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 ‘신주류’로 지형재편 속도
김경수 사면·복권되면 변수 될 듯
“전대에서 친문(친문재인)이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가 ‘이재명 대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대결로 압축된 가운데, 10년 가까이 당내 주류의 자리를 지켜왔던 친문진영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친문진영 내 뚜렷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데다 구심점이 급속도로 약화한 상황이다.

지난 28일 열린 컷오프(예비경선) 결과를 놓고 보면 이 같은 당내 세력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구체적인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후보 측은 중앙위원들의 지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60% 넘는 표를 가져갔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본선에서도 이 후보가 대세론을 입증할 경우 당내 ‘신주류’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97그룹 저력을 과시하며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박용진 후보와 강훈식 후보도 ‘친문’과는 거리가 있다. 박 후보는 친문계와도 각을 세워온 오히려 ‘비문(비문재인)’ 성향으로 널리 알려진 인사다. 이번에 박 후보의 본선행을 두고는 ‘일반 여론조사 30%’가 큰 힘이 됐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 후보도 범주류로 분류돼 오긴 했지만 2017년 대선 때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캠프에서 활동하고, 이번에도 ‘이재명 선대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일하는 등 친문 그룹으로 보기는 어렵다. 예비경선에서도 친문보다는 충청 지역 의원들이나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 등의 조직표, 86그룹(60년대생·80년대 학번) 등의 지원이 힘이 됐다는 게 당내 분석이다.
반면 ‘친문 주자’를 자임했던 강병원 의원은 본선행에 실패했다. 친문계와 이낙연계가 상당 부분 공통분모를 가진 상황에서 이낙연계 설훈 의원의 출마로 친문 표심이 분산된 것이 패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표가 아무리 나뉘었다고 하더라도 강 의원과 설 의원 모두 컷오프를 뚫지 못한 것은 친문계의 조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애당초 두 의원이 ‘교통정리’를 하지 않은 것부터가 친문이 당권 구도에 개입할 의도도, 역량도 없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출마가 유력했던 전해철·홍영표 의원 등 대표적 친문 주자들이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이들 역시 적극적으로 당권 경쟁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내 주류세력 재편이 확실히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력 대권 주자인 이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는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대선주자가 고갈된 친문계는 세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 여부가 친문계에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김 전 지사는 친문 적자(嫡子)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PK(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가진 정치적 입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당권 주자인 강훈식 의원도 지난 26일 CBS 라디오에 나와 ‘김 지사가 사면·복권이 되면 대권 주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전 지사가 사면·복권이 아닌 가석방 수준에 그쳐도 상징성이 커 친문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김 전 지사가 가석방에 그칠 경우에는 정치적 활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어 당내 권력 지형에는 큰 영향이 없으리라는 반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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