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고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부모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비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자녀들의 ‘허위 스펙’ 문제 등이 연이어 논란이 되자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지난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 많은 천재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2000년대 초 대학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갑자기 고교에서 논문을 쓰는 천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천재들이 성장해 학계를 이끈다면 우리 학문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학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아울러 서울대에서 가르쳐온 경험을 토대로 “이전 세대의 학생과 비교해 ‘천재답다’고 느낀 이는 단 1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어떤 학부모로부터 고교생인 자식이 ‘경제학원론’을 저술했으니 감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었다”면서 “일개 고교생이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저술했다니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나와 이전 세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고교 시절은커녕 대학생 때도 외국 저널에 논문 1편 실어보지 못했다”며 “논문이 ‘스펙 쌓기’ 수단으로 변질했다”고 비판했다.
계속해서 “고교와 대학 시절 논문 1편 써낸 적 없는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로 성장했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2000년대 초 새 대입 제도로 도입된 수시 전형을 지목했다.
그는 “과거 새 입시제도 도입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강력히 지적했으나,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며 “결국 고교생들이 논문을 썼다고 나서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현재는 논문 집필을 ‘대입 스펙’으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하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고교 때 논문을 쓰는 천재가 전혀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에서 고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는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며 “어린 학생이 스펙 쌓기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에 시달려 건전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늘 말하지만 그런 쓸모없는 짓에 매달리게 하지 말고 아예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인 일이 아닐까”라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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