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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해변 갈까 아찔한 바다 위 걸어볼까… ‘화마’이긴 동해의 봄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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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8 11:40:29 수정 : 2022-05-08 11: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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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이긴 동해의 봄/자그락 달그락 한섬감성바닷길 바람, 파도, 몽돌의 연주 들으며 힐링/아찔하게 즐기는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스카이워크

한섬 몽돌해변

달그락, 달그락, 차르르르∼. 몽돌이 굴러간다.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질 때마다 서로 부대끼며 구르고 또 구르는 돌멩이. 억겁 세월 자신을 아낌없이 깎고 또 깎아 모서리 하나 없는 완벽한 곡면만 남겼다. 동해 한섬 감성바닷길 몽돌해변에 앉아 눈을 감는다. 파도와 바람이 몽돌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콘서트. 잠 안 올 때 무한반복으로 듣고 싶은 화음은 마음에 고요한 평화를 안긴다.

묵호항

◆화마 이긴 묵호항·논골담길에 움트는 생명력

 

시커멓게 타버린 산등성이. 전소돼 앙상한 뼈대만 남은 건물. 요즘 떠오르는 연인들의 여행지 강원 동해시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 전망대에 서자 지난 3월 동해안 일대를 집어삼킨 산불 피해 흔적이 역력하다. 묵호항 바로 뒷산인 초록봉까지 산불 피해를 당했다니 끔찍하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산림 2700여㏊가 사라졌고 주택 밀집지역 인근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110여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묵호항 언덕 알록달록한 집들 사이로 자리 잡은 연리지 카페는 폭격을 당한 듯 골격만 남아 산불 피해를 생생하게 전한다. 산불이 묵호항 인근까지 번지면서 마을 주민 모두 대피할 정도로 한때 큰 위기가 닥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름다운 묵호항 풍경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동네 논골담길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묵호등대

화마를 이긴 묵호항엔 이제 많은 배들이 오가며 활기가 넘친다. 한여름 밤에는 묵호항을 오가는 오징어잡이배의 분주한 모습과 불빛이 낭만적인 야경을 선사해 많은 동해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 바로 묵호등대다. 해발고도 67m에 설치된 묵호등대는 논골담길의 상징.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 하얀 등대와 발아래로 펼쳐지는 묵호항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꽤 낭만적이다.

바람의 언덕 카페 인형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 카페 인형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논골담길은 많이 달라졌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마다 예쁜 카페와 펜션이 들어섰고, 많은 집들이 새 단장을 마쳐 골목은 동화 속 풍경으로 변신 중이다. 논골1·2길로 들어선 뒤 ‘대왕문어’ 벽화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자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파란색 지붕과 하얀색 담벼락으로 꾸민, 전망 끝내주는 ‘바람의 언덕’ 카페와 펜션을 만난다. 난간에 놓인 자전거 타는 연인들 인형, 꽃다발을 뒤에 감춘 남자와 그의 목을 껴안으며 사랑스럽게 포옹하는 여자 인형 덕분에 낭만을 더한다. 

논골담길 나포리다방
논골담길

길은 논골카페와 바람의 언덕 전망대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묵호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포리 다방 앞 작은 계단은 이미 연인이 차지했다.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빈티지한 카페 풍경 덕분에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곳. 등대오름길도 인기 있는 코스다. ‘똥 누는 아이’ 조각과 논골댁을 지나면 전망 좋은 펜션 ‘묵호의 향기’를 만나고,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주인공 은상이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살던 아담한 은상이네 집도 등장한다. 수많은 벽화마다 마을 주민 일상과 옛 추억을 담아 걷는 재미가 있다.

해랑전망대
해랑전망대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스카이워크 아찔하게 즐겨볼까

 

논골담길을 내려서면 길은 묵호수변공원 도째비골 해랑전망대로 안내한다. 지난해 6월 완공됐으니 비교적 ‘신상’ 여행지. 하늘에서 보면 도깨비방망이 모양인 해랑전망대는 바다 위로 85m나 뻗어나간 아찔한 해상도보교량이다. 바닥을 유리와 구멍이 숭숭 뚫린 메시(mesh) 구조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무섭다. 도깨비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파란색 진입 터널을 지나 유리바닥 위에 섰다. 거대한 너울성 파도가 발밑 갯바위를 사정없이 때려 하얀 포말을 만들며 끊임없이 훑고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서늘하다. 전망대 끝까지 가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맘껏 즐길 수 있다. 

