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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서른 살,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대

입력 : 2022-06-21 19:23:41 수정 : 2022-06-21 19: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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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집 ‘노랜드’ 작가 천선란

오징어게임 정호연 모델로 쓴 ‘흰 밤과…’
‘푸른 점’ ‘우주로 날아가는 새’ 등 10편
작품 속 인물들 모두 살고자 최선 다해
피로한 현대인들도 삶의 용기 얻기를

‘해리포터’처럼 강력한 캐릭터 창조해
시리즈로 쓸 수 있는 이야기 욕심 나
주목받는 젊은 작가 천선란(30)이 최근 2년간 발표한 단편 10편을 모은 두번째 소설집 ‘노랜드’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소설의 목적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아직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딱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망할 놈의 생각이 어디 마음대로 쉽게 되던가. 제 맘대로 불쑥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블랙 아웃된 듯하다가도 갑자기 획 하고 다시 나타나는 게 그놈이니까. 오죽하면 생각을 멈추는 게 불가(佛家)에선 수행이고 참선이겠는가. 그런데, 가끔 좀 어이없는 곳에서 피어나는 게 그놈의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지난해 추석 무렵, 작가 천선란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문뜩 한 배우에게 꽂혀버렸다. 배우 정호연이었다. 정 배우와 어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자, 한 캐릭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바로 강설이었다.

생각과 상상은 더 뻗어나가서 원래 쓰고 싶었던 늑대 인간 아이디어와 만났다. 뱀파이어와 외계인을 좋아했던 그는 비슷한 차원으로 늑대 인간을 소재로 작품을 쓰고 싶었다. 과거에서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존재보다는 근미래의 늑대인간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묶이면서 마침내 소설로 나왔다. 그해 11월 리디북스 우주라이크소설 시리즈로 발표된 SF단편 ‘흰 밤과 푸른 달’이었다.

‘흰 밤과 푸른 달’은 반은 염소이고 반은 악마인 ‘크람푸스’를 물리치기 위해 늑대의 유전자를 심은 ‘늑대 인간’과 인간의 우정 또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강설은 크람푸스를 물리친 뒤 다른 행성 침탈을 위해 떠나게 되는 늑대 인간이자 친구인 명월을 만나기 위해 기지로 찾아간다. 하지만 강설은 명월의 사망을 전제로 한 위로금 수령 계약을 거부하고 기지를 떠났다가 명월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기지로 향한다.

SF는 물론 추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유려한 문체로 써온 젊은 작가 천선란이 ‘흰 밤과 푸른 달’을 포함해 최근 2년간 발표한 단편 10편을 모은 두번째 소설집 ‘노랜드’(한겨레출판·사진)를 펴냈다. 소설집에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제목 ‘노랜드’에 걸맞게, 정주하지 않고 떠나거나 떠나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품 속에서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효용가치가 다해서 떠나고(‘흰 밤과 푸른 달’), 외계인의 침공 또는 인간의 욕망으로 파멸하는 지구를 떠나며(‘바키타’, ‘푸른 점’, ‘우주로 날아가는 새’), ‘빌어 처먹을 마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도망가듯 떠나오기도 한다(‘이름 없는 몸’).

천선란이 이번 소설집에서 펼쳐 보이는 세계와 인물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젊은 작가인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일 작품 세계는 어떤 미래일까. 천 작가를 지난 17일 서울 선릉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첫 작품 ‘흰 밤과 푸른 달’은 인간들이 ‘크람푸스’라는 괴물에 맞서 ‘늑대 인간’을 만들어 물리치는 설정인데요.

“SF에서 유전자 변형으로 외계인이 만들어지거나, 전혀 다른 존재가 만들어지는 게 그렇게 특별한 상상력은 아니잖아요. 한계점을 넘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빠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 변형 식물 등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식물을 만들거나, 인간 역시 극한 환경에서 자란 식물만을 먹고살 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적대적인 외계인이 나타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과학기술도 인간을 변형시켜서 더 강력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죠.”

단편 ‘푸른 점’은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아 나선 사투르호의 함장 시에라는 웜홀을 통과하기 전 육안으로 지구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었다. 인공지능 러스의 방해를 뚫고 선미에 선 시에라의 눈에 비친 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니었는데.

―조금 슬픈 이야기인데요.

“진실과 믿음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기후 위기를 알면 알수록,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됐죠. 반면 늦었지만 우리는 바꿀 수 있고 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가야 한다는 사람도 있죠. 진실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낙관적인 믿음을 믿을 것인가, 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의 문장을 만났어요. 칼 세이건의 책을 무척 좋아했죠. 책에 쓰인 문장을 언젠가 인용하고 싶었고요. 다시 찾은 푸른 지구 사진도 너무 작아서 이게 맞나 고민하다가 제가 말하려는 내용과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쓰게 됐어요.”

‘우주로 날아가는 새’는 검은 흙먼지가 지구를 덮어버린 근미래에 효원이 지구를 떠나지 않고 효종 스님과 함께 전등사에 남으려 하면서 시작된다. 효원은 그날 밤 몇십 년 전 효종 스님이 구해주었다는 저어새와 비슷한 새를 치료해준 뒤 효종 스님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서 헬기를 탄다.

―이 소설은 어떻게 나왔나요.

“아빠가 살을 빼야 했던 2, 3년 전 어느 저녁, 인천 집 앞 공원에서 아버지와 2시간째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과학이나 우주, 외계인 등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는 세상은 텅 비어 있다는 불교의 공사상이 SF의 양자역학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얘기했죠. 언젠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강화도와 절 등을 보면서 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죠.”

―이번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일부러 블루 느낌에 가까운 소설, 우울한 느낌의 소설들을 모았고, 하나같이 살고자 하는 인물들을 모았죠.(주제의식이 강렬한 것 같아요) 요즘 한국 사회가 매우 피로한 삶을 살고 있고,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더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어떤 카타르시스적 작용을 일으켜서, 여기 있는 주인공들도 힘들어도 다들 그냥 사는데, 나도 그냥 살아도 되겠다고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1993년 인천에서 태어난 천선란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썼고 2020년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와 로봇 기수를 그린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름 ‘천선란’은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의 이름 한 글자씩을 조합해서 만든 필명. 장편소설로 ‘무너진 다리’(2019), ‘천 개의 파랑’(2020), ‘나인’(2021),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2020), ‘노랜드’(2022) 등을 펴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어떤 작품 세계를 그리고 싶은지요.

“천선란 책이 나왔어, 라고 하면, 이 작가는 재밌으니까 한번 읽어야지, 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평생 쫓아갈 것 같아요. ‘해리 포터’나 ‘셜록 홈스’처럼 인물이 사랑받는 이야기, 인물이 막강해서 시리즈가 나오는 그런 이야기에 욕심이 많아요.”

가게를 메운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자신의 탁자를 넘어서서 분수처럼 쏟아내던 그날 선릉역 작은 커피숍에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세계 개척을 꿈꾸는 젊은 작가는, 담대한 자신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잠시만요.” “그냥 떠올랐다고 하면 안 되겠죠?”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라면서도 그의 상상력과 이야기는, 작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로, 태양계로, 우리 은하로, 마침내 아직도 팽창 중인 우주로까지 향하고 있었다. 처음 한 번 꿈꾸는 것이 어렵지, 한 번 꿈꾸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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