믿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 공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연약한 믿음의 길에서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존재론적 회의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박상영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내내 더 이상은 누군가가 질병으로 인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니 이 책의 모든 문장에 그런 나의 염원이 아로새겨져 있다”며 “나는 희망에 취약한 사람이라, 아직도 연약한 믿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상영은 2016년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18),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2021) 등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지난 3월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선정돼 화제가 됐다. 부커재단은 작품에 대해 “무장해제될 정도로 고백적”이라고 호평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떤 장르나 한계가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를 비롯해 사회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스릴러나 추리소설도 구상 중이고, 에세이집도 계속 내고 싶다.”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고, 해외에서 가장 초대하고 싶은 젊은 작가 중 한 명이 된 소설가 박상영. 염천을 뚫고 온 그의 단단한 상체와 구릿빛 얼굴을 보면서, 뒤늦게 어떤 깨달음을 밀려왔다. 부커상이 이 젊은 작가를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결코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는.

해외에서 주로 찾는 장편과 국내에서 선호하는 단편소설 사이의 갭을 연작소설로 메워낸 현명한 전략, 좋은 작품을 위한 성실한 취재와 인터뷰, 엉덩이로 밀고 가는 끈기, 스스로 ‘레이더’라고 부르며 타자에 귀를 기울이는 공감의 태도와 호기심…. 하나 더 보탠다면, 힘든 삶 속에서도 소설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무명 시절의 삶과 눈물, 열정까지.

“죽을 뻔했죠.” 2019년 전업을 하기 전까지 직장인과 무명작가로서 분투했던 시기를 회고하면서, 그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를 잊을 수 없었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출근 전까지 글을 썼던, 듀얼 잡 생활을 버티기 위해 거의 모든 영양제를 섭취했던 그 간난을. “정말 죽을 뻔했어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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