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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사태, 신보호무역주의 촉발… 지구촌 식량공급 비상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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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8 11:00:00 수정 : 2022-05-08 1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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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3억여명 절체절명 위기

해바라기유·밀·귀리 등 생산국 수출 중단
우크라사태 발발 후 35개국서 수출 통제
보호무역주의 강화, 자유무역 퇴보 의미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 159.3… 사상 최고

세계은행, 2022년 식량 가격 23% 폭등 전망
식량가격 1% 오를 때마다 1000만명 고통
IMF 등 식량안보위협 대처 각국 협조 촉구
캐나다, 곡물수출 성장 투자금 지원 등 응답
로스토프 지방의 농장에서 작업 중인 트랙터에서 옥수수 씨가 뿌려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 농산물 수출을 금지했다. 로스토프=로이터

식탁에서 ‘식량’이 사라지고 있다. 해바라기유, 밀, 귀리, 버터 등을 생산하는 주요 수출국들이 저마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쇄국 정책에 들어갔다. 이 여파로 세계 식량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빈곤국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례적 식량 쇄국정책… 신보호무역주의 창궐

감염병 유행과 전쟁에 이어 신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식량 부족이 새로운 국제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6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시작된 뒤 주요 농산품인 해바라기 기름, 밀, 귀리 등의 수출을 제한했다. 러시아도 주생산품인 설탕, 곡물과 비료 등의 해외 판매를 금지했다. 세계 팜유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도 수출통제 대열에 합류했다. 낙농업이 발달한 터키는 버터, 쇠고기, 양고기, 염소, 옥수수와 식물성 기름의 수출을 중단했다.

사이먼 이브넷 스위스 생갈렌대 국제무역·통상 교수는 올해 초부터 세계 각국이 식품과 비료 등 47건의 수출을 규제했다고 밝혔다. 이 중 43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작됐다. 이브넷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식량과 비료의 수출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매우 적었다”며 “침공 후 수출 제한이 엄청난 상승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각국이 새로운 수출 장벽을 세우는 신보호무역주의 흐름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WB)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식량 수출통제를 선언한 나라가 35개국에 달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비영리기구 세계무역경보(GTA)도 식량·비료 수출을 제한한 정책이 36건에 이른다고 했다.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식료품 가게 선반의 물품이 사라질 수 있는 공황 사태를 경험했다. 특히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조치는 그동안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자유무역주의의 퇴보를 의미한다.

FAO 자료를 분석하면 지난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59.3을 기록해 전달보다 12.6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1990년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고치다.

유엔이 95개 식품의 국제가격동향을 조사해 매월 발표하는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치가 기준치(100)가 된다. 곡물, 유지(식용유)류, 육류, 유제품, 설탕 5개 품목군 지수도 급등하고 있다. 특히 유지류는 3월 248.60을 기록해 기준치보다 2.5배 가까이 급등했고, 곡물도 170.1로 전달보다 24.8포인트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수립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이 나눠주는 구호품을 받으려고 몰려 있다. 마리우폴=AP연합뉴스

WB는 지난달 말 공개한 원자재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올해 세계 식량 가격이 22.9%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농업은 대표적인 수요 비탄력 산업으로 한번 가격이 오르면 최소 2년, 길면 3년까지 높은 가격이 유지된다는 분석도 있다.

◆식량 문제,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큰 부담

지난달 WB, 국제통화기금(IMF),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무역기구(WTO) 총재는 공동 성명을 내고 식량안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구촌의 협조를 촉구했다. 이들은 긴급 식량 공급과 가계 및 국가에 대한 재정지원 배치, 자유무역 촉진,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과 영양 안보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성명에서 “필수품의 급격한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은 전 세계 가계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키고 수백만 명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식량 가격이 1% 인상될 때마다 1000만명의 사람이 극심한 빈곤에 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긴급 식량 공급, 재정지원, 농산물 생산량 증대, 무역 개방 등의 조정된 조치를 통해 취약한 국가들을 시급히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스리랑카 함반토타의 한 농부가 논에서 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부 국가들은 이에 응답하며 곳간의 빗장을 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3일 세계 시장에서 곡물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가 곡물수출 부문의 성장을 위해 투자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마리-끌로드 비보 캐나다 농업·농식품부 장관은 “캐나다의 곡물 생산업계는 전 세계의 식량 안보와 가장 중요한 관련을 맺고 있다”며 “앞으로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는 곡물 생산업계의 3개 단체에 총 350만달러(44억1525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손광균 유엔 WFP 한국사무소 공보관은 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계적 식량위기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세계 식량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당초 세계 인구 중 2억7600만명 정도가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81개국에서 4700만명이 추가로 극심한 식량 위기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량 위기에 따른 봉쇄정책으로 물류비용 자체가 크게 상승했다”며 “인도주의적인 목적에 의한 수출과 수입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해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경제에 에너지 부족보다 식량난이 더 큰 고통”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에너지 부족보다 식량 공급 위기가 세계경제에 더 큰 고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 ‘식품, 비료 그리고 미래’(지난달 26일)에서 “에너지 위기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덜 심각할 수 있지만 세계 식량 공급에는 거대한 위기가 닥쳤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1년간을 보면 유가 상승보다 밀 가격 상승 폭이 더 컸다. 여기에 밀, 비료 등 기초 자원의 교역이 가로막혀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식량 수출입 문제가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주요 농산물 수출국이었지만 러시아가 철도에 폭격하고, 항구를 봉쇄해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며 “러시아도 국내 가격 안정을 이유로 곡물 수출 대부분을 중단했고, 인근에서 세 번째로 큰 농산물 수출국인 카자흐스탄도 그 뒤를 이었다”고 했다.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식량 문제가 어떻게 확산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식량 문제뿐 아니라 비료 물류에도 영향을 미쳐 향후 식량 생산량 자체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 비료 생산은 에너지 집약적(상품)으로 전쟁 이전 최대 수출국 러시아가 수출을 중단했다”며 다른 주요 비료 생산국인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결국 “수출금지는 미·중 무역전쟁의 관세 인상보다 더 큰 문제”라며 브라질 같은 신흥 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식량보호무역주의가 세계화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무역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평화가 무역을 촉진한다’는 것”이라며 “세계의 안보 상황이 위험해지면서 대규모 식량 거래 같은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일들이 생각보다 더 취약할 수 있다”고 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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