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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말 청와대에서 1980년대 운동권 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4월 치러진 17대 총선 당선자를 초청해 만찬을 했는데 386 당선자 30여명이 이 노래를 선창했고 다른 참석자들도 따라 불렀다. 대통령과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과거의 고단했던 투쟁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으리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2월 광주 5·18묘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리는 노래다. 가사는 소설가 황석영이 노동운동가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와 지었고 당시 광주 대학가의 대표 가객 김종률씨가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짙은 서정성에다 비장미도 가득해 5·18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학가·노동계의 집회와 시위는 빠짐없이 이 노래로 시작해 이 노래로 끝났다.

 

김영삼정부가 1997년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이 노래가 기념식에서 제창됐지만 늘 진영 갈등의 불씨였다. 좌파·진보정권은 좋아했고 우파·보수정권은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식순에서 제창이 빠지자 5·18단체들과 유족의 반발로 기념식이 둘로 쪼개지기도 했다. 박근혜정부는 합창으로 바꾸는 꼼수를 부렸다.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부르지만 합창은 합창단이 부르고 참석자들은 불러도 되고 안 불러도 된다. 이러다 보니 보수정권의 대통령과 총리가 5·18행사에 참석했으나 합창 때 입을 꾹 다무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됐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은 당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 대신 이 곡을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나아가 1980년대부터 홍콩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전파돼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처장관 및 수석들,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오늘 5·18 기념식에 참석해 이 노래를 제창한다. 보수정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일을 밑거름 삼아 우리 사회가 밑도 끝도 없는 소모적인 이념 대립과 국론분열을 넘어 한층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길 바란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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