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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걱정하는 Z세대?… “알고는 있지만 관심은 없어요”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 세계뉴스룸 , 환경팀

입력 : 2022-06-23 06:00:00 수정 : 2022-06-23 07: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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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설문서 드러난 인식차

20대 男 76% “기후변화 심각”… 평균 이하
18% “심각하지 않다” 응답률은 3배 높아
20대 女도 “1순위 과제” 응답 3040보다 ↓

정책 펼 때 ‘환경 감수성’ 섣부른 예단 안돼
“환경문제, 소득·고용·복지와도 깊은 연관
젊은층 인식개선, 사회적 요구 먼저 읽어야”

20대를 오래전 떠나온, 지구를 좀 걱정한다는 세대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 세대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환경 감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문맥상으론 맞는 말이다. 20대가 경험한 지난 10년(2011∼2020년)은 부모 세대가 20대 때 겪은 10년(1981∼1990년)보다 0.5도나 덥다. 20대 혹은 Z세대는 기후위기의 서막과 파국을 모두 경험할지 모른다. 이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나서달라’고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그 표상 같은 존재다. 어른들의 기후 무관심에 충격받고 학교 수업을 빠진 채 시위를 벌였다는 그의 이야기는 곧 세계로 퍼졌고 ‘기후 파업’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어떨까. 그레타가 그랬다고 한국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한국에도 긱(GEYK), 빅웨이브, 청년기후긴급행동 같은 청년 단체에서 진심을 다해 활동하는 이들이 있지만, 보통의 20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특히 ‘20대 남성’(이대남)은 모든 연령과 남녀를 통틀어 기후에 가장 무심한 그룹이다. 세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는 ‘젊은 세대는 당연히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는 가설을 물리친다.

◆기후에도 드러난 ‘이대남’

세계일보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엠브레인퍼블릭을 통해 ‘기후문제와 표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세계일보 2022년 5월24일자 1·8·9면 참조>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 30대 이상은 모두 90% 이상 ‘심각하다’(심각한 편이다+매우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유독 20대는 답변율이 82.6%에 머물렀다. 이유는 20대 남성에 있었다. 20대 남성의 ‘심각하다’는 응답률은 75.8%로 눈에 띄게 낮았다. 전체 평균보다 무려 16.2%포인트나 낮았다. ‘심각하지 않다’(전혀 심각하지 않다+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20대 남성은 18.2%로 평균(5.8%)의 세 배가 넘었다.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인간 활동’을 꼽은 이대남 비율은 65.7%였다. ‘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이 명백하다(unequivocal)’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설명과 거리감 있는 대답이다.

무관심이 묻어나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률도 20대 남성에서 가장 높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6.1%가, 기후변화의 원인에 8.1%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체 평균의 3∼4배에 달하는 값이다.

1년·10년·30년 안에 풀어야 할 과제로 기후변화를 1순위로 꼽은 비율도 또래 여성에 비해 많게는 1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다만, 기후변화를 후순위 과제로 미루는 건 전연령대에서 남성에게 두드러진 경향이다. 눈여겨볼 점은 기후변화를 1순위 과제로 꼽은 20대 여성의 비율도 30∼40대 여성보다 낮거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원에 있어서도 20대 남성의 인식은 남달랐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데 전 세대·성별을 아울러 가장 낮은 65.7%의 동의율을 보였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45.5%가 동의했는데 이는 50대 이상의 응답률과 비슷한 수치다.

이대남의 ‘튀는 답변’이 이번 조사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올 초 주간지 시사IN의 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은 기후위기 체감도와 심각성에 가장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지난해 9월 퓨리서치센터의 글로벌 조사 또한 마찬가지다. 스웨덴과 뉴질랜드, 호주, 미국, 프랑스, 캐나다, 영국에선 모두 65세 이상 고령층보다 18∼29세 젊은 세대의 기후위기 체감도가 훨씬 높았지만 유독 한국과 그리스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이런 결과가 놀랍다고요?”

