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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감정이 많은 건 나쁜 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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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1 07:30:00 수정 : 2022-05-10 17: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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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예스24에 엽편소설을 연재할 무렵이었다. 무엇을 쓸까, 하고 소설가 최은영은 책상 앞에서 두 손으로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었다. 불현 듯 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딸린 생각들이 떠올랐다. 친구 문제로 고심하고 스트레스를 받던, 친구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수 없었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한 여학생이 서성이고 있었다.

 

친구와 친구들의 그룹 안에 들어가는 것이 되게 중요하게 생각되고, 친구 관계에 예민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던 그때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무렵 주소 문제가 꼬이면서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아무도 없고, 자신은 친구들을 아무도 모르는데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잘 아는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던 여학생이. 반장의 추천으로 일찍 어른이 돼야 했던 열두 살 소녀 진희 이야기가 담긴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을 읽고 또 읽다가,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같은 문장들이 심장을 찔렸던 그 언저리의 기억들이.

 

그는 학창시절의 서툴렀던 경험과, 당시의 감정을 모티브로 가공하고 극화해서 써 보자라고 생각했다. 최 작가의 짧은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마음산책)의 표제작은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

 

작품은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서울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나’가 반에서 잘 나가는 친구 유나와 그녀의 그룹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나는 수학여행에서 술을 먹고 유나에게 불우한 가정사를 고백하지만, 내 이야기는 곧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다. 나는 유나에게 증오감을 느끼고 나서야 이전 자신의 감정이 열등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31쪽)

 

마음을 어루만지는 맑고 순한 서사와 그럼에도 폭력에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온 소설가 최은영이 일종의 엽편소설집을 들고 돌아왔다. 김세희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이번 소설집에 짧은소설 열세 편과 단편소설 한 편(「무급휴가」)을 담았다. 각 소설에는 자신의 기억 파편이 조금씩 녹아 있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낯선 해변에서 답없는 미래를 고민하던 기억(「데비 챙」), 목적지 없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던 기억(「한남동 옥상 수영장」), 떠난 고양이를 애도하던 기억(「임보 일기」, 「꿈결」, 「무급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수 없던 기억(「애쓰지 않아도」, 「숲의 끝」), 폭력적인 공익광고를 보던 기억(「손 편지」), 병아리를 키우던 기억(「안녕, 꾸꾸」), 고기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호시절」)....

 

최은영은 왜 눌리고 가려진 여리고 소중한 마음들이 일어나서 활보하는 짧은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그는 앞으로 어떤 소설 세계를 향해 나아갈까. 최 작가를 지난 6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의 대답은 신중하면서도 진실해, 무엇 하나 더하고 빼고 할 게 없었다.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에서 유나는 나의 비밀을 퍼뜨렸는데, 유나는 왜 그랬을까.

 

“저의 고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제 기준에선 해서는 안 될 행동과 말과 미숙한 면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인간들이어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행동하는 게 다 있었던 것 같다. 유나도 아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그러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

 

「숲의 끝」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핀란드에 들어가지 못한 ‘나’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그 동안 만나지 않아온 친구 지호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다. 열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서 핀란드에 간 나는 지호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한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쫓기듯 귀국해야 했던 나는 한국에 소중한 사람이 많이 있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졸업 여행에서 나는 호수 옆 숲속에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지호를 기다리지만, 지호는 오히려 내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화를 낸다.

 

―이 소설은 어떻게 쓰게 됐는지.

 

“코로나 팬데믹 전이던 2018년 7월쯤 핀란드에 놀러 갔는데(그는 이 대목에서, 전생 같네요, 라며 그 까마득함을 표현했다), 날씨가 조금 춥고 어두웠다. 한국과 너무 달랐다. 날씨가 왜 이럴까 해서 찾아봤더니, 핀란드는 여름은 없고 잠깐의 봄과 겨울, 더 심한 겨울이 있다고 하더라. 만약 이런 곳에서 한국에서 온 학생이 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설에서 나는 왜 지호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지호는 또 왜 졸업여행 때 내가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

 

“소설에서 나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고 싫으니까 그냥 허세를 떨었던 것 같다. 저를 포함해서 애들이 하는 솔직하지 못한 행동이었을 것 같다. 제가 길치여서 그런지 몰라도, 지호가 숲에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이 사실 다른 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호는 분명히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갔는데 내가 없으니까, 자신을 두고 가버렸구나, 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밑바탕에는 내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이 혼자 버려졌다는 느낌, 감정이 중첩돼서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데비 챙」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 종탑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취준생 남희와 홍콩에서 온 비행기 정비사 지망생 데비 챙의 만나고 엇갈리는 수채화 같은 이야기다. 남희는 이탈리아에서 데비 챙을 만나서 10일간 함께 여행을 다닌다. 남희는 인생의 목표가 분명치 않는 반면, 데비 챙은 인생의 목표가 분명했다. 남희는 마지못해 취직한 직장에서 계속 일을 하고, 정비사가 된 데비는 결혼했다가 아내가 사별한 뒤 한국을 찾는다.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 운이 좋았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잖아. 그게 어떤 건지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었잖아. 어릴 때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지.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 (52쪽)

 

―인간은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다, 는 데비의 말에 동의하나.

