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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 때 배출된 온실가스, 손자·손녀가 고스란히 피해 안아 [시공간으로 읽는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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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2 06:00:00 수정 : 2022-08-04 14: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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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세대 간 불평등’ 심각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수백년 대기 떠돌며 지구온도 높여
1970년 325ppm→지난 6월 419ppm ↑

2030년 감축목표 2018년 대비 40%
기온 상승폭 2.0도 이하 억제 역부족
온실가스 감축목표 올릴수록 노출 줄어

감축 목표달성보다 배출 과정 중요
누적 배출량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
“미래세대 의견도 정책에 반영돼야”
여름은 덥다. 하지만 모두 같은 더위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더위를 시공간으로 해체하면 ‘불평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래 세대는 앞선 세대가 뿜어낸 온실가스로 고통받고, 같은 2022년의 여름도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기후변화가 부른 폭염은 책임이 덜한 계층에 더 뾰족한 발톱을 드러낸다. 세계일보는 기후변화의 사회적 문제를 ‘시공간으로 읽는 더위’를 통해 짚어봤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는 온실가스가 ‘누적’된 결과다. 온실가스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짧으면 몇 주에 불과하지만, 길면 1000년에 이른다. 온실가스의 대표 격인 이산화탄소의 수명은 수십∼수백년에 이른다. 오늘 공장 가동을 멈추면 미세먼지는 금세 사라질지 몰라도, 한번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수백년간 대기에 머물며 지구 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SSP1-1.9)에서 조차 이미 달궈진 지구 온도를 2100년 이전에 다시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전망한다.

어린 세대가 겪게 될 기후변화는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부터 배출된 온실가스가 쌓인 결과다. 이 아이들은 훨씬 적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더라도 이미 부모, 조부모 세대가 내뿜은 온실가스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세대 간 불공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조부모 세대의 지구와 오늘의 지구

기후변화는 산업혁명 이래 계속 진행됐지만, 이를 알아챈 건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1960∼1970년대에도 극한 기상현상이 이따금 벌어졌지만, 당시 전문가들과 언론은 핵실험, 태양 활동 주기, 화산 활동 등과 더불어 인간의 산업 활동을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을 뿐이다. 1980년엔 여름철 이상저온이 나타났는데 이를 두고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것 같다고 의견이 좁혀진 건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산업화 이전 300ppm 미만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970년 325ppm, 1990년 354ppm으로 늘었다. 2022년 6월 현재는 419ppm에 이른다.

당연히 조부모 세대가 기억하는 ‘내가 젊었을 때의’ 여름과 2010년대에 태어난 어린이가 체감하는 여름은 같지 않다. 1970년대를 통틀어 8월 상순 낮 최고 기온이 폭염 기준인 33도 이상을 보인 건 8일(서울 기준)에 불과했다. 2010년대엔 49일이 폭염이었다. 1년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폭염을 요즘 아이들은 하루걸러 하루꼴로 겪는다. 기후변화는 밤에 더 두드러진다. 8월 상순 열대야(일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나타난 날은 1970년대를 모두 합쳐 6일이었지만 2010년대엔 67일이었다. 이제 열대야는 특별히 무더운 밤이 아니라 보통의 여름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도 1970년대 여름(6∼8월)엔 10년 동안 14번 쏟아졌지만, 2010년대 들어선 30번으로 늘었다. 1970년대 여름철 평균 온도는 23.7도, 2010년대는 25.4도다. 한국의 여름만 놓고 보면 ‘산업화 이전 대비 금세기 말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국제사회 목표가 무색해진다.

지금 어린 세대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더위는 어른 세대의 경험치를 넘어설 것이다. 지금이라도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인다면, 세대 간 불공정을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까.

