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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크리스마스’ 달성 200살 이팝나무 눈꽃 피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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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4 14:44:09 수정 : 2022-05-15 11: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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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교항리에 100∼200년 수령 이팝나무 군락지/함박눈 닮은 하얀꽃 만개 장관/ 올 한해 풍년 기원...코로나19도 “안녕∼”/“전국 노래자랑∼” 옥연지 송해공원 백세교 걸으며 장수 기원

 

대구 달성군 교항리 이팝나무숲

간밤에 함박눈 내렸나. 수백 년 세월 풍파를 견디고 어른 두 명이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게 자란 나무. 가지마다 싱그러운 초록 잎들 위로 탐스러운 눈송이 닮은 새하얀 꽃 수북하게 내려앉았다. 자연이 준 아름다운 선물, 대구 교항리 이팝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가자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은 듯 가슴이 설렌다.

 

교항리 이팝나무숲

 

#달성 이팝나무 숲에 ‘눈꽃’ 피다

 

4월 말이면 대구 명물 비슬산은 온통 연보랏빛 참꽃으로 물든다. 대구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른다.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진달래는 보통 3월 말쯤부터 볼 수 있지만 비슬산은 해발고도가 1084m로 꽤 높아 4월 말쯤 진달래가 절정을 이룬다. 산길을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진달래도 예쁘지만 높은 산을 온통 뒤덮은 참꽃 군락지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참꽃이 지고 나면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지는데 바로 이팝나무. 초록 잎을 덮으며 피는 하얀 꽃이 뚜렷한 색의 대조를 이뤄 온통 눈으로 뒤덮인 듯하다. 중부 이남에 자생하는 이팝나무는 5월쯤 나무 전체에 흰 꽃이 피고 가을엔 노란 단풍과 보랏빛 열매도 아름다워 정원, 공원을 꾸미고 가로수로도 많이 쓰인다. 덕분에 도심에서도 볼 수 있지만 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마을은 스케일이 다르다. 이팝나무 고목이 대규모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어서다.

 

교항리 이팝나무숲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멀리서 고급 향수 같은 이팝나무 꽃 은은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향기 따라 언덕에 오르자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한 풍경. 오솔길 양쪽으로 줄지어 선 수백 년 수령의 이팝나무마다 순수하고 예쁜 하얀 꽃이 눈꽃 활짝 피어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게 만든다. ‘5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거대한 이팝나무 앞 벤치에 앉은 연인들 풍경은 영화가 따로 없다.

 

‘다리목 마을’로 불리는 교항1리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구릉지인 1만5510㎡ 규모 세청숲에는 수령 100∼200년의 이팝나무 서른두 그루가 자라는데 대구·경북 지방에서 유일한 이팝나무 군락지다. 이팝나무 숲 꽃이 만개하면 풍년이 들고, 꽃이 별로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올해는 꽃이 엄청나게 폈으니 풍년은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물러가고 좋은 일만 펼쳐질 것 같다. 다리목 마을은 농업 기반 촌락으로 연탄이나 석유가 보급되기 전까지 주로 땔감에 의존했다. 그런데 점점 땔감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이팝나무 숲 나뭇가지들이 조금씩 훼손되자 숲을 해치는 사람에게는 쌀 한 말씩을 물리는 규약을 만들어 숲을 대대로 보호해 왔다고 한다.

 

교항리 이팝나무숲

가난한 효자의 애틋한 사연도 전해진다. 병들어 식사도 거의 못하고 누워만 지내던 노모가 어느 날 “흰쌀밥을 먹고 싶다”고 말하자 착한 아들은 너무 반가워 부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쌀독에는 쌀이 조금밖에 없었고 쌀밥이 모자라면 어머니는 자신의 밥을 아들에게 먼저 먹이려 할 것이 뻔했다. 궁리 끝에 아들은 어머니 밥그릇에는 쌀밥을 담고, 자신의 밥그릇에는 마당 큰 나무에서 하얀 꽃을 듬뿍 따 수북하게 담았다. 모자는 쌀밥과 꽃밥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고 마침 이곳을 지나던 임금이 사연을 듣고 큰 상을 내렸단다. 그래서 쌀밥을 뜻하는 ‘이밥나무‘로 불리다 이팝나무가 됐다는 얘기다.

