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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로 시작… 정권 바뀌면 ‘알박기’ ‘찍어내기’ 반복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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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09 15:00:00 수정 : 2022-07-09 18: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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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임기 논란

5년마다 반복되는 갈등
역대 정권 350곳 기관장 ‘하사품’ 취급
전문성 보다는 ‘낙선자 구제소’로 활용
혁신보다 정부 시책만 좇다 경영 악화
신·구정권 공공기관장 인사 놓고 충돌

정권초 인사 해법은 없나
與 “文정부 임기말 알박기 인사 59명”
홍장표 KDI원장 퇴진압박에 결국 사의
‘찍어내기’는 블랙리스트로 단죄 받아
전문가 “정무·전문직 투트랙 방식 대안”

윤석열정부가 공공기관들에 칼을 뽑아 들었다. 방만 경영 대명사인 공공기관들을 겨냥해 “파티는 끝났다”며 ‘대수술’을 예고했다. 표면적으로는 ‘만년 적자’ 신세인 공공기관 체질을 180도 바꿔놓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한 ‘사퇴 압박용’ 카드라는 뒷말이 나온다. 사실상 ‘솎아내기 작업’ 아니냐는 것이다.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을 향한 사퇴 압박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됐다. 옛 권력이 임명한 인사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새 권력이 ‘자기 사람’을 앉히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 자리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이들의 논공행상을 위해 대통령이 베푸는 ‘하사품’쯤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관 경영에 요구되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문외한도 ‘공신’으로 인정받으면 회전의자에 앉았다.

역대 정부는 이 같은 ‘낙하산 인사’를 거듭하면서도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하는 앞뒤 안 맞는 기조를 보였다. 내리꽂힌 인사들은 전문성에 기반한 경영보다는 정부 시책을 뒷받침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는 ‘다음’을 도모했다. 그사이 경영은 악화했고 직원들의 사기는 추락했다. 낙하산들이 떠나간 뒤 방만 경영의 책임은 공공기관과 소속 직원들 몫으로 남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정권의 ‘하사품’된 공공기관장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표현만 달리했을 뿐 보혁 정권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군부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퇴역 장성들에게 기관장 자리가 돌아가 ‘군홧발 부대’로 불렸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등산화 부대’가 이들을 대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산악회’(민산) 출신들의 자리를 공공기관에 마련해 주면서다. 이후로도 낙하산 인사들은 정권마다 소속과 면면을 달리한 채 등장했다.

이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각 공공기관의 장을 비롯한 임원 인사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이들에 대한 ‘보상 체계’로 활용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이 ‘낙선자 구호소’로 활용되는 경우도 각계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선출 권력이 ‘공신’들의 일관된 충성심을 유발하기 위해 공공성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마치 원래 제 것인 양 하사하는 구시대적 행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공공기관은 350곳에 달한다. 이중 공기업은 36곳, 준정부기관은 94곳, 기타 공공기관은 220곳이다. 현행법상 공기업 사장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 밖의 기관 인사도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공공기관 내 요직을 차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그러잖아도 적자만 쌓여가는 각 기관 경영지표는 개선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전문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내 사람 심기’에 인사의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엽관제를 둘러싼 시선은 엇갈린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임기를 보장해준 만큼 정권이 바뀌면 그 역시 존중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도록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했다. 반면 최진식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요즘은 말단 직원들조차도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데, 공공기관장을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알박기 인사’까지 등장

정권 초 낙하산에 이어 임기 말 ‘알박기 인사’도 등장했다. 문재인정부가 정권 이양기에 공공기관 인사를 단행하면서다. 신·구 권력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모양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문재인정부 임기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는 기관장급 13명과 (비)상임이사 및 감사 등 총 59명에 이른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정권교체가 되었음에도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사의를 표명한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연합뉴스

권 원내대표는 특히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등을 거론하며 “2017년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박근혜정부 때 임명된 국책연구원장들에게 임기 만료 전 줄사표를 받았다. 정작 본인은 임기 말에 알박기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적법한 인사권 행사’였다는 반응이다. 홍 원장은 지난 6일 퇴진 압박에 반발하며 사의를 밝혔다.

알박기 인사로 인한 신·구 권력 충돌은 노무현정부 말에도 있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 측이 인사권 자제를 요청하자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아직은 노무현정부거든요”라며 “지시하고 명령하고 새 정부 정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것은 인수위 권한이 아니거든요”라고 했다. 그는 “만일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이야기가, 인사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모욕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 제 맘대로 할 것”이라고도 했다.

옛 권력 측 인사 ‘찍어내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정부에서 벌어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전현직 장관 중 첫 실형 사례로 기록됐다.

한국인사행정학회장인 조태준 상명대 교수(행정학)는 “대통령실이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공공기관은 아예 정무적으로 임명하게끔 해서 대통령과 임기를 맞추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동시에 “기관의 성격과 기능을 고려해 전문성을 기반으로 임명해야 하는 그룹을 구분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가면 문제가 적어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조언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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