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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노랜드』 천선란 “주인공들 힘들어도 그냥 사는데, 우리도 그냥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으면”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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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2 07:30:00 수정 : 2022-06-22 1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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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딱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망할 놈의 생각이 어디 마음대로 쉽게 되던가. 지 맘대로 불쑥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블랙 아웃된 듯 하다가도 갑자기 획 하고 다시 나타나는 게 그놈이니까. 오죽하면 생각을 멈추는 게 불가(佛家)에선 수행이고 참선이겠는가. 그런데, 가끔 좀 어이없는 곳에서 피어나는 게 그놈의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지난해 추석 무렵, 작가 천선란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문뜩 한 배우에게 꽂혀버렸다. 배우 정호연이었다. 정 배우와 어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자, 한 캐릭터를 모락 피어올랐다. 바로 강설이었다.

 

생각과 상상은 더 뻗어나가서 원래 쓰고 싶었던 늑대 인간 아이디어와 만났다. 뱀파이어와 외계인을 좋아했던 그는 비슷한 차원으로 늑대 인간을 소재로 작품을 쓰고 싶었다. 과거에서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존재보다는 근미래의 늑대인간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묶여지면서 마침내 소설로 나왔다. 그해 11월 리디북스 우주라이크소설 시리즈로 발표된 SF단편 「흰 밤과 푸른 달」이었다.

 

「흰 밤과 푸른 달」은 반은 염소이고 반은 악마인 ‘크람푸스’를 물리치기 위해 늑대의 유전자를 심은 ‘늑대 인간’과 인간의 우정 또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강설은 크람푸스를 물리친 뒤 다른 행성 침탈을 위해 떠나게 되는 늑대 인간이자 친구인 명월을 만나기 위해 기지로 찾아간다. 하지만 강설은 명월의 사망을 전제로 한 위로금 수령 계약을 거부하고 기지를 떠났다가 명월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기지로 향한다.

 

“늑대는 귀소본능 같은 게 있다며. 그래서 죽기 전에 기어 들어온다는데 너도 죽기 전에 기어들어와. 여기서 죽어...죽을 거면 내 눈앞에서 나랑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죽으라는 거야. 안 죽을 것 같아도 내가 죽기 전에 와. 내가 너보다 빨리 늙을 거 아냐. 아무리 늦어도 70년 안에는 와. 100살 넘어서까지 살 생각 없으니까.”(55-56쪽)

 

SF는 물론 추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유려한 문체로 써온 젊은 작가 천선란이 「흰 밤과 푸른 달」을 포함해 최근 2년간 발표한 단편 10편을 모은 소설집 『노랜드』(한겨레출판)를 펴냈다. 첫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이 나온 지 2년 만에 내놓은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제목 『노랜드』에 걸맞게, 정주하지 않고 떠나거나 떠나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품 속에서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효용가치가 다해서 떠나고(「흰 밤과 푸른 달」), 외계인의 침공 또는 인간의 욕망으로 파멸하는 지구를 떠나며(「바키타」, 「푸른 점」, 「우주를 날아가는 새」), ‘빌어 처먹을 마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도망가듯 떠나오기도 한다(「이름 없는 몸」).

 

천선란이 이번 소설집에서 펼쳐 보이는 세계와 인물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젊은 작가인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일 작품 세계는 어떤 미래일까. 천 작가를 지난 17일 서울 선릉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첫 작품 「흰 밤과 푸른 달」은 인간들이 ‘크람푸스’라는 괴물에 맞서 ‘늑대 인간’을 만들어 물리치는 설정인데요.

 

“SF에서 유전자 변형으로 외계인이 만들어지거나, 전혀 다른 존재가 만들어지는 게 그렇게 특별한 상상력은 아니잖아요. 한계점을 넘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가장 빠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 변형 식물 등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식물을 만들거나, 인간 역시 극한 환경에서 자란 식물만을 먹고 살 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적대적인 외계인이 나타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과학기술도 인간을 변형시켜서 더 강력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죠.”

 

―주인공 강설과 명월은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글을 쓸 때 연인이나 사랑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는 편인데요. 너무 고정적인 사랑만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요. 사랑한다고, 사귀자고 얘기를 하거나 결혼을 해야만 사랑인 것처럼 되는데, 우정부터 시작해서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하죠. 독자들이 읽었을 때,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사랑이야, 라고 느낀다면 그건 사랑으로 들고 싶고, 아직 사랑은 아닌 것 같아, 라고 느끼면 가족애로 남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만났고 서로 의지했기 때문에, 아마 저는 사랑보다 조금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설이 우주로 떠나는 명월에게 해주는 대사가 감동적인데요.

