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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륙이 반한 ‘한국인 손맛’… 잭 리 셰프 ‘빈 스머글러’ 가보니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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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5 06:00:00 수정 : 2022-05-24 2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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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호주 셰프’ 선정 ‘빈 스머글러’ 오너셰프 잭리 현지 인터뷰/유학비 벌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행 10년 만에 호주 최고 셰프 등극/김치·고추장 등 한식문화 메뉴에 반영/건강한 식재료로 색다른 브런치 선보여 현지 입맛 저격

 

잭 리 셰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포인트 쿡의 브런치 카페 ‘빈 스머글러’(Bean Smuggler). 이른 오전 8시인데도 카페 내부는 물론, 테라스까지 빈자리가 없는 걸 보니 맛집인가 보다. 한참을 기다려 메뉴판의 ‘미소 새먼’(Miso Salmon)을 주문했는데 플레이팅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뺨칠 정도로 예술이다. ‘겉바속촉’으로 만든 버섯 리소토 위에 미소 된장으로 천천히 조리한 연어와 유자 드레싱한 허브를 차례로 올렸다. 그리고 노른자를 흰자로 감싼 계란 위에 그림처럼 솔솔 뿌린 김 가루까지. 이렇게 예쁜 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잠시 고민하다 한입 넣자 연어의 부드러움과 리소토의 버섯향이 어우러지며 잠자던 미각세포를 모두 일깨운다. 이건 틀림없는 고수의 솜씨. 아니나 다를까. 미소를 띠며 등장한 주인장이자 셰프는 호주요리대회 한국인 첫 챔피언에 오른 잭 리(32·Jack Lee·한국명 이재혁). 한국인의 손맛을 호주에 제대로 알린 그를 따라 미식의 향연에 푹 빠져 본다.

 

Miso Salmon
잭 리 셰프

◆호주인 입맛 사로잡은 한국인 손맛

 

빈 스머글러. ‘커피콩 밀수꾼’이란 아주 재미있는 카페 이름이다. “포인트 쿡은 멜버른 시내와 야라강을 경계로 분리된 느낌이 드는 서쪽 외곽지역이에요. 하루는 차에 커피콩을 잔뜩 실어 강을 가로지르는 웨스트 게이트 다리를 건너는데 내가 커피콩을 몰래 훔쳐다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커피를 기반으로 카페를 시작해 언젠가는 내 요리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부푼 꿈을 꾸던 시절이라 그런 엉뚱한 상상을 했던 것 같네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했던가. 커피콩을 훔치던 청년은 10년 사이 ‘대도’가 돼 이제 호주인들의 입맛을 몽땅 훔치고 있다. 2018년 난다 긴다 하는 유명 셰프들이 출전하는 최고 권위의 호주요식업협회 요리대회에서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며 ‘올해의 호주 셰프’로 선정돼 호주 최고 셰프 반열에 오른 덕분이다. 

 

빈 스머글러
빈 스머글러

2018년 7월 문을 연 빈 스머글러는 실내 30석, 테라스 50석 정도의 그리 작지 않은 규모인데 매일 아침마다 손님들이 꽉 들어찬다. 요리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호주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손맛의 비결은 과연 뭘까. “빈 스머글러를 오픈할 때만 해도 주변 레스토랑의 브런치는 빵 위에 베이컨과 계란을 올려 먹는 뻔한 에그 베네딕트가 대부분이었죠. 저는 처음부터 이 요리는 아예 메뉴에서 뺐어요. 나는 남들과 다른 메뉴를 한다고 선언하고, 에그 베네딕트 먹고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배짱을 좀 부렸죠. 대신 기존 브런치 카페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다양한 메뉴들을 식탁에 올렸답니다. 그러자 빈 스머글러에 가면 멜버른 시내에 나가야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와 커피가 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Miso Salmon
Prawn & Chorizo

실제 그의 메뉴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요리로 꾸며진다. 인기 메뉴 ‘새우 초리소’(Prawn & Chorizo)가 대표적. 프렌치 요리 비스크 수프는 새우 또는 랍스터 껍데기로 만든 요리인데 이를 소스로 활용했다. 새우와 초리소를 구워 계란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새우 머리와 껍데기로 만든 소스를 부어 완성하는데 미소 새먼과 함께 인기 메뉴다. 스페셜 요리도 한몫했다. “단골들이 많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스페셜 요리를 내놓고 있어요. 기본 메뉴는 3개월에 한 번씩 바꾸고 스페셜 요리는 일주일마다 바뀌죠. 정말 다양한 요리를 했는데 한국적인 요리도 당연히 있답니다. 김치와 콩으로 스튜를 만들고 감자로 만드는 해시브라운과 저온 조리한 닭가슴살을 올렸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런 식으로 기존 브런치 메뉴에 한정되지 않는 ‘국적불명’의 다양한 요리를 스페셜로 올린 것이 다문화 사회 호주인들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 것 같아요.” 

