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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經筵)이란 말 그대로 풀면 ‘경전을 공부하는 자리’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경연 조직까지 명시돼 있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유학 경전을 강론해 유교 이념을 정치에 반영토록 한 것이다. 임금 길들이기를 통해 왕권을 규제하는 역할도 했다. 역사학자 오항녕은 저서 ‘조선의 힘’에서 경연이 “과거시험을 통해 뽑힌 사대부들이 추구한 민본주의와 왕도정치의 이상에 국왕이 동의하게 하는 장치”라며 “경연은 그들의 이상을 국왕에게 끊임없이 교육함으로써 동의하게 만드는 일, 아니 몸에 배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했다.

 

경연은 세종 때 집현전 설치로 제도화했고 그후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이 경연 전담 기관이 됐다. 경연의 종류에는 하루 세 차례 열리는 정식 강의인 법강(法講)과 특강인 소대(召對)가 있다. 홍문관 관리 외에 의정부 3정승과 6조 판서, 승정원 승지 등이 겸임 관원으로 경연에 참석했다.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망라된 것이다. 힘이 없거나 경전 공부를 게을리 한 임금에겐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인조실록’에는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지 10여일 만에 열린 경연 기록이 있다. 지평 조정호가 “임금이 직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인데 전하께서 경연에 임해 문답이 적으신가 하면, 대신의 말까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의도가 없습니다. 정치 쇄신의 초기에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훗날의 일이 몹시 염려됩니다”라고 하니, 인조는 “내 어찌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군색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무도한 임금인 연산군은 경연에 나간 날이 얼마 되지 않지만, 세종과 정조처럼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경연에 참여한 호학 군주들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조선 말기에 예조판서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조성교가 경연에 39회 참여한 기록을 모은 ‘경연일기’를 구입했다고 한다. 길이 41에 이르는 두루마리 고문서다. 나라가 쇠락하던 시기의 경연 운영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경연 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권력을 어떻게 제어할지 생각해 볼 때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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