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풀어 최대 6억원을 빌려주고, 젊은 층엔 장래소득을 반영해 대출한도를 늘려주는 규제 완화책을 내놨으나,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이자 부담이 불어나면서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무주택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뉴스1에 따르면 미국발(發) 긴축 공포에 따른 금리발작으로 시중은행 주담대 최고금리는 연 7%를 돌파했다. 연내에 8%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허용한 6억원 대출을 받으면 매월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만 400만원에 달해 웬만한 직장인은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일각에선 견고하던 집값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번 대출규제 완화가 무주택 서민을 마지막 '폭탄 돌리기'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오는 3분기부터 생애최초 LTV 상한을 지역·집값·소득에 상관없이 80%(종전 60~70%)로 완화하고, 대출한도는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소득이 적은 청년층은 올해부터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황비율(DSR)' 규제 때문에 대출이 막히지 않도록 장래소득 반영을 확대해 대출한도를 늘려주기로 했다.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내로 제한한 규제도 다음달부터 폐지된다. 긴급생계용도 대출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까진 DSR 규제에서 배제해 생계자금 대출이 막히지 않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대출규제 완화 방안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희소식이었으나, 연일 치솟는 금리 탓에 주택 매수 시점을 놓고 무주택자들의 고민은 한층 깊어지게 됐다.
같은 날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최고금리는 연 4.33~7.09%로, 2009년 이후 13년만에 상단이 7%를 넘어섰다.
대출금리가 급등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날 28년만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서다. 앞서 자이언트 스텝 전망이 나오면서부터 채권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주담대 혼합형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가 전날 4.082%로 치솟아 2012년 4월 이후 10년2개월만에 4%를 넘어섰다.
변동형 주담대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변동형 금리의 기준이 되는 신규취급액코픽스는 5월 1.98%로 3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픽스는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가중평균한 수치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인상하는 만큼 코픽스도 상승한다. 이날 4대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3.69~5.63%로 집계됐다.
시장금리는 앞으로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다음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환율 방어 등을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내 2.75%까지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 고정형 주담대 최고금리는 연내 8%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차주들의 빚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대출규제가 풀리더라도 무주택자들이 섣불리 빚을 내기 힘든 이유다.
정부가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이번에 최대로 허용한 대출한도 6억원을 30년 만기(원리금균등분할)로 빌리더라도, 연 7% 금리가 적용되면 월이자만 약 350만원에 달하고 원금을 합쳐 매월 399만원을 은행에 갚아야 한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4790만원으로, 웬만한 직장인 연봉 수준에 달한다. 월급을 고스란히 은행에 내야 하는 셈이다. 대출금리가 연말 연 8%까지 오를 경우 월 상환액은 440만원(연간 5283만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인상될 경우 대출자들의 전체 이자 부담은 연 3조3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8월 이후 현재까지 모두 5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이자 부담 증가액은 16조5000억원에 달한다. 기준금리가 2.75%까지 오르면 차주들의 이자 부담액은 13조원 이상 더 늘어나게 된다.
설상가상 장기간 견고한 상승세를 유지하던 집값도 올해 들어 꺾이면서 예비 차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3주 연속 하락했다. 낙폭도 전주보다 확대(-0.01%→-0.02%)됐다. 수도권과 전국 아파트값은 6주 연속 떨어지고 있다. 아파트 매수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도 88.4로 6주 연속 하락했다.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처럼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빚 부담을 감당하겠으나, 이자가 상당하고 집값도 흔들려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며 "이번 대출규제 완화가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일각에선 자칫 무주택자들을 마지막 폭탄 돌리기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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