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故 강수연이 7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봉준호 감독이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8일 봉준호 감독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강수연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날 낮 12시쯤 빈소를 나선 그는 “너무 실감이 안 난다”며 “몇 달 전에 뵀었는데 실감이 안 나가지고…영정도 보면 영화 촬영 소품 같고”라며 애통한 심정을 밝혔다.
앞서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5시40분쯤 강남지역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 이에 해당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공동으로 대응해 강수연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신고자는 가족으로 파악됐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강수연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7일 오후 3시쯤 별세했다.
한편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나이 네 살 때 아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배우이자 문화행정가로 활동하며 반세기 넘게 한국영화와 함께 했다.
아역 시절 ‘똘똘이의 모험’(1971) 등에 출연하며 동양방송(TBC) 전속 배우로 연기한 그는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 등으로 하이틴 스타로 성장했다.
고교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은 그는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스물한 살 때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 칭호를 었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배우는 고인이 최초였다.
1990년대에도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길’(1992), ‘그대 안의 블루’(1993) 등 흥행작을 냈다. 이 영화들로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후 연기 활동을 줄이는 대신 문화행정가로 변신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수년 동안 계속된 갈등과 파행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사퇴했다.
지난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넷플릭스 제작 ‘정이’는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우석·임권택·정진영 감독,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 배우 등이 고문을 맡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다. 조문은 8일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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