20대 남성들은 이런 결과를 신기해하는 기자의 반응을 되레 신기해했다. 22세 대학생 조재호씨는 ‘아마 내가 설문에 응했어도 비슷했을 것 같다’고 했다.

“여름이 길어졌다, 벚꽃이 빨리 핀다 뭐 이런 느낌은 있는데 그냥 그 정도예요.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잖아요. 장애인 문제, 의료 문제 등등 다 심각하다고 하니까 여러 문제 중의 하나로만 여겨지는 거죠. 그러니 ‘이것도 나라가 어떻게 해결을 하겠지’ 싶은 거죠.”

1994년생 직장인 박지헌씨는 “심각하다고 응답한 75%도 ‘관심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기후변화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기사를 봐도 대충 헤드라인만 보지 제대로 읽지는 않아요.”

청년이 주축이 된 환경단체에서 활동 중인 1996년생 김석호(가명)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저는 설문 결과가 별로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20대 남성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는다? 글쎄요. 저 같은 사람은 소수에 속해요. 저희 단체엔 남녀 비율이 1대 3 정도인데 같이 활동하는 남성들을 보면 다른 친구들이랑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어요. 사회문제에 좀 더 당사자성을 느낀달까.”

이대남의 이런 성향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1995년생 취업준비생 박정배(〃)씨는 개인적인 이유를 댔다.

“젊은 세대는 아예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잖아요. 저 역시도 ‘어차피 혼자 살다 갈 건데 미래 세대까지 고민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환경문제에 관심 없는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너 먹고살 궁리나 하라’고 하더라고요. 사는 게 바빠서 아닐까요?”(배규·27)라거나 “저희 또래가 원래 귀차니즘이 있어서 실익이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박찬빈)라는 응답도 있었다.

하지만 20대 남성의 돌출적인 성향은 환경뿐 아니라 노동, 북한, 차별 등 다른 현안에 관한 설문에서도 종종 포착된다. 좀 더 포괄적인 이유가 있을 터. 1999년생 김재현씨는 ‘반PC(정치적 올바름) 정서’를 꼽았다.

“기후위기를 부정한다기보다는 주류 담론이 우리의 행동을 억압한다고 느낄 때 드는 거부감이 있어요. 기후위기만 놓고 보면 사실 문제가 없는데 이걸 주장하면서 플라스틱 줄여라, 탈원전해라, 이렇게 얘기하면 일상생활의 편의성이 침해되고, 일자리도 줄어드는 느낌이고 그런 거죠. 또 문재인정부에 대한 실망의 연장선에서 그쪽에서 나온 모든 주장을 비판하려는 경향도 있고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청년 남성의 무관심은 상수? 변수?

20대의 이런 성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상수일까, 나이 들면 달라질 변수일까. 김재현씨는 상수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청소년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갈 시기에 성립된 시각이 변하기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젊어서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도 그랬고, 민주화운동 세대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저도 지금 20대 남성의 이런 성향이 노인이 될 때까지 계속 갈 거라고 봐요.”

조재호씨는 바뀔 수 있다고 봤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관심사가 달라지잖아요. 기후변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뿐이지 문제가 아니다, 라는 건 아니니까 바뀔 수 있다고 봐요.”

20대의 기후 무관심이 상수일지 변수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젊은 세대는 기후변화에 관심 있다’는 전제를 기본값으로 놓고 정책이나 캠페인을 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75%만 심각하다고 답했다’는 결과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사회 영역은 범주가 구분되지만 사실 환경과 정치, 정치와 사회적 갈등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는 ‘배부른 민주 진영에서 나온 환경 이야기라 싫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마찬가지로 기후 인식을 제고하려면 이들의 사회적 요구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환경을 이야기하려면 소득과 고용, 복지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면서 “유럽의 녹색당도 생태주의를 외치다 고립돼 진보와도, 보수와도 연대했다. 환경이 고립되지 않으려면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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