 

“어릴 때부터 사는 게 힘드니까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릴 때부터 슬펐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공부도 못하는 게 왜 태어났니? 생일이 되면 애들이 이런 노래도 부른다. 고통도 받고, 사랑 없는 체험도 하는 속에서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 순간순간 사랑 안에 있을 때, 제가 사랑을 주거나 받을 때 느껴지는 경험들 때문에 태어났구나, 싶더라. 제가 인간이 아니고 어떤 떠도는 형상이라면, 내가 지구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걸 못 느꼈을 테니까. 이런 것 때문에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말고는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죽으면 그냥 흙이니까.”

 

「손 편지」는 최근 5년간 점장을 했던 미나가 가계가 폐쇄되면서 이전 점장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다. 점장은 미나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챙겨주지만, 미나는 그때마다 각박하게 반응한다. 미나와 점장은 ‘지금 맞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라는 배려 없는 지하철역 공익광고를 피해서 통근한다. 미나는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할머니 모습에서 자신과 점장의 모습을 본다.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 봐요, 자꾸만 노력하려고 하고, 다가가려고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163쪽)

 

―이 작품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언젠가 울고 있는 아이 사진이 담긴 ‘지금 맞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라는 공익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광고를 만든 사람들이야 아이를 때리는 어른들이 광고를 보고서 아이를 때리지 말아야지, 하는 것을 의도했겠지만, 아이를 때리는 사람들에겐 그 정도의 양심이 없다. 너무 순진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그 광고를 보고서 자신들의 미래를 너무 어둡게 생각할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컨펌을 해서 그 광고가 올라갔을 텐데, 너무 무감각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어디엔가 적어놨는데, 어릴 때 맞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돼서 퇴근해서 집에 가려다가 지하철에 그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 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됐다.”

 

「한남동 옥상 수영장」은 친구에게 차인 유진이 일본어학원에서 만난 호연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남동 호텔 옥상 수영장을 찾아서 잃어버린 감정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유진은 자신의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써서 상처를 입은 것임을 깨닫는다. “마음이란 건 하도 걸어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았다. 예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아니라.”(104쪽)

 

―마음은 왜 얼굴이 아니라 발바닥 같다고 생각하는가.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걸어 다니며 발을 계속 사용한다. 마음 역시 우리가 계속해서 쓰는 것 같다. 너무 마음을 많이 쓰는데, 그러다 보면 마음에도 물집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쓰면서 살아야 하지만, 너무 심하게 마음을 쓰고 사용하면 마음도 아프고 진물이 흐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소설집 전체에 마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왜?

 

“글쎄요. 한국 사회가 사람이 가진 마음이라든지 상처라든지 그런 감정에 대해서 세심하게 돌아보는 그런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 왜 사소한 것 가지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라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는데, 감정이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좀 힘든 그런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무조건 효율적으로만 가야 된다는 사고방식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마음을 드러내서 말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다. 매일 얼굴을 보고 서로를 안다고 생각해도 마음을 감춰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은 곪게 된다. 우리 모두 마음이라는 것이 있고, 그건 되게 소중한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감정이 많은 건 나쁜 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거야, 하며 사회가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되게 소외돼 왔는데, 아니야 나쁜 감정은 없어, 그냥 존재할 뿐이고 나쁘지 않아, 하고 얘기하고 싶었다.”

 

―짧은소설 창작은 장편은 물론 단편소설과도 많이 달랐을 텐데.

 

“지난해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연락이 와서 예스24의 ‘채널예스’에 연재하자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쓰게 됐다. 처음에는 분량이 적으니까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 글의 호흡이 긴 편이어서 등장인물이 나오면 분량이 거의 끝나버려서 그것을 조절하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웃음) 순문학 작가로 늘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에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품을 쓸 때마다 최대한 깊게 써야 되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왔다.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엽편 소설은 아무도 본격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저조차도. 그래서 자유롭게 쓴 유일한 글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고 즐겁게 썼다.”

 

나도 이런 것을 쓰고 싶어! 중학교 때 소설책 등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소녀 최은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혼자서 처음 소설을 써봤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빙의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고, 즐거운 쾌감이 기억에 남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도 창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앉았다. 최은영 문학의 원점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에 소리 같은 것에 민감했다. 그래서 책 읽기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교사로,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외부와 단절이 됐고 집중도 잘 됐다. 심지어 책으로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책을 읽을 정도였다.

