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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대자연 앞에서 배우는 인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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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3 22:58:38 수정 : 2022-05-13 22: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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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으로 근대 시민사회가 탄생했고, 유럽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정신이 퍼져 나갔다. 예술가들은 급변하는 현실에서 소재를 취하고, 감정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창작에 의한 낭만주의를 열었다. 19세기 중엽을 지나 각 나라가 혼란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면서 예술도 격동하는 현실 세계 대신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회화의 또 다른 흐름인 낭만적 자연주의로 불리는 경향이다. 고전주의 풍경화가 자연에 입혀 온 이성적이며 인위적인 틀을 벗기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느낌을 담자는 것이다.

낭만적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영국의 윌리엄 터너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바다 풍경을 택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 같은 대자연의 장엄함과 숭고함을 나타냈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이 느끼는 한계나 자연에 대한 외경심도 암시하려 했다. 공포와 압박감을 주는 위협적인 자연과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켜 자연에 대한 공포감뿐만 아니라 경이로움도 일으킨다는 점이 그의 그림의 특징이다.

‘노예선’은 노예를 싣고 가다 죽은 사람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노예 상인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전경 오른쪽 아래 버려진 시체를 상어들이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한다. 거친 물결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도는 갈매기들의 모습은 이 장면을 더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 터너는 이 광경으로 노예 상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을 상징하려 했다.

험한 파도에 휩쓸리며 출렁이는 위태로운 배의 모습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실적인 인간의 탐욕이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갖게 될까 생각하게 한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휘감듯 몰아치는 소용돌이가 금방이라도 배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터너는 물체들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뜨리고, 빛과 색의 세계로 웅장하면서 신비롭게 펼쳐냈다. 그래서 바다 풍경이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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