 

Super Avocado
Breakfast Smuggler 

처음부터 손님이 몰린 것은 아니다. 요리대회 챔피언을 차지하고 지역 신문과 잡지에 자신이 대서특필됐기에 식당을 차리면 손님이 줄을 설 줄 알았단다. 그러나 1년 동안은 손님이 하루 한두 명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너무 외진 곳에 식당을 연 탓이다. “너무 만만하게 봤죠. 직원 2명으로 1년을 겨우 버텼는데 커피가 맛있다는 소문이 좀 나면서 한 번 다녀간 손님이 단골이 돼 가족들을 데려오더군요. 단골의 친구들이 또 단골이 됐죠. 여기에 특별한 브런치를 한다고 알려지면서 점차 자리를 잡았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그도 힘들었지만 빈 스머글러를 알리는 기회도 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1년 반 정도 멜버른은 거주지역 5㎞ 밖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음식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이에 사람들이 주거지 인근에서 커피 맛집을 찾아야 했는데 빈 스머글러로 손님들이 몰리면서 하루에 많을 때는 400잔까지 커피가 팔렸다. “호주 정부로부터 직원 한 명당 일주일에 700호주달러가량 고용지원금을 받았고 월세도 20%가량 지원됐어요. 여기에 테이크아웃 커피로 기존 매출의 60%를 충당하면서 직원 12명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답니다.” 

 

직원들과 함께 손하트 포즈를 취한 잭 리 셰프

◆높은 언어장벽에 ‘눈물 젖은 빵’ 먹다

 

잭 리는 일찌감치 요리의 세계에 눈을 떴다. 중학생 시절 드라마를 통해 셰프 붐이 일자 막연히 요리사를 꿈꾸다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기 시흥의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전국 고등학생 요리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자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바로 스페인 요리학교다. 세계 100대 레스토랑 1∼10위에 스페인 레스토랑이 많이 포함될 정도로 미식의 나라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군복무를 마친 뒤 2012년 유학비를 벌려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호주로 날아갔다. 처음엔 아주 힘들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였다. “멜버른 레스토랑에 취업한 지 2주 만에 쫓겨났답니다. 셰프가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느냐’고 물었는데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냥 나가라고 해요.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그때부터 말이 통하는 한식당에 취업해 돈을 벌면서 독하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죠.”

 

잭 리 셰프

잭 리는 이곳에서 만나 지금도 가족처럼 지내는 친구들에게 설득당해 호주에 눌러앉았다. 스페인어권보다 영어권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게 나중에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언어장벽이 없어 훨씬 유리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에 호주에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요리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바로 시드니와 멜버른에 있는 2년 과정 요리전문학교 윌리엄 앵글리스(William Anglis)다. “영어에 점차 자신감이 생겨 학교를 다니면서 다시 호주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인종이 어울리며 사는 호주 문화 덕분에 낯선 이국 땅이라는 느낌은 점점 사라지더군요. 결국 내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영주권까지 얻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운이 좋았다. 호주는 소도시에서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기에 짐을 싸 애들레이드로 거처를 옮겼다. 월세로 3명이 생활하는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 3곳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일자리가 없으면 임금 안 줘도 되니 일만 시작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는데 다행히 호주 대표 와인산지 바로사밸리의 레스토랑에 취직했고 임금도 제대로 받았다. 바로 ‘호주 미쉐린’ 격인 해트(Hat) 2개를 받은 헨틀리 팜(Hently Farm)이다. 잭 리는 실력을 인정받아 6개월 만에 정직원이 됐고 다시 6개월 만에 헤드셰프를 보좌하는 ‘넘버2’로 초고속 승진했다. 레스토랑이 두 배 규모로 확장됐고 잭 리가 관리하는 셰프가 12명으로 늘면서 그의 요리 실력도 무르익게 된다. 