 

1984년 광명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직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은영은 2013년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어떻게 작가의 길에 들어선 건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예술가가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문학사에 오른 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게 되면서, 문학은 그냥 그들의 세상이고 저는 초대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학을 진지하게 대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작아졌다. 나는 절대 저쪽으로 갈 수 없어, 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계속 생각을 누르고 있다가 20대 후반이 되자, 거의 화산이 폭발하듯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터져 나왔다. 되게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제 업보인가 카르마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등단 이후 그는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등을 펴냈다. 그 사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소설 세계를 그려왔는지 들려 달라.

 

“저는 특별한 의도를 가지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창작을 해왔다. 무엇을 쓰는지도 모르고 쓰다가 첫 번째 소설집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이 작가는 관계를 중요시하고 관계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라는 리뷰가 많았다. 아, 나는 관계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관계에 관심이 많고, 특히 마음이 여린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이던 2019년 말, 최은영은 미국의 어느 작가 레지던스 방에 짐을 풀고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눈 쌓인 벌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서 고요함이 한없이 몰려왔다. 그때 문득 잊고 있었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니.

 

언젠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다가 에피소드 가운데 백정의 딸 부문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 옛날 백정의 신분으로 살았던 여자 아이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하면서 2017년 스케치했던 그 소녀가. 잊고 있던 백정 소녀를 상상하면서 사람이 무서우면서도 사람의 따뜻함을 그리워한 ‘삼천’이란 인물이. 이야기가 고구마 엮듯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그 즈음 글을 쓰지 못했던 그는 다시 쓰는 사람의 세계로 초대받았다.

 

장편소설 『밝은 밤』은 증조할머니 ‘삼천’으로부터 시작해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작품은 서른두 살 ‘지연’이 이혼한 뒤 서울을 떠나 바닷가 작은 마을 희령으로 내려간 뒤 외할머니와 우연히 재회하고 할머니를 통해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 할머니 삼천에서 시작된 모계 100년의 삶을 이해하면서 상처를 회복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거나 세계를 그리고 싶은가.

 

“저는 1984년 한국 사람으로, 한 여성으로 태어났다.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이대가 다른 사람들과도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저의 시대적, 세대적 정체성이나,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좀 들여다보면서 그 렌즈를 통해서 어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그때 은희경 선생의 소설을 읽었다. 시계 끈에 향수 냄새가 배었는데, 그 냄새를 맡으니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는 식의 장면을. 저는 은 선생을 기억할 때마다 항상 그 순간이 생각난다. 작가가 자신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인생에 딱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몇 살 때 최은영의 소설에 어떤 부분을 읽었던 게 생각난다, 라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기억되면 좋을 것 같다.”

 

―글쓰기의 전략이나 방법, 원칙이 있다면.

 

“나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글을 쓰지 않는다, 고 어떤 작가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 마음을 얘기해줬다는 생각이 들더라. 머리로 아는 것을 썼을 때 읽는 사람이 공감하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겠지, 라는 식의 얕은꾀로는 깊은 글을 쓸 수 없다. 인물에 대해 공감이 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른다면 쓰기가 힘들고, 쓰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떳떳하지 못하거나 더럽거나 부끄러운 것일 수 있지만, 마음이 좀 괴롭고 불편했어, 하는 것을, 진짜 자신의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작품 인물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때, 독자들도 훨씬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짜를 써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항상 안 써지지만, 안 써질 때와 더 안 써질 때, 더더 안 써질 때가 있다.(웃음) 진짜 안 써진다고 하면,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 만약 어렸을 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저는 작가 생활을 못했을 것 같다. 스마트폰은 정신을 분쇄기에다 갈아 넣는 것으로, 되게 작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면서 정신을 분쇄시키기 때문에 글쓰기에 되게 지장을 준다.”

 

―하루 일상이나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저도 밥을 먹는다. 운동도 갔다가 대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용증을 구입해서 대학 도서관에서 작업을 하는데, 집에서 멀기는 한데 집중이 가장 잘 되더라.”

 

이상하게도, 인터뷰를 하는 내내 건물 밖에서는 모양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한당처럼 끊임없이 건물의 창이며 기둥, 난간을 때렸고, 어마어마한 데시벨로 휘윙, 하는 소리를 쏘아 보내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인터뷰 내내 그 바람소리를 전혀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어마어마한 데시벨의 바람소리를 나중에 녹취를 풀려고 녹음기를 켰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됐다. 왜 그랬을까.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며 그의 표정에서 온통 눈물이 떨어지는 느낌에 휩싸였다.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에 푹, 젖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말 속에 담긴 그의 마음,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맑고 순한 서사 때문이었을까. 다음날, 마음은 괜히 불한당 같은 바람만 탓하고, 내력 없이 뒤늦게 오는 감각의 게으름만 꼬집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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