해랑전망대
해랑전망대

뒤를 돌아보면 언덕 위에 아찔한 또 하나의 전망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의 스카이워크가 우뚝 서 있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 묵호항에 왜 도깨비가 나타났을까. 사실 이곳은 한국전쟁 후 가난한 이들이 몰려 살던 달동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제비집처럼 작은 집들이 위태로운 경사로에 다닥다닥 생겨났단다. 그걸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또 제비”라고 불렀는데 자연스럽게 발음이 비슷한 도째비가 골짜기 이름이 됐다. 캄캄한 밤에 비가 내릴 때 언덕 위에 작은 집들이 내뿜는 푸르스름한 전등빛이 도깨비불처럼 보여 도째비골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입구
도깨비 방망이 조형물
스카이 자전거

스카이워크는 높이 35m의 하늘 산책로. 연두색 도깨비방망이 위에 펼쳐진 스카이워크는 아래서 보니 뱀이 꿈틀 대는 듯, 요상하면서도 높이 때문에 현기증이 난다. 가파른 언덕길 중간에 파란도깨비가 등장하고 좀 더 오르면 눈과 뾰족한 이빨 2개가 달린 초록 주먹이 노란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있다. 엄마들이 아이들 귀여운 사진을 찍느라 바빠지는 시간.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도째비란 이름과 달리 골짜기는 온통 꽃대궐이다. 분홍과 하양 꽃잔디가 지천으로 피었고 황매화까지 펼쳐져 화사한 봄 풍경을 완성한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도째비뿔 전망대
슈퍼트리

스카이워크 맨 끝 하늘전망대는 영원한 약속을 의미하는 쌍가락지 조형물과 도깨비 뿔을 형상화한 파란 ‘도째비 불’로 꾸며졌다. 하늘과 맞닿을 듯, 제법 높이가 있는 데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유리바닥이라 간담이 서늘하다. 그래도 남자들은 여친 인생샷을 만드느라 바쁘다. 스카이워크 중간에 하늘 위로 높게 솟은 봉오리 모양의 ‘슈퍼트리’가 인상적. 왕버들을 모티브로 제작한 ‘도깨비나무’로 생명력과 소망을 기원하는 조형물이다. 해랑전망대 가운데도 활짝 핀 노란 꽃 조형물이 있는데 슈퍼트리가 도깨비방망이를 통해 만개했다는 스토리를 담았단다. 여기서 보니 해랑전망대는 영락없는 도깨비 방망이다.

스카이워크에서 본 해랑전망대
한섬해변 리드미컬 게이트

#몽돌처럼 인생도 사랑도 둥글둥글해지길

 

해랑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바닷길을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동해선 철길을 따라 펼쳐진 한섬해변을 만난다. 북쪽 한섬과 남쪽 감추산 사이에 들어선 해변은 아담하면서 호젓해 머리를 식히며 천천히 걷기 좋다. 특히 울창한 솔숲과 쪽빛 바다가 ‘밀당’하는 한섬감성바닷길이 인기. 감추사 육교∼한섬∼고불개∼가세마을을 잇는 산책로는 2.2㎞에 달하는 ‘풍경 맛집’이다. 동해선 철도를 가로지르는 감추사 육교는 기차가 지날 때 이색적인 장면을 얻을 수 있는 포토 명소. 육교를 건너 한섬해변에 내러서자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100m가량 이어지는 나무 데크 위에 설치된 독특한 조형물은 ‘리드미컬 게이트’. 사각 기둥들이 조금씩 각도를 틀며 터널을 만들었는데, 밤에는 LED 조명이 빛나는 낭만적인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제임스본드 섬
한섬해변

해변을 지나 다시 산책로를 오르면 천혜의 절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특히 저 멀리 감추산 절벽 아래 따로 떨어져 길쭉하게 솟아 오른 하대암이 기묘하다. 생김새 때문에 촛대바위로 불리는데, 제임스 본드 주연의 영화 ‘007 시리즈’ 촬영지인 태국 푸껫 팡응아만 바위를 닮은 것으로 소문나 ‘제임스 본드 섬’으로 불린다. 사실 추암촛대바위처럼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해식 돌기둥 ‘시 스택’(sea stack)이다. 한섬감성바닷길을 따라 이런 시 스택과 파도의 침식이 만든 항아리 모양 구멍인 ‘마린 포트홀’이 등장해 천혜의 비경을 선사한다.

한섬 몽돌해변
한섬 몽돌해변
한섬 몽돌해변 몽돌

운치 있는 소나무가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경을 즐기는 관해정을 지나면 한섬의 숨은 절경, 한섬몽돌해변을 만난다.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기에 놓치기 쉬운데, 한섬감성바닷길 여행은 이곳이 으뜸이다. 좌우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담한 몽돌해변에는 이미 젊은 연인이 다정하게 앉아 파도와 알록달록 예쁜 몽돌이 들려주는 소리를 즐기며 사랑을 속삭인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사람마저 자연 속에 녹아 드는 매우 아름다운 풍경. 눈을 감자 몽돌이 파도를 따라 구르며 내 귀에 속삭인다. 나처럼 둥글게, 그렇게 살아가라고. 


동해=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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