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상부 명령… 모든 혐의 시인한다"

“혐의를 인정합니까?”
“네.”
“공소사실을 전부 다 인정한다는 뜻인가요?”
“네.”
올해 21살의 러시아 육군 하사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법정에 서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했다. 아직 재판이 끝난 게 아니고 우크라이나 검찰의 구형 등 절차가 더 남아 있지만 법조계에선 최소 종신형이 선고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히면 나도 전범으로 몰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러시아 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 군대의 사기 저하로 이어져 탈영, 자해가 폭증하는 등 기강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전범은 러시아 육군 기갑부대 소속 바딤 시시마린 하사다. 우크라이나 검찰에 따르면 시시마린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이 침공을 시작하고 며칠 뒤 우크라이나 북부의 한 마을에서 비무장 민간인인 62세 노인에게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을 쏴 그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시시마린이 속해 있던 러시아 기갑사단 예하 호송대가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을 받아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 시시마린 등 러시아 군인 4명이 대열을 이탈해 인근 민가로 들어갔다가 노인과 마주치자 공격을 가한 것”이라고 공소사실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시시마린 등 병사들은 러시아군 상부로부터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고 말해 이 사건이 조직적이고 계획된 전쟁범죄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중에 포로로 붙잡힌 시시마린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검사가 수사를 진행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을 때 러시아 대통령실 크레믈궁은 “전혀 아는 바 없다”며 부인했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와 법원 재판에서 시시마린이 모든 것을 실토함에 따라 러시아군의 만행, 그리고 크레믈궁의 새빨간 거짓말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날 법정에는 피해자의 부인 등 유족도 참석했다. 부인은 죄수복 차림에 수갑이 채워진 시시마린이 교도관들에 이끌려 법정에 들어오는 순간 흐느껴 울었다. 남편이 죽임을 당할 때 그도 곁에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군인이 총으로 남편의 머리를 조준한 뒤 사격했다”고 진술해 명백히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 젊은 군인도 위에서 시켜 그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범죄는 용서할 수 없지요.” 부인이 BBC 기자에게 밝힌 심경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지금까지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로 추정되는 정황을 1만건 이상 입건해 이미 수사를 마쳤거나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전범 재판은 모든 가해자, 우크라이나에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지시하거나 방조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아주 단호한 신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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