◆온실가스 감축 목표, 충분한가요?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2018년 대비 40%다. 정부가 ‘야심 차다’고 표현한 이 NDC로도 2020년생이 평생 겪을 폭염이 1960년생보다 12.3배 많을 것이라는 게 빔 티에리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교수 연구팀의 전망이다. 1970년대와 2010년대 8월 상순 폭염일수가 6배 늘어난 점에 비춰보면, 더위는 앞으로 더 맹위를 떨칠 것이란 얘기다. 현재 각국의 NDC가 기온 상승 폭을 2.0도 이하로 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감축 목표를 올려 기온 상승 폭을 2도로 제한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의 2020년생이 1960년생보다 평생 겪게 되는 폭염이 8.6배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수준의 NDC를 달성했을 때보다 폭염 노출 격차를 30%가량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때는 2020년생의 폭염 노출은 1960년생보다 7.6배 많아 NDC 달성 시 대비 38.2%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이 같은 완화세는 두드러지는 것이다. NDC 달성 시 2020년생이 1960년생보다 더 혹독한 더위를 겪는 ‘세대 간 격차’에서 한국은 5위를 한 데 비해 2.0도로 제한하는 경우 순위가 에리트레아·이라크·태국과 같은 공동 11위까지 떨어졌다. 미래 세대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1.5도 제한 시에는 8위를 기록했다.

북한은 NDC 달성 시(10배 격차)와 비교해 2.0도 제한 시 격차가 9.2배(7위)로 줄었으나, 1.5도 제한 시에는 10.3배(1위)로 다소 벌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NDC 달성 시 1위 국가(아프가니스탄)의 세대 간 격차가 18배, 2.0도 제한 시 1위(키리바시)가 15.9배인 걸 고려하면, 지구 기온 상승 폭을 제한하면 할수록 전 세계 폭염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가 완화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결국 미래 세대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현재 설정된 각 국가의 NDC를 넘어서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티에리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재 NDC가 갖고 있는 야심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며 “이런 노력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래 세대의 폭염 피해 완화에 즉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폭염의 세대 간 격차에 대한 이 연구 결과가 ‘세대 간 불평등’을 넘어 ‘세대 간 불공정’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앞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뒤에 오는 세대가 재난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공정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티에리 교수는 “기후위기 해결은 결국 세대 간 공정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감축 경로’가 중요한 이유

기온 상승폭을 2도 혹은 1.5도로 제한하려면 2030년 감축 목표 말고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감축 경로’다. 2030년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매년 얼마씩 줄여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게 감축 경로다. 온실가스는 누적돼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줄여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올해부터 2029년까지 100만큼 배출하다 2030년에 40으로 줄였을 때와 올해부터 2030년까지 5씩 줄여갈 때 둘 다 감축목표는 달성한 셈이지만, 누적 배출량은 840대 720으로 달라진다. 당연히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1.5∼2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이 배출할 수 있는 남은 탄소량(탄소예산)은 얼마나 될까. 정부의 감축 계획이 불충분하다며 기후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해 제출한 ‘헌법소원 보충의견서’에는 독일 헌법재판소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한국의 탄소예산이 제시돼 있다. 독일 헌재는 지난해 4월 “미래 세대가 쓸 탄소예산을 불평등하게 분배했다”는 취지로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1.75도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020년 이후 한국이 배출할 수 있는 잔여 탄소량은 35억t이다. 이 가운데 2020년과 2021년에 약 13억t을 썼다. 앞으로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 채 한 해 6억t씩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2025년엔 탄소예산 잔고가 바닥나게 된다.

기후소송을 대리하는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2030년 감축 목표를 달성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우리가 총 얼마를 배출하느냐이다”라며 “끝에 가서 목표만 맞추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감축 부담을 뒤로 미룰 경우 총배출량은 크게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 기후위기 대응을 세대 간 정의의 문제로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후위기 당사자인 미래 세대의 의견이 온실가스 감축 등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뿐더러, 그 대응 노력을 그저 ‘미래 세대를 위한 시혜’ 정도로만 여기는 시각이 주류라는 게 청소년·청년 단체 측 평가다.

김보람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미래 세대’가 지금처럼 그저 공허한 구호로만 남아선 기후변화로 닥쳐올 피해를 절대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지로·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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