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개발한 반도체 기술 특허 수익 배분을 놓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자회사와 수백억원대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앞서 이 자회사에 자신의 특허를 넘기는 대가로 특허 수익의 일부를 받기로 했고, 지금까지 수십억원을 수령했다.
핵심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이 후보자가 KAIST 상위기관인 과기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심각한 이해충돌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악의 경우 과기부 장관이 산하기관 소송에 휘말리는 초유의 사태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26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소장에 따르면 KAIST는 지난달 미국 위스콘신주(州) 밀워키 카운티 순회법원에 자회사 KIP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KIP가 특허 수익금 2400만달러(약 300억원)를 모회사 KAIST 모르게 빼돌렸다는 것이다.
KIP는 2012년 KAIST가 민간업체 A사와 공동 설립한 특허 관리 회사다. 이 후보자가 원광대 교수 시절 KAIST와 함께 개발한 세계 최초 3차원(3D) 반도체 기술인 ‘벌크 핀펫’의 특허권도 KIP가 갖고 있다. 벌크 핀펫은 반도체 소형화의 핵심 중 하나로, 삼성전자와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채택한 업계 표준 기술이다.
이 기술의 특허권은 국내에선 KAIST가, 미국에선 KIP가 보유하고 있다. 당초 미국 특허권은 이 후보자가 갖고 있었으나, 특허 수익의 일정 비율을 보상금으로 받는 조건으로 KIP에 양도했다. 지금까지 이 후보자가 KIP로부터 받은 금액은 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AIST와 KIP 사이에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6년 KIP가 미국에서 진행된 삼성전자와의 소송에 금융업체 B사를 끌어들이면서부터다. KIP는 B사로부터 소송 비용 600만달러를 빌리는 대신 재판에서 이길 경우 빌린 돈의 350%를 지불하기로 했다. 2020년 2월 법원은 KIP의 손을 들어줬고, 합의로 마무리됐다. 소송에 이긴 KIP는 모회사에 알리지 않고 2400만달러를 B사에 입금했다는 게 KAIST 측 주장이다.
해당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될 경우, 재판 향방과 무관하게 이해충돌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이해충돌에 대해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에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돼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KIP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보상금을 받는 등 이 후보자는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와의 합의에 따른 보상금 또한 추후 KIP로부터 받을 예정이다. KIP의 소송 상대방인 KAIST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따르는 이유다. 자회사의 횡령을 사전에 막지 못한 관리 소홀 책임을 KAIST에 제대로 물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 의원은 “중대한 결격 사유이자 이해충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후보자는 과거 국민 세금이 들어간 특허로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였다. 지금은 이 후보자의 ‘캐시카우’ 기업이 과기부 산하기관과 특허 수익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며 “국민이 아닌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일하는 장관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과기부 측은 “해당 소송은 KAIST와 KIP의 문제일 뿐 이 후보자와 상관없다”며 “각자 이사회를 통한 의사결정구조가 있는 회사들인데, 장관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KAIST 이사회가 총장과 감사를 선임한다고 해도, 과기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됐다는 점에서 장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보상금에 대해서 과기부 관계자는 “기존 계약에 따른 보상금은 이미 수령을 끝냈고, 삼성전자와의 합의 이후 이 후보자가 받게 될 금액 또한 사전에 정해진 비율대로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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