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읽다: 태국/로버트 쿠퍼/정해영 옮김/가지/1만6000원
두 손을 공손히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와이’는 태국 여행에서 흔히 접하는 모습이다. 때로는 이방에서 온 관광객도 따라하는데 그저 말없이 하는 인사가 아니다. 층층시하인 태국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 많은 사회적 행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사람들 간의 ‘높이 규칙’을 증명하는 행동이다. 원칙은 간단하다. 누구를 만나든, 사회적으로 아랫사람이 물리적으로 낮은 자세를 취하고 윗사람이 물리적으로 우월한 자세를 취한다. 높이가 힘이다.
태국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건 어렵다. 심지어는 태국인끼리도 마찬가지다. 대신 ‘피는 물보다 진하다’가 태국에서도 불변의 진리다. 진정한 신뢰와 사회적 의무는 대가족 인맥 속에서 이뤄진다.
태국인이 인생의 모든 통과의례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화장이다. 장례식은 삶의 끝일 뿐 아니라 환생을 향한 여정의 출발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좋은 환생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며 평온을 얻는다.
신간 ‘세계를 읽다 : 태국’은 친숙한 나라 태국의 이 같은 속살을 보여준다. 인생의 대부분을 태국과 라오스에서 보낸 영국인 경제인류학자가 쓴 태국 문화 안내서다. 태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지배하는 오래된 가치들에 주목하며 이 책을 썼다. 인구의 99%가 믿는 불교와 애니미즘 요소가 뒤섞인 생활관습, 철저한 연공서열과 가족 중심의 사고, 미소와 와이로 말보다 큰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 식도락을 즐기고, 싸움을 피하고, 도박에 진심인 태국인 일상을 소개하며 상당히 근거 있고 흥미로운 해설을 덧붙인다. 또한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굳건한 국왕의 존재와 21세기에도 군부 쿠데타가 반복되는 정치 상황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 ‘태국에서 일하기’쯤에선 태국 현지 생활을 위한 실용서로서 진가를 보여준다. 외국인 경영자 입장에서 따라야 할 철칙을 알려주는데 이렇다. 잘한 일은 칭찬하되 잘못한 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말라. 일종의 현지 대리인인 ‘매판’을 잘 두어야 한다. 태국에선 엄하지만 공정한 상사보다는 인기가 많고 최대한 간섭을 덜 하는 이가 더 좋은 경영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개적 대립을 피한다. 항상 친절하고 모두에게 먹을 것을 사줘야 한다. 태국인에게 공개적 비판은 전쟁 행위나 마찬가지다. 불평도 비슷하다. 꼭 필요하면 불평하더라도 꼭 그래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게 인생 대부분을 태국에서 생활한 영국인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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