 

“아버지가 건축 일을 하셔서 해외 출장을 많이 갑니다. 제가 11살 때부터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동이나 남미 등으로 자주 가셨죠.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계시고요. 요즘에는 4개월에 한 번씩 휴가가 나오지만, 그때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오실 때도 있었어요. 중동에서 전쟁 같은 게 나면 한국인들을 데리고 들어오죠.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가면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곁에서 그 죽음을 볼 수 있는 건 어떤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죠. 멀리 떠나가는 사람을 볼 때면 잘 지내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살아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여정을 다 누린 다음에, 죽을 때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새 행성을 탐색하러 우주로 나가는 명월이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저는 아주 미래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좀 특이한데요, 무슨 뜻이죠.

 

“주인공 강설과 명월 이름을 뽑은 것이죠. 약간 눈이 내리는 흰 밤, 늑대 인간이 돼서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는 달.... 설정 중에서 지구에 어둠을 오지 않게 하고요.”

 

단편 「푸른 점」은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아 나선 사투르호의 함장 시에라는 웜홀을 통과하기 전 육안으로 지구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었다. 어렵게 인공지능 러스의 방해를 뚫고 선미에 선 시에라의 눈에 비친 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니었는데.

 

“시에라, 너는 언젠가 그렇게 될 거야.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 정말 언젠가 네가 그렇게 끄트머리이자 시작점인 곳에 서게 된다면 네가 믿는 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 네가 믿고 있는 것이 답이야. 그걸 잃지 마. 가끔은 진실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니까.”(86쪽)

 

―조금 슬픈 이야기인데요.

 

“진실과 믿음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기후 위기를 알면 알수록,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됐죠. 그럴 때면 비관주의자가 되고 회의적인 느낌이 듭니다. 반면 늦었지만 우리는 바꿀 수 있고 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가야 한다는 사람도 있죠. 진실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낙관적인 믿음을 믿을 것인가, 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비관적인 것보다는 낙관적인 것이 사람을 조금 더 살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의 문장을 만났어요. 칼 세이건의 책을 무척 좋아했죠. 책에 쓰인 문장을 언젠가 인용하고 싶었고요. 다시 찾은 푸른 지구 사진도 너무 작아서 이게 맞나 고민하다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쓰게 됐어요.”

 

―언제 진실보다 믿음이 중요할까요.

 

“방금 말한 기후 위기와 지구 미래를 생각할 때에는 진실보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도전이라는 수식이 붙는 매 순간의 행동에는 진실과 믿음이 따라오죠. 예를 들면, 제가 한국과학문학상을 준비할 때 당시 제 상태론 도전해도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될 거야, 라는 어떤 허무맹랑한 믿음 때문에 도전했던 것 같아요. 경계에서 항상 고민을 하다가 믿음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인공지능 ‘러스’는 매력적인데, 이런 인공지능이 가능할까요.

 

“반대로는, 나쁜 것을 다 흡수하는 인공지능은 빠르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웃음).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우주를 날아가는 새」는 검은 흙먼지가 지구를 덮어버린 근미래에 효원이 지구를 떠나지 않고 효종 스님과 함께 전등사에 남으려 하면서 시작된다. 효원은 그날 밤 몇 십 년 전 효종 스님이 구해주었다는 저어새와 비슷한 새를 치료해준 뒤 효종 스님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서 헬기를 탄다.

 

―이 소설은 어떻게 나왔나요.

 

“아빠가 한창 살을 빼야 했던 2, 3년 전 어느 저녁, 인천 집 앞 공원에서 아버지와 2시간째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과학이나 우주, 외계인 등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는 세상은 텅 비어 있다는 불교의 공사상이 SF의 양자역학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얘기했죠.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분석해 들어가면 결국 우주는 텅 비어 있다는 뜻 아니냐면서요. 저는 흥미로웠어요. 언젠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책 『평화도시 인천 스토리텔링』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강화도와 절 등을 보면서 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죠. 다만 불교의 공사상과 양자역학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과학적인 것을 뛰어넘는 어떤 믿음과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고요. 진실보다 누군가를 아끼는 믿음이 더 클 때 일어나는 기적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죠.”

 

―검은 흙먼지가 가득 차서 지구가 멸망하는 근미래를 설정했습니다.

 

“바다에 쓰레기 섬이 떠다니는 것처럼,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미세먼지가 퍼져 있지 않고 뭉쳐서 대륙만한 발암물질 덩어리가 지구를 순환하면서 지구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들이킨 사람이 폐질환을 일으키면서 죽는 상황을 상정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지구 멸망보다는 생명 멸망을 상정한 셈이죠.”

 

―불교의 공사상이나 성주괴공 우주론 등 상당한 불교 지식이 담겼는데요.

