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간호 정책 위해 법 필요”
의사단체 “의료법 통해 해결해야”
15일 간호법 규탄 궐기대회 예정
조무사단체도 반대… 진통 예고

제51회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 간호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대한간호사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해 간호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간호법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하며 제정이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단체 등이 간호법 제정을 강력 반대하고 있어 직역 간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단독으로 법안소위를 소집해 간호법안을 처리했다. 민주당 서정숙·김민석과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종합·수정한 것이다.
법안은 적정 노동시간의 확보와 일·가정 양립 지원, 처우 개선을 요구할 간호사의 권리를 명시했다. 간호사가 보건의료의 중요 담당자로 자발적으로 능력을 개발하도록 하는 책임도 부여했다. 간호인력지원센터 신설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가장 큰 쟁점이던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했다. 원안은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정의했다. 의사단체는 간호사가 의사의 면허 범위를 침범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간협은 간호사 처우 개선과 체계적인 간호정책 시행을 위해 간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 제정을 통해 숙련된 간호인력이 양성되면 국민의 건강 증진과 환자 안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격무에 시달리는데 처우는 낮다 보니 40대 이상 간호사 비율은 30%, 평균 근무기간은 7년5개월에 불과한 현실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근무환경이 더 열악해졌다고 호소한다.
신경림 간협 회장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말뿐인 코로나 영웅이라는 찬사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할 뿐”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전국적 의료기관 파업에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맞서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5일 ‘간호법 규탄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의협은 “간호법은 국민 건강을 위해하는 특정 직역에 대한 특혜이며,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 것”이라며 “간호법을 폐기하자는 뜻을 모으기 위해 궐기대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의협은 간호사만을 대변한 별도 법안을 만드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 이후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보건의료직역들도 개별법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간호사 처우와 복지 향상에는 동의하지만,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보건의료인 지원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의료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호조무사단체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보조인력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내고 있다.
여러 보건의료단체들이 얽히면서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진통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간호법 제정까지는 복지위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이들 단체 간 갈등이 직역이기주의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의료법이 미래 확대될 요양·돌봄 등의 영역까지 모두 포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그 대안이 간호법인지, 다른 방안이 있는지 국민 입장에서 충분한 숙의 기간을 가지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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