 

‘올해의 호주 셰프’로 선정된 순간 기뻐하는 잭 리
‘올해의 호주 셰프’로 선정된 뒤 소감을 밝히는 잭 리

◆호주 최고 셰프 반열에 오르다

 

잭 리의 요리 솜씨가 호주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 영주권을 해결하고 호주 전국 영셰프대회 남호주지역 예선에서 우승한 그는 전국대회에서도 챔피언에 올라 201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국제미식협회(Chaine des Rotisseurs) 주최로 열린 세계요리대회에 호주 대표로 출전한다. 호주에선 거의 먹지 않는 토끼가 뜻밖의 경연 식재료로 나와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이름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잭 리는 애들레이드의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한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면서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본이 크게 부족했기에 멜버른의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3곳을 옮겨 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오후 3시에 일이 끝나면 6시까지 우버 기사를 뛰었을 정도. 그러다 호주요식업협회가 푸드쇼 행사 중 하나로 매년 여는 요리대회에 우연히 출전했는데 32명이 겨룬 경연에서 ‘깜짝우승’을 차지하면서 ‘올해의 호주 셰프’로 등극했다.

 

호주요식업협회 요리대회에서 선보인 바라문디와 관자 요리
저온조리한 돼지 안심 요리

“대회 30분 전에 재료가 공개되면 15분 만에 뭘 만들지 메뉴를 적어 내야 해요. 한 시간에 애피타이저와 메인요리 4인분을 만들어 내야 해 시간이 매우 촉박했죠. 시간 배분이 가장 중요했는데 영셰프대회 출전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나보다 경험과 실력이 뛰어난 셰프들이 많았지만 메뉴를 복잡하게 만들어 시간 초과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아 참,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면서 300∼400인분 요리를 많이 했는데 그 경험도 도움이 된 것 같네요, 하하.”

 

경연에서 해산물 재료로 바라문디(비늘이 큰 민물고기)가 나왔다. 잭 리는 생버섯과 해초류를 가니시로 곁들인 사시미 요리를 선보여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바라문디를 생으로 요리한 것은 잭 리가 유일했다. 또 껍질을 바삭하게 만든 돼지고기 요리와 저온 조리한 안심으로 심사위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호주 최고 셰프 반열에 올랐다. 상금 6000호주달러에 오븐 등 상품까지 모두 1만호주달러어치도 그의 품에 안겼다.

 

잭 리 셰프

빈 스머글러를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잭 리는 지난해 말 멜버른 인근 페어필드에 브런치 카페 2호점 ‘레일웨이 나인’(Railway 9)을 열었다. 한식당에서 일할 때 만난 친구들과 동업하는데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이곳 주방을 지킨다. 그가 요리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점은 환경을 지키며 생산된 건강한 식재료. “최대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키운 식재료를 선택해요. 곡물을 먹인 소보다 마블링은 적지만 목초를 먹인 소를 선택하고 식재료 낭비 없이 요리하려 애쓰죠.”

 

잭 리는 손님들이 이해하기 쉽게 복잡하지 않은 메뉴를 선정하고 김치와 고추장을 많이 쓸 정도로 한국 식문화도 메뉴에 크게 반영한다. 추구하는 스타일을 묻자 “정체성이 없는 요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주, 특히 멜버른은 정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서 만들어진 도시예요. 따라서 식재료와 조리법도 매우 다양하죠.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한 가지 스타일만 하는 것은 너무 아깝답니다. 이민자의 도시인 만큼 국경 없이 다양한 요리를 계속할 겁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태국, 중국, 일본 등 현지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수준의 레스토랑이 널려 있으니 음식 먹으러 세계여행 다닐 필요 없어요. 호주로 오세요.” 

 

■빈 스머글러 잭 리 셰프는

 

●1990년 서울 출생 ●한국조리과학고-호주 멜버른 윌리엄 앵글리스 요리학교(William Angliss Institute of Melbourne-Commercial cookery) 졸업 ●2008년 대경대학교 전국 고등학생 요리대회 대상 ●2016년 국제미식협회(Chaine des rotisseurs) 호주 영셰프대회 우승 ●2016년 국제미식협회 세계요리대회 호주 대표로 출전 ●2018년 호주요식업협회(Food service Australia) 요리대회 우승 ‘올해의 호주 셰프’로 선정 ●남호주 헨틀리 팜 레스토랑 셰프(senior sous chef) ●2018년 브런치 카페 빈 스머글러(Bean Smuggler)·눅 다이닝(Nook Dining) 창업 ●2021년 브런치 카페 레일웨이 나인(Railway 9) 창업


멜버른(호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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