 

“종교를 굳이 선택하자면, 불교에 조금 가까운 편이고, 신들 가운데 부처님을 최애라는 얘기를 하긴 하죠. 그렇다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하는 건 아니라서 종교가 있다고 말하기엔 좀 뭐하고요. 지금은 불교 배경과 지식에 관심이 많고, 동양 판타지나 사극과도 좀 연결이 돼서 도교 등에도 관심이 있고요. 다만 글을 쓸 때는 제 지식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불교 관련된 책을 사서 읽으며 썼어요. (불교적 소재로 한 SF를 많이 보지는 못했는데요)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아요. 영화 「인류 멸망 보고서」에선 인공지능 스님이 나오기도 하죠.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다른 단편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명체와 전쟁이 끝난 뒤 남은 ‘이인’이 전투에서 사라진 전우 ‘벤’을 기리기 위해 그가 죽은 장소에 가면서 시작된다. 이인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가 외계 생명체가 내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고통을 견디며 이인은 그것의 얼굴을 주시했다. 집단에 있으면 마주 보지 못하는 얼굴이 있다. 개개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곳이 전장이었다. 적과 얼굴을 마주 본다면 더는 겨냥하게 될 수 없으므로.”(406쪽)

 

―모르는 존재와 적대하지 않고 공존을 모색하는 내용인데, 최근 우리 사회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인가요.

 

“사회적인 의미보다는,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좀 더 많이 생각했어요. 가장 친했던 친구를 전쟁에서 잃고, 본인 역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높은 절벽을 넘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면, 그것을 왜 생기는 걸까.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행복에 가닿기 위함이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에 저 벽을 넘을 수 있다는 느낌으로 썼던 거죠. 주인공이 만나는 외계인 역시 자신의 행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홀로 여기에 남는 것을 택하는 거잖아요. 그런 존재들이 이유 없이 살고자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어요. 이 상황과 현대인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산업재해를 비롯해 비극을 맞은 사람들에게 저런 일을 당하고 살 수 있나,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게 느껴지죠. 벽처럼 느껴지는 삶을 오르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고, 이유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더 밝은 분위기의 소설도 있었고, 영웅이 나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번 소설집에는 일부러 블루 느낌에 가까운 소설들을 모아 넣었어요. 우울한 느낌의 소설을 모았고, 하나 같이 살고자 하는 인물들을 모았죠.(주제의식이 상당히 강렬한 것 같아요) 요즘 한국 사회가 매우 피로한 삶을 살고 있고,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더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어떤 카타르시스적 작용을 일으켜서, 여기 있는 주인공들도 힘들어도 다들 그냥 사는데, 나도 그냥 살아도 되겠다고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밤하늘을 바라보면 커다란 우주 안에 모래 알갱이만한 존재로 있구나, 라는 걸 확인받을 때 오히려 제가 갖고 있는 힘듦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는 ‘작가의 말’에서도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밖은 저토록 조용한데 이 안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지나치게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평생 좋아하는 노래만 듣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주의 시간으로 내 삶은 노래 한 곡 같아서, 한 곡 정도면 내내 행복해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나는 불안으로 꽉 찬 나를, 나만 한 크기가 아니라 좁쌀만 한 크기로 만들고 싶어서 우주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418쪽)고 적었다.

 

‘만화가 말고 무엇이 있을까.’

 

만화를 끼고 살았던 학생 천선란은 잠시 만화가를 꿈꾸며 미술을 배웠다가 도중에 포기한 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을 고민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유행하던 『투니버스』 만화를, 중고등학교 때에는 만화방의 만화책을 모두 섭렵한 그였다.

 

우선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가 떠올랐다. 그는 이때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 적는 연습을 했다. 글쓰기를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우고도 싶었다. 어느 날, 부모에게도 알리지도 않고 몰래 안양예고 문예창작학과 편입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다. 합격. 이때 그의 나이 17세 때였다.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이던 2014, 15년 무렵,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합병증으로 치매 증상도 보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직을 준비하던 대학생 천선란은 병실의 엄마를 자주 찾아갔다. 기억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름이나 주소, 기억 등을 자주 물었다.

 

“엄마, 내 꿈이 뭐야?” 어느 날, 그는 병실의 엄마에게 눈을 맞추며 큰 소리로 물었다. 이름을 열 번 정도 물으면 한 번 정도 대답해 주던 엄마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작가!” 신문사 신춘문예에서 계속 낙방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음을 잡고 쓰진 못하던 그는 이때 작가라는 꿈을 꼭 이뤄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천선란 문학의 원점이었다.

 

1993년 인천에서 태어난 천선란은 2019년 첫 장편소설『무너진 다리』를 썼고 2020년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와 로봇 기수를 그린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름 ‘천선란’은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의 이름 한 글자씩을 조합해서 만든 필명. 

