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EU 내부 분열 커지면 우크라에 치명타 될 듯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연합(EU) 차기 의장국인 체코가 나토의 ‘단결’을 촉구했다. 나토 회원국은 거의 대부분 EU 회원국이기도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나토 및 EU 내부에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는 데 따른 우려가 크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이사회 참석을 계기로 역시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나토의 옌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과 만나 곧 있을 나토 정상회의 의제에 관해 논의했다. 체코는 올 하반기 EU 의장국으로서 현 의장국인 프랑스로부터 오는 7월1일 그 자리를 넘겨받는다.
피알라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깊이 얘기했다”고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에게 체코가 오는 2024년까지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릴 것이라고 확실하게 얘기했다”며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장기적 약속”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군사력 강화에도 나서고 있는데 체코 역시 그런 움직임에 동참해왔다.
피알라 총리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나토가 단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차기 EU 의장국으로서 EU 회원국 거의 대부분이 나토 회원국임을 감안해 ‘단합’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와 연대하자’는 외침 아래 하나가 되었던 EU, 그리고 나토는 요즘 분열이 점점 확산하는 모습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밀 등 곡물과 석유, 가스의 가격이 치솟고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여파로 생활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 독일, 루마니아 등에서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응답(35%)이 ‘러시아를 응징해야 한다’는 답변(22%)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프랑스의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조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당이 총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장 오는 10월 지방선거를 앞둔 독일, 오는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가 예정된 미국도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
외신은 나토와 EU로 대표되는 서방이 직면한 딜레마를 ‘자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무한정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없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러면서 ‘침략자 러시아를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는 명분과 ‘인플레이션 해결에 주력해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 선택의 순간이 왔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것이 러시아, 그리고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장 바라는 것이란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노력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푸틴은 전장의 교착상태와 관계없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의 단결력이 약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6∼28일 독일에서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그 후 곧장 스페인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차례로 열린다. 서방이 ‘러시아 단죄가 먼저’라는 쪽과 ‘국민 삶이 우선’이란 쪽으로 갈라설지, 아니면 ‘일단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의기투합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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