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크라이나의 ‘숨은 영웅’ 자원봉사자들 [뉴스+]

입력 : 2022-05-10 23:00:00 수정 : 2022-05-10 16:30:36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구출하려
자발적으로 전쟁터에 남은 ‘영웅’들
피란 도우며 매일 생명 구하고 있어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한 병원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부상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치료를 받고 있다. 도네츠크=AP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전쟁터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총을 들고 적을 죽이기보다, 폐허 속에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우크라이나의 ‘숨은 영웅’ 자원봉사자들은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전장에 남겨진 노약자를 매일 구출하는 이들

 

전황이 매일 급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는 미처 탈출하지 못한 병든 노인과 장애인들이 방치돼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8일(현지시간) 전했다. 외신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매일 수십 건의 구조작전을 펼치는 민간 자원봉사자들을 조명했다.

 

WP에 따르면 ‘세이브 우크라이나’(Save Ukraine)와 같은 단체들은 전장에 남아있는 노약자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서부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전선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24일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120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고, 최소 570만명이 이웃 국가로 피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건강한 젊은이들과 달리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는 창문을 통해 포탄이 떨어지고, 땅이 진동하는 상황에서도 대피소나 지하실로 숨지 못하고 있다. 일부 극도로 허약한 사람들은 자신이 앉아 지내던 의자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부 도네츠크주(州)의 볼로디미리우카와 같은 외딴 마을에서는 노인들이 언젠간 누군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채 몇 주를 보내기도 했다고 WP는 전했다.

9일(현지시간) 지난 3일 밤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직원이 사용가능한 자재를 찾고 있다. 르비우=연합뉴스

자원봉사자가 남겨진 노약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세이브 우크라이나의 활동가 ‘샤샤’는 “때로는 몇 시간을 운전해 돌아다녀도 구조 대상자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어떨 때는 입소문을 통해 구조 대상자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주 볼로디미리우카의 한 외딴 마을에서 몇 주 전 뇌졸중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걷지 못하는 72세 고령의 여성이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사샤는 “직전에 미사일 한 발이 집 주변을 스쳐 지나간 터라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샤샤의 들것에 실릴 때까지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함께 구조된 딸이 “여기서 너무 무서웠다”고 흐느끼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이들처럼 이 지역에서 구조된 노인들은 기차를 타고 서부지역으로 이동했다.

 

◆곳곳에 러시아 저격수…그곳에서 운행하는 피란버스

 

최근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 동부 소도시 이지움에서 탈출한 이들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증언했다고 BBC방송이 8일 보도했다. ‘엘레나’(52)라고 이름을 밝힌 이지움 주민은 러시아군이 마을을 점령한 이후 동네 유치원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엘레나는 BBC에 “러시아 점령군이 모든 것을 약탈했으며 심지어 사람들의 속옷까지 훔쳐 갔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차를 훔쳐 러시아군의 상징인 ‘Z’ 표식을 한 후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는 “러시아군들은 무장한 상태에서 종종 술에 취해 있었고, 기관총을 든 병사들은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장갑차를 몰았다”고 설명했다.

9일(현지시간) 지난 3일 밤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자동차 정비소. 르비우=연합뉴스

그들을 구원한 건 피란버스였다. 엘레나는 2개월을 유치원 지하실에서 살다 함께 생활하던 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피란길에 올랐다. 그는 “길거리에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며 “우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시신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틀에 걸쳐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폴타바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러시아 검문소를 통과했으며, 그때마다 러시아로 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지움 시의회 의원인 막심 스트레르니크는 “도시의 80%가 파괴됐지만 아직 1만∼1만5000명의 시민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곳에는 물과 전기, 연료, 난방이 없고 하수처리 시설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BBC에 전했다. 그는 “도시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는지 추측할 수조차 없다. 의료기관이나 장례시설도 없고 사망자는 집 근처나 도시공원에 묻혔다”며 “이것은 끔찍한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BBC는 최근 휴대전화마저 잘 터지지 않는 이지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휴대폰이 연결될 때마다 주민들에게 피란버스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약 200명을 대피시켰다고 전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런 구조 작업은 매우 위험하다”며 “지난주에는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저격수가 쏜 총에 3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나선 수많은 자원봉사자

 

이처럼 전투가 벌어지는 도시를 찾아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피란버스 운전 등 현장에는 자원봉사를 자처한 사람들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10일 러시아군의 집중 공세가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주민들이 서둘러 대피할 수 있도록 피란버스 운전을 돕겠다는 국민의 자원봉사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피란민들이 자포리자 피란민 센터에 도착해 버스에 앉아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자포리자=AP뉴시스

도네츠크주에서 주민 대피를 돕고 있는 구호단체 ‘다 잘 될 거예요’를 이끄는 유로슬라프 보이코는 NYT에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다음날부터 주민 대피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운전자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이코는 “참가 희망자 수는 매일 늘고 있다”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온 평범한 사람들로, 그저 돕고 싶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자원봉사단은 시내버스와 개인 밴 등 400대 이상의 차량과 이를 운행하는 운전사 100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주민들의 피란을 돕기 위해 도네츠크주 안팎을 오간다. 승차 예약을 원하는 피란민은 보안상 자원봉사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야 하고 집결 장소 등에 대한 안내는 출발 2시간 이내에 이뤄진다. 혹시 정보가 새 러시아군이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현지 당국도 버스 노선이나 일정표를 출발 시각보다 너무 일찍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싸우는 아버지를 위해 직접 지원에 나서게 된 사연이 지난달 21일 CNN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테티아나 포우델(31)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 음악 스트리밍 업체의 변호사로 일하던 중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의 부사령관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휴직계를 내고 폴란드로 갔다. 포우델은 1만3000달러(약 1610만원)를 모아 전투화 100켤레를 마련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지인이나 자원봉사 단체 등을 통해 돈을 충당할 수 있었다”며 “너무 감사한 분들”이라고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직접 지원 현장에 나서 힘을 보태고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민간인에게 의료물품을 조달하는 한 미국 퇴역군인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수천 명은 있다”고 했다. CNN은 포우델과 서방 관리를 인용해 일부 사례에서는 시민들의 지원이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