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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은 운동선수에겐 최고의 영예다. 프로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은 1935년 미국프로풋볼(NFL)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의 등번호 1번이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 영구결번 문화가 상대적으로 옅다. 포지션과 팀 내 입지에 따라 등번호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1∼11번은 사실상 주전급이어야 달 수 있는 데다, 한곳에서만 뛰는 스타가 적다는 점도 영구결번이 적은 이유다. 역사를 자랑하는 미 메이저리그에서 재키 로빈슨의 42번은 특이한 사례다. 최초의 흑인 선수로 큰 족적을 남긴 그의 번호는 특정 구단이 아닌 모든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애도의 의미로 영구결번을 부여하는 일도 있다. 40년 KBO 역사에서 첫 영구결번은 1986년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OB베어스 포수 김영신(54번)이다. 지난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롯데전에서 LG 레전드 박용택의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33번)이 열렸다. KBO 16번째다. 대학 졸업 후 19년간 LG에서만 뛴 ‘원클럽맨’이다. 2236경기 출전, 타율 0.308, 213홈런, 1192타점, 1259득점, 313도루를 기록했다. 2504안타는 KBO리그 최다 안타다.

 

박용택은 별명 부자다. 이날 경기에서 LG선수들은 ‘울보택’ ‘소녀택’ ‘용암택’ ‘팬덕택’ 등 그의 별명을 달고 뛰었다. ‘졸렬택’은 그의 흑역사다. 2009년 시즌 막판 롯데 홍성흔과 타격왕 경쟁을 벌이다 마지막 경기에 출장하지 않아 타격왕이 됐지만 ‘졸렬택’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는 3루쪽을 향해 “롯데 팬들 아직 계신가요”라며 “그 순간 졸렬했을지 몰라도 저 진짜 졸렬한 사람 아닙니다”라고 했다.

 

LG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다. 첫 FA(자유계약선수) 당시 20억원을 더 부른 팀이 있었지만 LG에 남았다. 20억원으로 영구결번과 명예를 샀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정오 무렵 ‘무제한 사인회’를 시작했다. “밤을 새도 좋다. 끝까지 다 해드릴 것”이라던 그는 ‘약속택’이라는 별명답게 경기가 끝난 후 새벽까지 사인회를 가졌다. “우승반지 없이 은퇴하는 것이 아쉽지만, 팬 여러분의 사랑을 가지고 은퇴한다”고 했다. 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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