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위축된 주택시장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을 안정화하려는 새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주택 공급의 걸림돌로 꼽히고 있는 분양가 상한제를 대폭 개선했다. 이번 분양가 상한제 개선안은 건설 자재비 상승분과 정비사업 특성상 발생하는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지난 20일 조합원 이주비 등 필수 비용과 건설 자재비 인상분 등을 신속하게 분양가에 반영하도록 분양가 상한제를 대폭 개선했다. 또 이주비와 대출 이자, 영업손실 보상비와 명도 소송비, 총회 개최 등 필수 소요 경비도 분양가 산정에 포함하도록 했다. 또 분양가 심사 기준과 절차를 합리화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기본형 건축비를 산정할 때 레미콘·철근 외에 최근 현장에서 많이 쓰는 창호 유리, 강화 합판 마루, 알루미늄 거푸집의 가격을 반영키로 했다. 매년 두 차례 기본형 건축비를 조정해 고시하는 것과 별개로, 레미콘과 철근 가격이 합해서 15% 이상 오르면 건축비를 조정할 수 있다. 택지비를 산정할 때도 한국부동산원이 단독으로 심사했던 것을 검증위원회를 설치해 감정평가사가 의견을 반영하는 등 민간 전문가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월세 시장 안정화를 위해 전셋값을 5% 이내로 올린 상생 임대인에게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한 실거주 2년 요건을 면제하는 등 혜택을 확대하고, 계약갱신청구권(갱신권)을 이미 쓴 임차인의 버팀목 대출한도를 늘렸다.
현재 2017년 8월3일 이후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 취득한 주택을 양도할 때 비과세를 받기 위해서는 2년 이상 거주 요건을 채워야 한다. 상생 임대인은 실제로 주택에 거주하지 않아도 세제 혜택을 받는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과 임대차 가격의 지나친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무주택 세대주가 부담하는 월세액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현행 최고 12%에서 최고 15%까지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총급여액이 55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는 월세액(연간 750만원 한도)의 15%를 세금에서 공제 받는다.
앞서 정부는 오는 3분기부터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80%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LTV 60%를 적용받아 3억원까지만 대출을 받았다면, 오는 7월부터는 4억원(LTV 80%)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생애 최초를 비롯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 대한 금융 문턱을 낮췄다. 청년층의 경우 대출받을 때 미래에 늘어날 소득을 반영하기로 했다.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소득이 적은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연소득이 3000만원인 20대 직장인이 9억원의 서울 아파트를 생애 최초로 구매하면 LTV 80% 이하, 미래소득 인정 등을 적용해 대출 가능 금액이 2억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오는 8월부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 등의 최대 만기도 청년·신혼부부를 기준으로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확대된다. 청년·신혼부부 요건은 만 39세 이하 및 혼인 7년 이내 부부로, 금리 연 4.4%로 5억원을 대출받으면 40년 만기일 경우 월 이자 부담액은 약 222만원이지만, 50년 만기 때 월 이자 부담액은 약 206만원으로 약 16만원 낮아진다.
이와 함께 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 따라 올해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한다. 올해만 한시적으로 1주택자에게 3억원 특별공제를 적용한다. 주택가격이 14억원 이하면 비과세를 적용한다. 또 이사나 상속 등으로 일시적 2주택자도 1주택자처럼 종부세 부담을 완화할 예정이다.
최근 주택시장은 위축됐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로 매물이 쌓이고 있으나, 집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지면서 거래 절벽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2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1635건으로 집계됐다. 아직 등록 신고 기한(30일)이 남아 매매 건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나, 지난해 같은 기간(4901건) 대비 약 3분의 1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가 6주 연속 내림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8.8로 지난주 89.4보다 0.6p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달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유예 조치 이후 매물이 쌓이면서 떨어진 뒤 6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집을 팔려는 사람이, 200에 가까울수록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5대 권역 매매수급지수 모두 하락했다. 도심권(88.4)과 동북권(84.3)은 지난주보다 지수가 각각 1p 하락했고, 서북권도 82.8로 0.5p 떨어졌다. 강남권(94.5)과 서남권(91.7)은 지수가 90을 넘었으나, 전주 대비 각각 0.3p, 0.4p 하락했다.
주택시장에선 정부가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으나, 기준금리 인상 여파가 워낙 커서 거래절벽 속 관망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집값 고점 인식 확산과 금리 인상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리 부담을 느낀 1주택자나 무주택자가 추가 매수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 이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크게 올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거래절벽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주택시장의 관망세가 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주택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금리 인상"이라며 "정부가 각종 규제 완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금리가 높아지면 주택 구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관망세가 당분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경기 불황에 물가 급등, 금리 인상 여파 등으로 전반적인 주택 매수세가 줄면서 주택 거래량이 줄고, 집값도 약보합세 이어갈 것"이라며 "대내외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번 규제 완화 정책이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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