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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속 꽃 피운 ‘한민족 생명력’ 모든 이민자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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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5 21:08:30 수정 : 2022-05-05 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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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시즌1 마무리

4대 걸친 한국 이민가정 대서사
현재 진행형인 아픈 역사 조명해

쌀·김치 등 민족의 情과 恨 묘사
“몇년來 최고 작품” 외신도 극찬
지난달 29일 시즌1 마침표를 찍은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을 중심으로 시대 아픔을 그려냈다. 작품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이방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며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지난 4월 29일 시즌1 마침표를 찍은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을 중심으로 시대 아픔을 그려냈다. 작품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이방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며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소설 ‘파친코’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드라마 ‘파친코’는 이렇게 8부작을 마무리한다. “그들은 견뎌냈다.”(They endured)

 

지난달 29일 첫 번째 시즌 막을 내린 애플TV플러스 ‘파친코’가 일으킨 감동의 파고가 높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생을 살아낸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우리나라 이민가정의 대서사를 다뤘다.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 등 제작진 다수 역시 재미교포다. 우리나라와 서구문화 양쪽에 선 경계인 시선으로 바라본 선자네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압축한 민족사이자 국적과 민족, 시대를 넘어 모든 이민 사회의 아픈 현실을 반영한 ‘모두의 이야기’가 됐다.

 

“역사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흔치 않은 작품”(미국 타임) “쉽게 볼 수 없는 보석”(미국 포브스),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영국 BBC), “올해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중 최고”(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 등 외신들은 이 작품에 대찬사를 쏟아냈다.

 

◆우리 쌀, 우리 김치

 

쌀과 김치는 ‘파친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시집 간 우리 딸내미, 신랑 따라 일본 갑니다. 우리 땅 쌀 맛이라도 봬주고 싶습니다.” 딸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게 된 선자 엄마 양진은 일본 관리 눈을 피해 어렵게 구한 쌀로 밥을 짓는다. 양진이 밥을 짓는 모습은 2분 동안 찬찬히 담긴다. 몇 번이나 정성스레 헹구고, 가마솥에 안쳐 밥그릇에 가득 쌀밥을 퍼 담는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쌀밥 냄새는 애끓는 모성이자 한국의 정(情)이며, 고국을 잃은 한(恨)이다. 처음 보는 동서 선자를 위해 없는 살림에 마련한 형님 경희의 쌀밥이나 타국에서 만난 손님에 내미는 쌀밥도 마찬가지로 읽힌다.

 

오사카로 건너온 선자는 남편이 일본 경찰에 잡혀갔음에도 주저앉는 대신 시장에 나가 김치를 판다. 일본인들은 코를 감싸쥐며 면박을 주지만 선자는 힘을 내 외친다. “김치 사세요, 신선한 김치. 우리 어무이한테 배운 깁니다. 우리나라 김치입니다.”

 

이처럼 우리 쌀과 우리 김치는 이민자로 살아가는 작품 속 인물들이 품고 있는 정체성이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힘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선자, 양진, 경희

 

선자는 일본에서 겪는 핍박과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제안에도 존엄을 지키고 떳떳한 삶을 산다는 신념으로 이방인으로서 삶을 선택한다. 선자는 손자 솔로몬에게 “내가 선택한 기다. 오래전이지만 말만 하면 시상(세상) 다 준다카는 거 내가 싫다 한 기라”라며 “잘 사는 거보다 우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기 더 중한 기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파친코’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여성들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는 선자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를 특별한 영웅으로 비치는 대신 가정과 삶을 지켜낸 평범한 우리 주변 인물로 그려낸다. 양진 역시 박복한 삶 속에서 억척스레 살아남아 가족을 지킨다. 가난한 삶이지만 이웃에게 저녁상을 내주고, 의원도 손쓸 수 없다는 선자 남편 이삭을 간병해 끝내 살려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 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손윗동서 경희는 매일 두려움에 떨면서도 선자를 돌보며 곁을 지킨다. 이밖에 일본 핍박을 피해 돼지를 키우며 살아가는 노파, 죽음을 각오하고 판소리를 절창하는 오페라 가수 등 여성들의 강인함과 연대는 피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지금, 우리 이야기

 

‘파친코’는 조선에서 벌어졌던 수탈과 강제노역뿐 아니라 관동대지진 학살 등 일본 본토에서 핍박받던 조선인들 모습이 담겼다. 드라마는 이 비극적 시대를 자극적, 폭력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겪은 설움과 아픔을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을 통해 더 크고 선명히 드러낸다.

 

특히 수모와 모멸의 시대는 세대를 거듭해 현재로 이어진다. 크게 1920년대와 1980년대, 두 개의 시간대를 무시로 오가는 편집은 과거와 현재를 포갬으로써 60년 세월에도 아픈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대표적 인물이 솔로몬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가는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은 채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닌 인물이지만 차별을 경험하며 민족 역사를 느낀다. 땅을 팔지 않는 재일동포 할머니를 설득하려던 솔로몬은 할머니의 한 맺힌 사연에 마지막 순간 해고까지 감수하며 계약서 사인을 만류하기도 한다.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젊은 선자 이야기로 시즌1을 마무리한 이 작품은 마지막에는 실제 일본에서 살아가는 여러 ‘선자들’ 인터뷰 영상을 보여준다. ‘파친코’가 시대극이면서도 현대극이고, 픽션이자 논픽션이기도 한 이유다. 앞서 각본가이자 총괄프로듀서로 활약한 한국계 미국인 수 휴는 “이야기의 근간에는 실제로 그 시대를 겪은 1세대 자이니치(재일동포)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포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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