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할양 전제한 외교 협상은 러에 이익"
우크라가 ‘결사 항전’의 의지 내비친 가운데
G7·나토 정상회의서 어떤 결론 내릴지 ‘주목’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이 “전쟁을 멈추고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해결하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외교적 해법이란 결국 푸틴한테만 유리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금까지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영토를 모두 되찾을 것”이란 입장을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전쟁을 종식할 방안을 두고 국제사회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곧 열릴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향후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있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외교부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은 G7 및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그 유럽 동맹국들은 우리나라에 신속히 적정한 숫자의 고성능 중화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미국·영국 등은 상당량의 무기를 제공한 반면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해 무기 지원에 소극적이고 독일은 약속한 무기의 공급을 미루며 시간을 끄는 상황이다.
쿨레바 장관은 또 서방에 “대(對)러시아 제재는 기존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새로운 제재를 더 부과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물러서기도 전에 외교적 해법부터 요구하는 것은 결국 푸틴만 이롭게 할 뿐이므로 무시하라”고 촉구했다.
여기서 ‘외교적 해법’이란 즉각적인 휴전 및 평화협상 개시, 그리고 협정 체결을 통한 전쟁의 마무리를 뜻한다. 문제는 지금 당장 휴전하고 평화협상에 돌입하면 지난 2월 24일 침공 개시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쟁 중단과 외교적 해법을 촉구하는 평화론자 중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 일부를 양도하는 건 불가피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가진 이가 많다.
러시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획득하는 건 어쨌든 빛나는 전과인 만큼 이쯤에서 전쟁을 멈추고 철군할 명분을 얻게 된다. “외교적 해법 요구는 결국 푸틴만 이롭게 할 뿐”이란 쿨레바 장관의 발언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요즘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전쟁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중단되며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해 아프리카 등의 빈곤한 개발도상국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제재로 러시아산 석유·가스를 구입하기 어려워지며 국제 유가가 치솟는 등 에너지 가격도 폭등이 우려된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에 굴욕감을 줘선 안 된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은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을 맡고 있는 세네갈의 마키 살 대통령도 똑같은 발언을 되풀이했다. 러시아를 더 자극하지 말고 이쯤에서 전쟁을 끝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움직임에 우크라이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남부 미콜라이우주(州)와 인근 도시 오데사를 방문한 뒤 “우리는 러시아에 땅을 양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예전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결국 영토 할양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영토 할양을 전제로 한 외교적 해법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전쟁을 계속할 테니 서방이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는 얘기다.
서방은 아직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영국·캐나다는 우크라이나의 지속적 항전을 응원하는 반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는 갈수록 평화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미국은 여전히 뚜렷한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6∼28일 독일 바이에른주(州)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그리고 곧바로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나토 정상회의 때 치열한 논의를 거쳐 서방의 단일한 입장이 정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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