 

옥연지 송해공원 송해 조형물

 

송해공원
송해공원

#송해공원 백세교 걸으며 장수 기원해 볼까

 

이팝나무 숲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옥연지로 달려간다. 공원 입구에 하양, 빨강, 노랑 튤립과 개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어 여행자를 반긴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연인, 동창들이 모였는지 수다 꽃을 피우는 중년 여인들, 너도나도 드넓은 호수와 알록달록한 꽃세상이 어우러지는 동화 같은 풍경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송해공원
백세정 가는 길

옥연지의 진짜 이름이 따로 있는데 바로 ‘송해공원’이다. 송해라니. “전국 노래자랑∼”하면 바로 떠오르는 국민MC, 그 송해 선생 맞다. 공원에 살아 있는 이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무슨 배경이 있을까. 1927년생으로 올해 95세인 송해 선생은 사실 황해도 재령이 고향. 6·25전쟁 때 혈혈단신으로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와 부산에 도착했는데, 배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원래 이름인 ‘송복희’를 버리고 ‘바다 해’(海) 자를 써서 송해로 새 출발 한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군 복무할 때 석옥이 여사와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달성은 제2의 고향이 됐다. 석 여사 고향이 바로 지금은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된 옥연지 자리. 송해 선생은 죽어서도 정신적인 고향에 묻히고 싶은 마음에 1983년 옥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묏자리를 마련했다. 2018년 작고한 석 여사는 이곳에 안장돼 지금도 고향마을이자 남편 이름을 얻은 옥연지와 함께한다. 달성군은 이런 인연을 기려 옥연지를 송해공원 테마로 꾸몄다.

 

백세정
백세교

 

옥연지 한가운데 운치 있게 솟아오른 백세정을 향해 물 위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백세정에 서자 왼쪽으로 물 위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 나간 백세교가 한눈에 보인다. 오른쪽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예쁜 빨간 풍차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그림 같다. 2016년 준공된 백세교는 ‘S자’ 형태로 태극 문양을 형상화했는데, 백세교를 한 번 걸으면 100세까지 살고 두 번 걸으면 100세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다니 힘을 내 걸어 본다.

 

송해공원 둘레길
송해공원 둘레길 풍차

65만7000㎡ 규모의 옥연지는 송해 둘레길, 전망쉼터 출렁다리, 대형 물레방아 등으로 꾸며져 천천히 머리 식히며 산책하기 좋다. 옥연지 둘레길은 3.5㎞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둘레길 서편에는 1㎞ 구간의 숲길 데크로드와 옥연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4곳이 설치됐다. 둘레길 중간에선 연리지를 만나는데 상수리나무와 고욤나무가 서로 붙어 한 몸이 된 모습이 사랑 가득한 송해 선생 부부 같다.

 

송해기념관 토끼 조형물
송해기념관 루프탑

옥연지 동쪽에 송해기념관도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기념관 앞에 책을 펼쳐 들고 있는 핑크색 커다란 토끼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토끼띠인 송해 선생이 좋아하는 색인 핑크색과, 큰 서당이 있어 ‘선비마을’로 불리던 마을 유래를 담아 이런 조형물을 만들었다. 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커피 한잔 마시며 느긋하게 옥연지와 백세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기념관을 나오면 빨간 풍차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온다. 대부분 백세교만 둘러보는데 연인들이 풍차를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으니 풍차길을 놓치지 말기를.

 

사문진 피아노 조형물
사문진 피아노 조형물

#사문진서 강바람 맞을까 막걸리 즐길까

 

달성군에는 우리나라 피아노 역사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여행지가 있는데 낙동강을 끼고 있는 화원읍 사문진이다. 이 나루터를 통해 1900년 3월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담 부부가 한국 최초의 피아노를 들여왔다. 조선 세종부터 성종까지 대일 무역의 중심지던 사문진에는 소금 등을 실어 나르는 배가 활발하게 오갔다고 한다.

 

사문진 주막
사문진 주막 송해 조형물과 연리지
사문진 산책로

2013년 사문진의 옛 주막촌이 복원되면서 요즘은 파전과 막걸리를 즐기는 술꾼들 명소가 됐다. 주막촌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5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이 나무 역시 연리지. 몸통은 떨어져 있지만 가지가 서로 붙어 버린 모습이 아주 신기하다. 이곳에서도 송해 선생을 만난다. 보부상으로 변신한 선생이 파전을 앞에 놓고 막걸리 한잔을 따르며 활짝 웃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대형 피아노 조형물이 설치된 광장에선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신나는 놀이터가 된다. 막걸리 한잔 기울이고 산책로를 걸으며 시원한 낙동강 바람을 즐기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대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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