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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배우로 우뚝 선 ‘송강호’… 새로운 장르 된 ‘박찬욱’ [‘K무비’ 칸 2관왕]

입력 : 2022-05-30 06:00:00 수정 : 2022-05-30 07: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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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인생
25년 전 ‘넘버3’ 단역으로 눈도장
‘기생충’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
칸 초청 일곱 번 만에 수상 쾌거
송 “상이 목표 아냐… 끝없이 도전”

작품세계
‘복수 3부작’ 새로운 세계관 선봬
‘올드보이’ ‘박쥐’ 이어 세 번째 수상
“헤어질 결심, 마법 같은 연출” 극찬
박 “韓 관객 수준 높아 영화 발전”

‘충무로 명콤비’ 박찬욱·송강호 회견
JSA·복수는 나의 것·박쥐 등 호흡
송 “‘박쥐’ 한지 13년… 너무 오래됐다”
박 “캐스팅 거절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딱 소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나 최영의야…. 그 무대뽀 정신… 무대뽀… 그게 필요하다.”(1997 ‘넘버3’ 중 송강호(조필 분) 대사)

 

연극배우 출신 무명배우로 ‘무대뽀 정신’을 외치며 스크린에 등장했던 송강호.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영화제에 일곱 번이나 초청된 끝에 마침내 우리나라 첫 남우주연상을 꿰차며 세계적 배우로 우뚝 섰다.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저 배우가 되고 싶었다던 송강호는 1991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무작정 상경해서 “청소부라도 시켜달라”며 줄기차게 문을 두드린 끝에 입단했다. 당시 강신일·김윤석·김의성·문성근·안석환·양희경 등 쟁쟁한 선배들이 포진한 연우무대에서 송강호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연기를 배웠다. 영화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고 두 번째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에서 깡패 ‘판수’로 나왔다. 단역이었음에도 “진짜 깡패를 출연시킨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 만큼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를 눈여겨본 송능한 감독이 영화 ‘넘버3’에 말더듬이 삼류 깡패 두목 ‘조필’ 역으로 송강호를 캐스팅했는데 특유의 어투로 ‘무대뽀·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부하들에게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이 대성공이었다. 이어 ‘조용한 가족’(1998)과 ‘쉬리’(1999)를 통해 조연급 영화배우로 올라선 그는 2000년 개봉한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후는 그야말로 ‘송강호 시대’. 특히 봉준호 감독과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첫 합을 맞췄다. 이후 국내 관객 1000만명을 넘긴 ‘괴물’(2006)과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을 잇따라 찍었다.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티켓파워가 가장 센 배우로 평가받는 송강호는 2016년 개봉한 ‘밀정’으로 주연 영화 누적관객 수 1억명을 기록했으며, 1000만 관객 영화만 4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기생충’)이나 된다. 모든 영화 제작자와 감독이 작품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데 작품 선정에 신중하다. TV드라마는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다. 시상식 후 송강호는 “행복하고 영광스럽지만 (수상이)목표는 아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마음”이라며 “누누이 하는 이야기지만, 상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배우도 없다. 좋은 작품을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거기에서 격려를 받고, 수상도 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있을 뿐이지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명된 순간 배우 송강호(가운데)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옆자리에 앉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왼쪽)과 배우 강동원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로 나서고 있다. 칸=AP연합뉴스

◆유려한 미장센에 담긴 대담한 상상력… ‘박찬욱’ 새로운 장르 되다

 

“한국 관객들은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해요. 장르 영화 안에도 웃음, 공포, 감동이 다 있기를 바라는 편이죠. 우리가 많이 시달리다 보니 한국 영화가 이렇게 발전한 것 같아요.”

‘깐느 박’ 박찬욱 감독은 28일(현지시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올린 뒤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그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박 감독은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면체 영화를 만들어낸다.

