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서해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해양경찰청의 진술 조서가 최초 공개됐다. 동료 중 한명은 이씨의 실종 후 방수복이 근무했던 ‘무궁화 10호’ 선실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점을 들어 ‘극단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 유가족은 17일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월북 프레임’을 만들려 조작된 수사를 한 것”이라며 “(이전 수사 결과는) 전 정권의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사건 당시 고인이 탔던 해양수산부 소속 선박인 무궁화 10호 직원들의 진술이 공개됐다. 이 진술은 당시 수사에 나선 해경이 작성했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전날 밤늦게 해경 측에서 무궁화 10호 직원들 7명의 월북 관련 진술 조서를 전달했다”며 “진술 어디에도 이씨의 월북을 추정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끼워 맞추기 수사라는 증거”라며 “월북 프레임을 먼저 씌운 뒤 이와 맞지 않으니 항소까지 하며 (그동안) 진술 조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이 공개한 진술 조서에 따르면 동료 A씨는 “이씨가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고 북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다”며 “이씨가 월북했다는 뉴스를 보고 터무니없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고 진술했다.
직원 B씨는 ‘무궁화 10호 선내에 구명동의 외 다른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구명동의 외 각방에 방수복이 있지만 이씨의 방에 가 확인해보니 그대로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월북을 하려 했다면 방수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추운 바닷물에 그냥 들어갔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이어 “월북이 아닌 자살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9월21일 오전 1시~6시 밀물로 물살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그것을 뚫고 북쪽으로 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이들 외에도 대다수 동료가 이씨의 평소 월북 언급에 대해 “그런 적 없다”고 입을 모아 진술했다.
고인은 앞서 2020년 9월21일 서해상에서 어업 지도선 무궁화 10호를 타고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됐었다. 당시 북한군은 최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그를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웠다.
해경은 사망 한달 후인 10월22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씨는 출동 전후와 출동 중에도 수시로 도박을 하는 등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했다”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었다.
이후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피해자의 형 이래진씨가 문재인 정부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해양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청와대가 정보공개를 거부한 관련 부처 보고·지시 문건 일부와 무궁화 10호 직원들의 해경 진술 조서를 공개하라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한달 후 항소했고, 문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 후 청와대가 보유했던 핵심 자료들은 대통령기록물로 15년간 사실상 ‘봉인’됐다.
유족 측은 문 전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을 상대로 이들 자료에 대한 대통령기록물 지정 금지·정보열람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난 1월 각하된 바 있다.
전날 해경은 브리핑을 통해 “(이씨의) 월북 의도를 발견 못 했다”며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던 2년 전 수사 결과 발표를 뒤집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에도 공개하지 않았던 무궁화 10호 직원들의 진술 조서를 추후 공개하겠다고 했었다.
한편 이날 유족은 문 전 대통령을 포함한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유족 측은 지난달 25일 대통령기록관장에게 정보공개 청구를 한 상태고, 오는 23일까지 공개 여부가 결정된다.
유족 측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정보공개 청구가 거부되면 행정소송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문 전 대통령,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대상으로 고발 조치를 검토한다고도 밝혔다.
김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법상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정보가 공개되는데, 그 정보를 받기 위해 문 전 대통령을 고발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국민 보호 의무를 다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 1차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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