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칠처럼 국민만 보고 정치할 생각입니다.”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올해 1월 6일 아침 서울지하철 여의도역으로 출근길 인사를 나서면서 측근들에게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로서 전쟁을 자유 진영의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롤모델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감동을 받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자신이 직접 쓴 처칠 전기 한국어판을 윤 대통령한테 취임 기념 선물로 보냈다. 앞으로 윤석열정부 5년 내내 정가와 학계에서 처칠이 뜨거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날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윤 대통령을 예방해 존슨 총리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저서 ‘처칠 팩터’를 선물하는 사진이 게시돼 있다.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영국 정부가 특사로 보낸 아만다 밀링 외교부 아시아·중동 담당 차관도 함께했다. 사진 속 윤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책 표지를 넘겨보고 있다.
국내에는 2018년 번역·출간된 이 책은 존슨 총리가 런던시장(2008∼2016)으로 재직하던 기간 펴냈다. ‘처칠 숭배자’로 알려진 존슨 총리가 처칠의 일대기를 재구성한 것인데, 한마디로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전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란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존슨 총리는 기자 출신답게 상당한 수준의 문장력을 자랑한다.
윤 대통령은 국내에서 2018년 개봉한 영화 ‘다키스트아워’를 감명깊게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대전 당시 처칠의 고뇌를 다룬 이 영화는 독일과 싸울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처칠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 생각을 경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록 이는 허구의 내용이지만 “국민만 보고 정치하겠다”는 윤 대통령 발언은 바로 이 대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대선 운동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처칠 얘기를 자주 꺼냈다. 당시 선거캠프 관계자는 “처칠은 원칙과 신념, 그리고 대국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도자”라는 말로 윤 대통령이 왜 처칠을 존경하는지 설명한 바 있다.
영국은 6·25전쟁 당시 연인원 약 5만6000명의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시켜 한국을 도왔다. 이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6·25전쟁에서 영국군 1000명 이상이 전사했는데 이 또한 미국 다음으로 큰 인명피해 규모다.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특히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이 점을 반영하듯 지난해 유엔군사령부의 부사령관에 사상 처음으로 영국 육군 소속 앤드루 해리슨 중장이 임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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