거장의 품격 박찬욱 감독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참석자들 갈채에 호응하며 무대로 나서고 있다. 한국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것은 임권택 감독 이후 20년 만이다. 칸=AP연합뉴스

대중성보다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탐구해온 박 감독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장르 관습을 따르지 않는 박 감독 작품 세계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는 대담한 상상력, 사회적 금기를 건드리는 파격적 형식, 복잡하고 섬세한 서사, 블랙코미디, 새로운 캐릭터를 결합해 기존 공식을 뛰어넘는 ‘박찬욱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야기를 품은 미장센은 더없이 강렬하며, 뻔한 공간은 삐딱한 구도를 통해 낯선 곳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유려한 영상미는 박 감독 트레이드 마크다. 칸을 비롯한 유럽 평단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서구적 테마를 완성도 높은 미장센으로 스크린에 옮기는 그의 작업 방식에 주목해왔다.

 

‘박찬욱’ 이름을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린 작품은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 이 영화는 최고 흥행작이 됐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박 감독은 흥행으로 입지가 탄탄해지자 자신의 기호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영화가 신하균·배두나·송강호 주연 누아르 ‘복수는 나의 것’(2002)이다. 이를 자신의 ‘복수 3부작’ 첫 작품 삼아 박 감독은 복수 3부작을 완성해냈다. ‘올드보이’(2003)는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고, ‘친절한 금자씨’(2005)로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2009년작 ‘박쥐’는 박 감독을 ‘거장’으로 자리 잡게 한 영화다. 박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2회 수상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 관객 223만명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2016년작 ‘아가씨’에서 특유의 영상미를 최대치에 가깝게 끌어올렸다.

이번 감독상 수상으로 박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본상을 세 번 거머쥔 감독이 됐다. 그의 영화 세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신은 “마법 같은 연출력”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 등 극찬을 쏟아냈다. 이야기는 변사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이 사망자 아내 서래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시작된다. 수위 높은 정사신이나 폭력적 묘사가 많던 전작과 많이 다르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가 시상식 후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작품으로 온 덕에 같이 상 받아”

 

한국 영화 겹경사의 날 두 주인공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시상식 폐막 직후, 한국 취재진이 있는 프레스센터에 공동기자회견을 자청해서 나란히 나타났다.

 

먼저 말문을 연 박 감독은 “송강호씨와 제가 같은 영화로 왔다면 함께 상을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칸이 한 작품에 감독상과 주연상을 모두 주지는 않으니까요”라며 “따로 온 덕분에 둘이 같이 상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둘은 한국 영화사의 르네상스를 이끈 20년지기 명콤비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2009년 ‘박쥐’, 2012년 단편 ‘청출어람’에서 감독과 배우로 힘을 모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부당하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때조차 함께였다.

배우 송강호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뉴시스

송강호는 “저는 박 감독님과 오랫동안 작업했던 배우고, ‘박쥐’로는 심사위원상도 받으셨기 때문에 남다른 감정”이라며 “수상자로 제 이름이 호명되고 일어나자 감독님이 뛰어와 포옹할 때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오랜 우정과 동지의식을 한껏 드러냈다. 박 감독도 “저도 모르게 복도를 건너서 뛰어가게 되더라”며 “그동안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기다리다 보니 때가 온 것”이라고 격려했다.

 

둘은 다른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지만, 취재진 앞에서 서로의 작품과 활동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아직 ‘브로커’를 보지 못했다는 박 감독은 “송강호씨와 만났을 때 ‘연기가 그렇게 좋았다며?’라고 물었다”고 정평 난 송강호 연기를 에둘러 칭찬했다. 이어 “그때 ‘저 그냥 조연이에요’라고 답하더니, 그래 놓고 나 참……”이라고 해 좌중을 웃게 했다.

박찬욱(왼쪽) 감독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둘은 취재진 앞에서 서로 구애하듯 차기작을 약속하기도 했다. 함께 작업할 계획이 있는지 질문이 나오자 송강호는 “‘박쥐’ 한 지 너무 오래됐다. 13년이다”라며 보채듯 말하고, 박 감독은 한술 더 떠 “시간만 내주세요. 거절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읍소하듯 화답해 시종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줬다.


이강은 선임기자, 권이선·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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