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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취임과 함께 막 내리는 ‘청와대 시대’… 되돌아본 74년의 굴곡 [뉴스+]

입력 : 2022-05-09 17:00:00 수정 : 2022-05-10 07: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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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작으로 12명 대통령 거쳐
北 주요 타깃… 철통 보안으로 ‘구중궁궐’ 비판
YS·盧·文 집무실 이전 추진…尹 용산시대 정착할까
청와대.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10일 취임과 함께 ‘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린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공간이자 청와대를 상징하는 푸른 기와집인 본관은 기능을 상실하고, 외국 정상들과 만찬 장소로 쓰이는 상춘재, 최고의 정원으로 불리는 녹지원 등과 함께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8일 청와대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마지막 밤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사용한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이 남게 됐다. 문 대통령은 9일 오후 6시 업무를 마친 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청와대를 떠난다.

 

그간 청와대는 1948년 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작으로 12명의 대통령이 거쳐 갔다. 청와대는 김신조 사건 등 북한의 주요 타깃이 됐고, 철통 보안 속에 여러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기려고 했을 만큼 ‘구중궁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 개방을 하루 앞두고 74년 역사의 굴곡을 되짚어봤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이름을 둘러싼 사연들

 

청와대는 오랜 시간 역사의 주요 무대였다. 청와대는 고려 시대 설치된 별경(別京) 중 하나인 남경(南京)에 궁궐이 있던 자리다. 조선 시대 들어와서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쓰이면서 각종 행사와 과거 시험을 보는 장소로 사용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총독 관사가 들어서는 아픔을 겪었고,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그 자리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집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무대는 당시 인근 일대를 부르던 옛말에서 따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한 지난 3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 사전환담장에 문 대통령의 초상화가 역대 대통령 초상화와 나란히 걸려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라는 명칭이 사용된 건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후 취임한 윤 대통령은 이승만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집무실의 이름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꿨다.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로 경무대라는 이름이 부패의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소속이었던 김영상씨가 두 가지 이름을 제안했는데, 그 중 하나는 ‘화령대’이고 다른 하나가 ‘청와대’였다. 당시 윤 대통령은 미국 백악관(White House)을 본뜬 청와대(Blue House)를 집무실 이름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청와대의 이름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청와대의 이름을 황금빛을 의미하는 황와대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이름이 바뀔 우려가 있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의 비서실의 이름도 진보·보수 정부에 따라 달라졌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증·개축한 비서동 건물 ‘여민관(與民館)’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민관(爲民館)’으로 바뀌었다. 여민관은 국민과 기쁨·슬픔을 함께 하는 곳이라는 뜻인 ‘여민고락’에서 따온 이름이고 위민관은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철학이 반영된 작명이다.

 

박근혜 정부까지 위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여민관으로 바뀌었다.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은 청와대가 주체가 되고 국민이 객체가 되는 개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건물 이름이지만 정권의 철학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였다.

 

사진=뉴스1

◆벚꽃 명소로 개방됐던 靑, 김신조 사건 이후 개방 중단

 

완전 개방은 아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들은 수박 겉 핥기 식이나마 청와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벚꽃 개화 시기가 되면 2∼3일간 경무대 일부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당시 공원이나 유원지 등 봄나들이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서울에서는 창경원과 경무대 정도가 있었다. 이런 기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청와대 개방은 장기간 중단됐고 국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당시 경호를 이유로 청와대 앞길을 비롯한 주변 도로와 인왕산과 북악산 역시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로 불리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과의 거리가 멀어진 탓에 대통령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1989년 3월 개정된 집회·시위법에서 경호를 이유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의 집회를 금지했고 그 이상의 지역도 경찰은 집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에 광화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지켜봤다는 일화도 있다. 그간 청와대는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졌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법원이 청와대 100m 앞인 효자동 치안센터까지 집회와 행진을 허락한 것이 윤 대통령 이후 시위대가 청와대에 가장 가까이 간 사례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9일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김영삼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광화문으로 집무실 이전 추진

 

그동안 많은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추진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집무 공약을 내걸었지만 경호와 비용 등의 문제로 중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옮기겠다고 공약했지만 2004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집무실 이전이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광화문 시대’를 강조하며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지만 경호의 문제 등으로 인해 중단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후보 시절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등 대다수 대통령이 ‘광화문 이전’을 약속했었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애초에 약속했던 광화문이 아닌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탈 청와대를 실천했지만, ‘졸속 이전’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향후 교통 문제 보안 우려를 불식하고, 용산시대를 정착시키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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