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이어 한국인 두 번째 쾌거
라운드마다 나이 넘는 신들린 연주
협연지휘자가 감동 눈물 보이기도
임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학생
이번 계기로 더 배우고 싶은 마음”

일곱 살 때 스스로 동네 피아노 학원을 찾아간 소년이 10여년 만에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8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6명의 결선 진출자 중 올해 18세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최종 우승자로 선정했다. 미국 최고 피아노 콩쿠르인 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다. 임윤찬은 전 세계 클래식 팬 3만명이 참여한 인기투표 집계 결과에서도 청중상을 받았다. 또 현대곡을 가장 잘 연주한 경연자에게 주는 베벌리테일러스미스 어워드까지 차지해 3관왕이 됐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1934∼2013)을 기리는 대회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손열음이 2위, 2017년 선우예권이 1위를 차지했다.
51개국에서 388명의 피아니스트가 지원한 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은 라운드마다 어린 나이에 믿기지 않는 기교와 열정을 보여 줘 화제를 만들며 일찌감치 우승을 예감케 했다. 결선 두 번째 곡인 지난 17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무대에서는 신들린 듯한 강렬한 연주라는 평가와 함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협연 지휘자가 감정에 겨운 듯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목격됐을 정도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웹방송 해설자인 미국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로는 “정말 일생에 한 번 있는 연주였고, 이런 연주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면서 “음악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고 경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극찬했다.
2019년 만 15세 나이로 윤이상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하며 ‘괴물 같은 신인이 나타났다’는 찬사를 받은 임윤찬 성장기는 경이롭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 건반을 만난 후 가르침에 목말라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스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영재아카데미 문을 두드렸다. 페달링은커녕 메트로놈조차 접한 적 없던 ‘원석’ 같은 임윤찬의 재능을 알아본 손민수 한예종 교수 인도로 이후 음악영재아카데미와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거쳐 지난해 한예종에 영재전형으로 입학했다. 평소 감정 표현이 많지 않고 말수도 적지만,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1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대담한 해석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제자 우승 소식을 들은 손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무대에서 돌변한다기보다는 음악에 빠져든 순간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 같다. 윤찬이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음악가로, 아무리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굽히지 않고 음악에 진실하게 혼을 담아낸다. 피아노 세계에 큰 획을 긋는 삶을 살아가리라 믿는다”고 축하했다. 임윤찬은 현지 언론 회견에서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아직 배울 게 많다. (제 꿈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하고만 사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수입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라면서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학생이고, 제가 어느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콩쿠르 출전을 통해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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