 

그는 장편소설로 『무너진 다리』(2019), 『천 개의 파랑』(2020), 『나인』(2021),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2020), 『노랜드』(2022) 등을 펴냈다. 단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에 대해 설명 부탁합니다.

 

“저는 세계를 꾸준히 넓혀가는 얘기를 쓰고 싶었고, 그렇게 써왔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아빠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구본을 돌려보기도 했거든요. 만화를 많이 보는데다가, 장애인 엄마가 있고, 아버지도 항상 떠나 계셔서, 세계를 조금 크게 느꼈죠. 세상과 우리 무대가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확장되면 넓은 시각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길 것 같거든요.”

 

―순문학과 SF소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나요.

 

“저는 SF가 너무 재미있어서 쓰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봐서 장르적인 상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만화와 애니메이션 세계는 판타지적이잖아요. 외계인들이 마구 등장하고, 그들과 싸우면서 세상을 구하는 얘기들뿐이었죠. 순문학은 애초에 저랑 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등단이라는 제도가 너무 막강했기에, 저도 처음 제 소설을 맞추려고 노력했죠. 그때마다 교수님이 너는 어떤 거대한 이야기 도입부만 쓰는 느낌이 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순문학을 쓸 때는 더 작은 것에 집중해야 되는데, 자꾸 작은 점에서 뻗어나가는 얘기를 했으니까요. 애초에 틀이 맞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인물과 문장이 좋다는 평가가 있더라고요.

 

“저의 강점은 아이디어나 소재보다는 내면을 파고드는 문장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사가 좋다는 평도 있던데, 평소 말을 잘 하시나요) 북 토크 같은 것을 하고 나서 후기를 보면 작가님이 말을 너무 잘하셔서 홀렸다, 이런 얘기를 본 적이 있어요.”

 

―특별한 글쓰기 전략이나 방법이 있는지요.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오전 10시 일을 시작해서 꽤 오래 글을 씁니다. 글만 쓰는 건 아니고 여러 일을 하죠. 영감을 받고 막 쓸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잘 나오지 않으니까 그냥 하염없이 앉아서 쓰는 거죠. 잠을 줄이진 않고요. (초고와 퇴고 중 어디에 강점이 있으신가요) 초고를 비교적 잘 쓰는 것 같아요. 완성을 하고 나면 문단을 빼고 어딘가를 통으로 추가하는 퇴고는 하지만, 크게 초고 형태를 잃어버리진 않거든요. (인물과 스토리 또는 설정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하는지) 인물을 조금 먼저 떠올리긴 해요. 인물을 먼저 설정을 하고 그에 맞는 설정과 스토리를 짜죠. 그렇지만 동시에 떠올리기도 하고, 그냥 막 떠오르기도 해요. 아마 많은 SF 작가들도 별 생각 없이 떠올리실 것 같기는 해요. 모두 우주에 가 있거나 다른 존재를 생각하며 사니까요.”

 

―어떤 작가가 되고 어떤 작품 세계를 그리고 싶습니까.

 

“앞으로 다작을 할 것 같고요. 소설의 목적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아직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천선란 책이 나왔어, 라고 하면, 이 작가는 재밌으니까 한번 읽어야지, 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평생 쫓아갈 것 같아요. 저는 『해리 포터』나 『셜록 홈즈』처럼 인물이 사랑받는 이야기, 인물이 막강해서 시리즈가 나오는 그런 이야기에 욕심이 많아요. 그래서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서 나중에는 강한 캐릭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고요(웃음).”

 

가게를 메운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자신의 탁자를 넘어서서 분수처럼 쏟아내던 그날 선릉역 작은 커피숍에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세계 개척을 꿈꾸는 젊은 작가는, 담대한 자신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잠시만요.” “그냥 떠올랐다고 하면 안 되겠죠?”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라면서도 그의 상상력과 이야기는, 작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로, 태양계로, 우리 은하로, 마침내 아직도 팽창 중인 우주로까지 향하고 있었다. 처음 한 번 꿈꾸는 것이 어렵지, 한 번 꿈꾸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그런데, 지구와 우주로 향하는 그의 상상력과 이야기는 지구적으로 전개돼온 삶 속에서 이미 차곡차곡 쌓여져 온 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그러니까, 중동은 물론 남미까지 세계를 누볐던 아버지는 지금 비교적 가까운(?) 인도네시아에 계시고, 어머니는 재활 병원에 치료 중이며, 언니는 인천에서 생활하고, 그 역시 강남에서 사는 등 글로벌 노마드 생활을 이어온 데다가, 어릴 적부터 끼고 살았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세계는 우주를 마치 동네 놀이터처럼 보여주면서 그를 온갖 외계인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하는 상상 속의 영웅으로 끌어올리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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